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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받자

by 일로


Menu 4.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받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피해야 할 가게가 있을까요?”


맛집을 즐겨 찾는 지인들에게 가끔 듣는 질문이다. 나는 일단 손님이 너무 많은 곳은 잘 가지 않는다. 정확히는 감당이 안 되는데도 한 손님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욕심부리는 가게에는 가지 않는다. 한 번 가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사실 이런 가게는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견적이 나온다. 분명 정리가 다 되지 않은 테이블인데 일단 손님을 앉혀 놓는다. 그다음에 테이블을 정리한다.

그때 나는 절대 직원이 쓰는 행주를 보지 않는다. 안 봐도 비디오기 때문이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행주를 빨고 있을까. 행주도 못 빨 만큼 바쁜데 다른 곳들이 깔끔할 리 없다. 직원들 안색도 안 좋다. 멘털이 슬슬 털리는 게 보인다. 당연히 실수가 늘어난다. 자꾸 손님의 요청을 깜빡한다. 그리고 엉뚱한 걸 준다. 사장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 자꾸 손님을 들인다. 손님이 머뭇거리면 일단 붙잡고 본다. 맛은 둘째치고 보는 내가 질린다.


가게는 본디 공장이다. 가내 수공업이다. 생산 공정과 분업화 체계가 존재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생산량이라는 게 있다는 뜻이다. 이걸 초과하는 순간 여기저기 문제가 생긴다(유명해지니 맛이 변했다는 손님들의 지적은 대체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주방만의 얘기가 아니다. 홀 서비스의 질도 떨어진다. 주어진 주문량을 넘어섰는데 서버들 표정이 밝을 리 없다. 단순히 귀찮고 힘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저녁시간이 되면 온몸이 아프다. 서버가 나이 지긋한 여사님인데 표정이 안 좋다? 지금 높은 확률로 아프고 결린 걸 참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부하는 직원 간 다툼으로 이어진다. 마감시간이 끝나고 매장 불이 꺼지면 온갖 얘기들이 오간다. 왜 이렇게 일하냐 저렇게 일하냐 치고 박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장의 리더십 추락으로 비화된다. 직원의 시각에선 손님 하나라도 더 받겠다는 사장의 의욕이 탐욕처럼 비칠 수 있다. 결국 못 참고 관두겠다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미 그 자체로 가게 운영은 파행이다. 나 역시 이런 시기를 겪어 봤다. 차라리 일이 힘든 게 낫지 다툼이 생기면 매일이 지옥 같다. 퇴근도 안 했는데 다음 날 출근할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물론 한 명이라도 더 받겠다는 사장님의 간절함은 이해한다. 실패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가게가 망했을 때의 상처를 절대 잊지 못한다. 그 두려움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한 달만 장사가 안 돼도 속이 바짝바짝 타는 게 자영업자의 삶이다.


하지만 절실함이 위와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는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백 명이 한 번 먹고 가는 식당의 생명력은 결코 길지 않다. 입소문도 유행도 결국은 한때다. 문을 닫지 않으려면 한 명이 백 번 들르는 가게가 돼야 한다. 그 첫걸음은 가게의 환경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일정한 리듬으로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영업방침과 응대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 당장 빈자리에 손님을 앉히겠다는 생각 대신 홀 서빙의 수용력과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늘리는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당장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때로 몰린 주문을 과감히 쳐낼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사장의 욕심은 때로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손님은 불편하고, 서버와 요리사는 고통스럽고, 가게는 난잡하고 불결해진다. 리더라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선택은 피해야 한다. 물론 모든 주체가 만족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럴수록 최대한 많은 이들이 받아들일 만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당신 같으면 오겠다는 손님을 매번 거부할 수 있냐고. 맞다. 나도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웨이팅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비용을 들여서 웨이팅 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맺으라는 게 아니다. 서빙 동선이나 주방의 조리 공정, 고객 대기 공간 확보,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시뮬레이션을 짜 보고, 응대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성수기가 되면 매장 한편에 대기석을 추가로 마련해 놓는다. 의자에는 메뉴판이 하나씩 비치되어 있다. 먼저 온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면 서버가 신속하게 자리를 정리한다. 정리가 끝나면 대기 중인 다음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한다. 새로 온 손님은 대기 시간동안 메뉴를 결정한 상태이므로 서버가 주문을 받기 위해 따로 호출될 필요가 없다. 이것만으로도 일정한 템포로 매장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이 변화조차 버거울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결국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노하우란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쌓이는 지혜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이 가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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