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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an 10. 2016

낯선 시간

그리움의 분출

낯선 시간     

지난 일기들을 살펴보니, 임기 초기 꽤 적응에 힘들어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아프기도 많이 아팠고 무엇보다 많이 외로워했지만 그때마다 잘 이겨 내기도 했다. 변덕스러웠던 지난 일기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내가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고 방글라데시를 그리워할 것을 그때 난 알았을까?     


수도 다카에서 임지가 있는 실렛까지는 버스를 타고 최소 6시간이 걸린다. 도로 좋지 않고 강이 많아 우회로 난 도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사고가 잦았고, 잦은 접촉사고 후 얻은 허리 통증으로 다카를 오가는 것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모험과 같았다. 하지만 다카에 가면 한국음식점도 있고, 한국 식재료나 지방에는 없는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는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단원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잠깐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은행 업무나 행사 참여 등 다카에 내려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으며, 다카에 가는 전날 밤이면 설렘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나는 다카에 내려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다카에 갔다 오면 이유 모를 무력감과 외로움에 며칠 동안 몸도 마음도 힘이 들어 습관적으로 아팠다. 기분 좋은 다음 오는 표현하기 힘든 그 이상한 시간, 새삼스레 모든 게 다시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서투른 현지어와 두려움 탓에 완벽하게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 외로웠다. 외로움 때문에 다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돌아오면 혼자라는 사실이 뚜렷해졌고 오히려 외로움이 더 커졌다. 다카에만 갔다 오면 어렵게 적응한 현지 생활이 다카만 다녀오면 다시 일상이 흔들렸다. 반복되는 일상이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낯섦, 그리고 적응.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 생각해보니 처음인 게 너무도 많았다. 이슬람 문화는 처음이었고 혼자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었도 이렇게 오롯이 지독하게 혼자인 적도 없었다. 모든 게 낯설고 나는 서투렀다. 시간이 필요했다.       


반복되는 일상이듯 하면서도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다

폭풍 수다     

어느 책에선가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밑천은 친구,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밑천은 언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이 말에 백 프로 공감을 하면서도 서투른 현지어에 괜히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난 아직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며 하루하루 점점 무기력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다 사무실에 일이 있어 찾아온 사람과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어 수업 상담을 핑계 삼아 시작된 대화가 2시간이나 이어진 것이었다. 원래 나는 그리 수다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외로운 타지에서의 생활은 나를 수다쟁이로 바꿔 놓았다. 한동안 한국의 음식, 사람 그리고 한국말이 너무도 그리웠지만, 사실은 사람 그 자체가 그리웠던 것이었다. 나의 수다는 그리움의 분출이었다. 익숙한 대화의 주제도 아니었고 비록 한국말도 아니었지만 어눌한 현지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꽤 성실하게 질문에 답을 해주고 질문을 하며 알찬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분명히 이곳 현지인들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신분(자원봉사자, 누가 떠밀려서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내 의지로 온 봉사자였다)을 망각한 채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커녕 그 오해만 키우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들이 나를 반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두 시간의 수다로 아팠던 목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지만, 질문의 꼬리를 물어 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이들이 궁금해졌다. 관심의 시작. 이들에게 다가가는 만큼 알지 못해 인해 생길 수 있는 오해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 2011년 가을 어느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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