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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19. 2024

남은 음식을 잘 체크하자


Menu 6. 남은 음식을 잘 체크하자


훈련병 시절 취사지원을 나간 적 있다. 옆에서 취사병을 보조하는 일이다. 취사지원에 차출되면 하루 동안 훈련을 면제받고 불침번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땡볕에 연병장 바닥을 기어 다니며 얼차려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 지원자가 많은 건 당연지사. 그렇다고 취사지원의 노동강도가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무거운 밥통과 기름통을 십 수 개씩 옮기고 삽으로 쌀을 휘젓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식사시간이 지나면 잠시 쉬었다가 취사장 청소를 하고 식재료를 옮긴다. 그리고 다시 다음 끼니를 준비한다. 이 일을 새벽 네 시부터 한다. 그것도 하루 세 번.                     


나는 부모님이 피자집을 한다고 동기들한테 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 들어갔는지 훈련병 1주차에 바로 차출됐다. 솔직히 나는 훈련이 더 받고 싶었다. 여기서도 주방에 들어가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단체예약으로 피자 200판을 만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동안 가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그 짓을 삼시 세끼 해야만 했다. 취사지원 병력들은 보통 지원자들을 위주로 차출하는데, 뜬금없이 소대장이 “야, 너 예전에 피자 좀 만들어 봤다며? 내일은 취사장으로 가라”고 통보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하기 싫어하는 일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나를 찾아온다. 다음 날 나는 밥 담당 선임과 함께 하루 종일 쌀을 씻고 밥을 지었다. 무려 620인분, 일일 1860명 분량이었다. 저녁이 되자 허벅지가 후들거렸다. 취사병, 이걸 매일 해내는 당신들은 대체….                     


그렇게 신병교육대의 저녁식사가 끝났다. 이제 생활관으로 보내주겠지, 했는데 저녁 7시가 넘도록 보내줄 기색이 없었다. 같이 밥을 지은 선임에게 물어보니 '너희도 결산에 참여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취사지원에 뽑힌 훈련병들 중 일부가 신병교육대에 남아 취사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과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취사병들은 다음날 남은 부식과 재료를 체크하고 배선과 가스를 점검한 뒤, 우리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오늘 무엇이 제일 맛있었고, 무엇이 제일 맛없었나’였다. 취사병들 면전에서 음식을 평가해야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생활관에 돌아가니 먼저 취사지원을 나가 본 훈련병들 모두가 이 질문에 답해야 했단다. 그나마 무엇이 맛있었는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이다. 내가 답을 머뭇대고 있는데 그때 상병을 단 취사병 하나가 어깨에 손을 얹더니 이렇게 말했다.      

               

“건새우볶음이 제일 별로였지?” “다 알아 임마, 왜냐면 오늘 제일 많이 남은 게 건새우 볶음이거든.”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취사병들은 하루 세 번에 걸쳐 잔반체크를 하는데 이때 어떤 메뉴가 반응이 좋은지 견적이 다 나온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신병교육대라 해서 신병만 밥을 먹는 건 아니다. 장교와 부사관, 조교, 그 외 다른 보직의 병사들도 똑같은 식사를 한다. 식사가 유난히 맛이 없으면 간부들에게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고 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해당 결산은 취사반장을 거친 뒤 매일 대대장에게 보고된다고 했다. 40대 여성인 대대장은 임기 내내 난방, 온수, 식사를 강조했는데, 전 사단에서 신병교육대의 밥이 제일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한 당연한 일이었다.               


외식업 현장에서 일하며 돌이켜보건대 아마 그 명성은 잔반 체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겪어보니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가게일수록 생존확률이 높고, 그 시작은 무조건 잔반 체크에서 출발한다. 사장도 직원도 그날 어떤 메뉴가 싹싹 비워졌고, 어떤 것이 남아서 버려지는지 무조건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손님의 반응을 제대로 읽을 수 있고, 음식이 레시피를 준수하며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으며, 먹는 과정에서 손님이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더불어 이를 토대로 더 나은 조리법을 고민할 수 있다. 이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는 건 요리사가 아닌 서버다. 손님이 떠난 자리에서 어떤 정보를 추론할 수 있는지에 따라 주방에서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식판이나 테이블에 쓰고 난 휴지가 잔뜩 올라와 있다면 음식이 지나치게 맵지는 않은지 의심해 봐야 한다. 짬뽕이나 해물탕 등 해산물 요리에는 게나 홍합 같이 껍질이 단단한 어패류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이 먹은 흔적 없이 그대로 남겨진다면 먹기가 너무 불편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순대국이나 설렁탕 같이 육류가 들어간 국밥을 파는데 고기가 계속 남는다면 조리나 보관 과정에서 누린내를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돌솥에 밥을 넣고 달구는 메뉴가 있다면, 그릇의 바닥 면을 유심히 봐야 한다. 가끔 탄 채로 손님상에 나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기 애매해서 바닥에 탄 부분을 걷어내고 그냥 식사를 한다. 모든 손님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안 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가게가 발전하고자 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미비점을 찾아야 하며, 잔반 체크는 그 시작이다.        

               

사실 외식업만큼 소비자의 반응을 눈앞에서 비용 없이 파악할 수 있는 분야는 흔치 않다. 제품이 출시된 뒤에 분기별 매출 추이를 따지면 너무 늦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들은 상당한 돈을 들여 제품 출시 전에 사전테스트를 하거나 소비자 앙케이트를 진행한다. 이 또한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화장품이나 그 외 공산품은 설문 당시의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참여자의 판단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당사 직원들 앞에서 사용할 때는 ‘오, 좋은데요?’라고 반응하다가도 집에서 구입해 쓸 때는 ‘생각보다 별로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반응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분야라면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향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일관적이다. 한 입 먹었을 때 별로인 음식이 나중에 와서 맛있게 느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손님들이 ‘으엑, 맛없어!’라고 반응했다면, 천년이 지나도 그 음식은 맛이 없는 것이다. 음식을 판다. 그리고 반응을 본다. 얼마나 간단한가? 소비자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외식업의 장점이자 특권이다. 잔반체크를 안 하는 건 돈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소비자 반응을 자기 발로 걷어차는 것과 같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어려울 것도 없다. 손님이 떠난 자리를 치울 때 1초만 유심히 보자. 서너 테이블 이상 치우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좋은 서버라면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게 있어선 안 된다. 사장과 직원 모두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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