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Jul 14. 2017

삶을 담아낸 말, "셔머샤 네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만큼 나의 세계는 넓어진다

달라도 너무 달라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단연 '문제없어'라는 의미의 “셔머샤  네이”이다. 이 말을 하루라도 듣지 않고 넘어간 일이 날이 없을 정도였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라고 하더니, 정말로 사람들이 긍정적이네’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 말을 들을 상황이 되고 보면 뒷목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매사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들이 행복지수 1위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들이 이 말을 너무도 남발하는 데 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해도 “셔머샤 네이”, 일이 산처럼 밀렸는데도 천하태평 “셔머샤 네이”, 자신들이 잘못해놓고도 선수 치듯 “셔머샤 네이." 물론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화를 내도 소용없는 거 다 알고 있다. 매번 이들을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자신들이 잘못해놓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태연하게 “셔머샤 네이”라고 외치는 그들의 태도에 참으려 했던 화가 솟구쳐 폭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한강의 신화를 일궈낸 한국에 비교한다면 매사 말로만 "문제없다 “라고 말하고 노력을 하지 않는 이들의 안일한 생각들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저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물론 매사 이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아쉽고 안타깝기도 했다. 웃는 얼굴에 욕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한시가 급해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이들은 너무나도 여유로웠고 이들처럼 도저히 느긋해지지 못해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첫 '셔머샤 네이' 신고식.

방글라데시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수도 다카 어느 한 숙소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저녁을 먹고 룸메이트와 다시 방으로 돌아왔는데 방문이 열리지가 않아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직원도 몇 번 시도해도 열리지 않자 이 안에 누가 있어서 열리지 않는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며 배시시 웃었다. 예상하지 못한 대응에 당황했지만,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이 이 방에 머무는데 다른 사람이 있다면 문제 있는 거잖아요'라고 이야기하니 다시 문제가 없다며 우리 성화에 못 이겨 문을 여는 채 했다. 직원 생각에 우리의 다른 일행이 장난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계속 ‘누가 있는 거 같은데’라고 하며 문을 열 생각은 안 하고 능청스럽게 '노 쁘라블럼, 셔머샤 네이'라는 말만 내뱉었다.         


‘그런 무서운 농담 그만하고 빨리 문이나 열어줘요.’ 몇 시간을 문과 사투를 벌이더니 결국 문고리를 통째로 빼버렸다.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구멍이 난 문은 수습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문을 가리키며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하냐고 묻자, 오늘은 밤이 늦어서 안 되고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된다고 했다. 내일도 아니고, 내일이나 내일모레쯤이라는 애매한 대답은 뭔가.... 내일이나 내일모레에도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준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 아닌가. 다른 방으로 바꿔 달라고 말했지만 방이 없어서 안 된다고 말하며 연신 '셔머샤 네이'라는 말만 내뱉었다.               


자신들이 지키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차마 당신이 지키고 있어 문제라는 말은 못 하고 이대로는 잘 수 없다고 해결을 해달고 했지만, 이미 오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직원에게는 허공의 메아리나 다름없었다.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직원들에게 없는 방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은 찜찜함과 함께 구멍이 뚫린 방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아침이면 모든 짐을 다시 싸서 다른 일행의 방에 옮기는 수고를 이틀 정도 더 하고 나서야 방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아무 문제없을 거라 했잖아.' 라며 다시 '셔머샤 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는 게 아닌가. (아무리 봐도 너희들이 할 멘트는 아닌 거 같은데...)     


걱정을 더 많이 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어. 짜(차) 한 잔 어때? ⓒ신상미

삶을 담아낸 말, "셔머샤 네이"

어쩔 때는 안 되는 것 없이 다 되는 나라 같으면서도 안 되는 일도 참 많은 곳이 방글라데시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되돌릴 수 없는 일에 괜한 에너지를 쏟지 말고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안 되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한 삶을 찬찬히 말이 담아낸 말이 바로 “샤머샤 네이”가 아닐까?   

  

‘셔머샤’는 ‘문제’를 뜻하는 단어이고, ‘네이’는 ‘없다’는 뜻이므로 ‘문제없어’라고 해석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게 그러하듯이, 상황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얼마를 더 지내고 나서야, 이들의 문화나 관습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판단해 오해와 편견이 쌓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문장에만 충실하게 해석했던 것이었다. "셔머샤 네이"는 단순히 ‘문제없다’라는 뜻을 넘어 닥친 상황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담아 ‘잘 될 거야, 괜찮아. 신이 다 보고 계시니 도와주실 거야’, ‘미리 걱정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아’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버럭 화를 내던 나였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지내다 보니, 이리저리 손을 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았다. 내가 먼저 이들에게 “셔머샤 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나도 어느 순간 제일 많이 말하게 되는 말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해 못할 때도 많고 그래서 속이 터질 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싶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낯선 그들 속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참 많이 서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만 하는 것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득이 더 많다는 것도 배웠다. 문득 요즘의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혹시 자기만의 좁은 세상에 갇혀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만 하거나 쓸데없는 걱정만 끌어 안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본다. 그러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만큼 나는 성숙해질 것이고 이해하는 만큼 나의 세계는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괜찮아, 큰 일 아니야. 걱정하지 마. 셔머샤 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화를 내는 것보다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빨리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신상미


보태기 | 이 글은 독립문화예술매체 <씨위드 Seaweed >에도 중복 게재될 예정입니다. (원고 송고 : 2017년 7월 6일)


Copyright ⓒDAPLS All Rights Reserved

모든 문구 및 이미지에 대한 무단 도용 및 복제 사용을 금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