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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12. 2016

저는 오늘 집회에 나가지 못합니다.

분노가 모여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2차 제주촛불집회(2016.11.05)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는 오늘 집회에 나가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지난 수요일 집회 사진을 보다 보니 집회 맨 앞자리 앉아 있던 교복 입은 아이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아이들. 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오늘 저는 광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 더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난 제주의 촛불집회는 중고등학생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학생들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분명 증오와 분노의 힘이 우리를 거리로 나오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 아이들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개돼지처럼 행동했지만,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너무도 멋졌습니다. 아이들이 갖춘 역사관, 역사의식과 주권의식은 저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의 1인 시위를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학교의 어른들이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아이들 곁을 지키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몰래 울컥했습니다.

힘든 시기입니다.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은 싫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말로밖에는 우리 세대를, 현시대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심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내 삶이 이런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사회와 별개 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를 경험하며 내 아이만의, 나만의 안전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 내 삶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내가 속한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현실은 이상과는 다른 거야, 이것도 경험이야'라는 적당한 타협을 말하는 어른이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의 퇴보를 목격했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를 지켜냈다고 아이들이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광장으로 나가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마음 모으고 행동하겠습니다. 분노가 모여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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