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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해야 살아남는다

by 일로




Menu 7. 정통해야 살아남는다


혹시 테이레시아스를 아시는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맹인 예언자로 남자와 여자 모두를 살아본 최초의 인간이다(본래는 남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테이레시아스가 짝짓기를 하는 뱀 한 쌍을 보고는 막대기로 훼방을 놓다 실수로 암컷을 죽여 버렸다. 암컷 뱀은 이유 없이 죽는 게 억울했는지 숨이 끊어지기 전 테이레시아스에게 성(性)을 뒤바꾸는 저주를 걸었다. 이후 테이레시아스는 7년간을 여자의 몸으로 살았다. 여자로 사는 게 여러모로 불만이었던 걸까. 테이레시아스는 길에서 짝짓기를 하는 뱀을 또 보게 됐고, 이번엔 (작정하고) 몽둥이로 뱀을 때려죽였다. 이번에 죽은 건 수컷 뱀이었다. 테이레시아스의 의도를 알 리 없는 수컷 뱀은 죽기 직전에 성별을 바꾸는 저주를 걸었다. 이렇게 테이레시아스는 다시 남자로 돌아왔다. 그는 그리스 신화 세계관에서 두 가지의 성으로 살아 본 유일한 존재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왜 내가 뜬금없이 테이레시아스 얘기를 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당신이 외식업 창업에 뛰어들었다면 반드시 테이레시아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방과 홀 서빙, 이 둘에 모두 정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방만 알고 있어도 안 되고, 홀 서빙만 알고 있어도 안 된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당신이 5인 이하 규모의 식당을 꾸리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직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들이 서로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식당 분업 구조상 서버와 주방 직원들의 기싸움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으며, 이를 잘 아우르지 않으면 가게는 이내 권력투쟁의 장이 된다.


이 갈등이 갖는 폭발력은 실로 엄청나다. 심할 경우 가게 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사장이 주방과 홀, 양쪽을 모두 파악하고 지휘할 수 있을 만큼 단련돼야 하는 이유다. 이것이 사장 리더십의 원천이다. 대충 겪어 놓고 다 안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테이레시아스도 7년을 여자로 살았다.


나도 서빙을 하기 전에는 2년 간 주방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설거지 요령, 메뉴 별 조리 시간, 동시에 다인분의 메뉴를 완성하는 법, 싱싱한 재료의 맛과 향, 요리가 제대로 됐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 각 조리도구의 관리법 등을 배웠다. 체인이 아니라 개인 업장이라면 더 오래 주방에서 일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도 일손이 부족할 때는 주방에 들어가 직접 만든다. 주방에 들어갈 일이 많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


사장이 주방을 잡는 건 외식업의 상식이다. 주방 장악이 힘들어지면 원하는 수준의 맛을 일정하게 끌어낼 수 없다. 사장보다 직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조리의 기본 원칙까지 무너지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는 사장이 주방만 알고 있을 때 생기는 부작용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이다. 주방에 들어가 요리만 하고 있으면 홀 서버들이 손님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손님의 요청사항을 해결해 주고, 어떤 말투를 쓰는지 전혀 할 수 없다. 늘 그렇듯,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뭔가 한참 늦어버린 뒤다.


고든 램지 역시 이 문제로 골치를 썩은 적이 있다. 그가 런던 클라리지스 호텔에 새 레스토랑을 론칭할 때였다. 개업 직후 매주 평균 열여섯 통의 고객 불만사항이 접수됐다. 일반 식당에서도 이만큼의 컴플레인을 받는 경우는 잘 없다. 결국 램지는 문제의 책임자들을 교체하고 직원들에게 서비스 교육을 다시 시켰다. ‘오베르진’이라는 식당을 운영할 때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외식업 경영자이자 직속 상사인 장인어른에게 한바탕 혼이 난 적도 있다.


단순히 '셰프' 고든 램지라면 서빙이 어떻든 신경 쓸 필요 없다. 하지만 외식사업가 고든 램지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고든램지와 이제 막 개업한 당신은 같은 맥락 위에 서 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만 아니라 홀 서버들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감독하고 관리해야 한다. 여건이 된다면 자신이 직접 홀 서빙을 적극적으로 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해보면 알 것이다. 서빙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섬세한 사고가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고든 램지가 주방 요리사들을 손님으로서 가게에 초대하는 이벤트를 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웨이터가 늑장을 부려 와인을 자신이 직접 따라 마셔야 하거나, 메뉴에 대해 설명하는 웨이터의 말이 어눌할 때 손님으로서 어떤 기분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서버와 지배인의 위기 대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의도였다. 대개의 경우 직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바라보게 돼 있다. 전체 업무를 조망하는 시야는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분업화 체제의 한계다. 직원으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자 한다면 분업화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식을 환기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 또한 사장의 능력이다.


이 때문에라도 사장 본인이 모든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주방에 들어가서 일해보지 않으면 3분 간격으로 3인분 씩, 총 9인분의 주문이 들어오는 것과, 한 번에 9인분짜리 단체주문이 들어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뒤늦게 주문을 바꿔줄 수 있냐는 손님의 요청에 “이건 같은 등심을 쓰는 메뉴니까 가능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메뉴의 재료 구성과 원가를 알아야만 가능한 조율이다).


반대로 서버로 일해 보지 않으면 찬 물을 마시지 않는 중국 학생들의 문화적 관습, 덮밥 위의 초생강을 항상 빼 달라는 포장 단골손님의 통화 목소리, 남은 음식을 반드시 포장해 가져가는 할머니들의 마음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주방에서도, 홀에서도, 모두 직접 구르고 깨져봐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들이다. 이 경험들이 쌓여야 비슷한 난관에 봉착한 구성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당신이 정통해야만 모두가 살아남는다.


아, 이미 자신은 정통한 것 같은가? 당장 주방과 홀에서 쓰고 있는 그릇과 컵의 개수가 몇 개인지 떠올려보자.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각 그릇을 한 줄에 몇 개씩, 몇 줄로 쌓아놓는지를 생각해 보면 대략적인 개수가 나온다. 사실 이건 몸이 기억하는 거라 모를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조차도 모른다면… 음, 더는 얘기하지 않겠다.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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