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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pr 21. 2020

코로나19, 공포 팬데믹과 인류의 싸움

코로나 19 ① 방역 주권 vs. 방역 협력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이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나의 신념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사이 충돌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으로는 100%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오가면서도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은 비겁함 때문이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거나 실수가 두렵기도 했고 나 역시 많은 편견을 가진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까닭도 있었다.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잠시 보류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수첩 여기저기 끄적인 메모들이 쌓여만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더욱더 심란해졌다. 부족하더라도 기록으로써 정리를 해둬야 일련의 생각들이 역시 정리될 것 같았다. 글을 써야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으니까…….




전 세계는 코로나뿐 아니라 혐오와 전쟁 중

한국의 코로나에 대한 대처는 전 세계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그동안 정부가 가장 많이 공격받는 쟁점 중 하나가 해외발 입국자 금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중국인 입국 금지를 둘러싼 논의는 과학적으로 효과적이냐 아니냐를 넘어 정치적 논쟁으로 발전해 지속해서 정부를 괴롭혀왔다.


중국인 입국 금지가 정치적 논쟁으로 발전해온 데에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이를 더욱 부추긴 건 무책임하게 혐오를 퍼트린 언론 탓도 컸다. 실제로 한국에서 첫 감염 사례가 나오자마자, SBS는 <중국인들, ‘우한 코로나’ 치료하러 일부러 한국행 소문도....>(2020.1.21)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소문과 추측을 근거로 한 주장일 뿐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언론이 유언비어를 무책임하게 옮겨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많은 비판을 받아 현재 해당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채널A의 <우한에서 6천4백 명 입국, 제주 비상>(2020.1.27) 기사처럼 코로나 초기에는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보도는 진보수 언론을 따지지 않고 쏟아졌다. 언론이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보도로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키웠고, 이로 인해 혐오, 차별은 더욱 커져갔다.  <"여기는 한국인 집" 문 앞에 차별 딱지 붙이는 중국 공안ㆍ이웃>(2020.2.27.)처럼 잘못된 번역으로 오보를 낸 한국일보 기사와 극우 사이트에 떠돌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오보를 낸 머니투데이의 <'우린 KF94 보냈는데'... 중국이 준 마스크는 ‘부적합’ 판정> (2020.3.05) 기사가 공포와 혐오를 부추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언론이 키운 가짜 뉴스와 괴담들은 오랜 시간 쌓아온 혐중과 만나 중국인 입국 금지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76만 명이 참여한 중국인 입국 금지에 대한 청와대 청원(2020.1.23)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중국인 입국 금지에 대한 여론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후 야당과 보수언론은 본격적으로 '친중 정권' 프레임을 씌워 중국인 입국 금지 사안을 정치화했다. 정부가 '우한 폐렴'에서 공식 명칭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발표(2.12)한 데에도 ‘중국 눈치 보기’에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방역 주권 vs. 국제협력

정말로 우리 정부는 자국민 보호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하는 것일까?

정부는 방역의 실효성과 국익의 이유로 중국인 전체에 대한 입국 금지 청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공포로 불필요한 조치를 하는 대신 모든 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 절차를 도입했다. 중국인 입금 금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현실적인 방법도 아니고, 근본적인 대처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내국인 입국자가 많아 완벽한 차단이 불가능하며 오히려 검역 시각지대가 늘어나 감염병을 통제하는데 방해가 된다. 또한, 한국은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아 코로나 이후 또 다른 재난이 야기시킬 수도 있다.


코로나 명칭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이미 언론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때문에 공식 명칭을 발표한 게 아니다. 바이러스와 특정 지역을 연결 짓는 것은 일종의 '낙인찍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지역 혐오 및 인종주의적 혐오를 부추기는 잘못된 용어를 바로 잡았다고 해야 맞다. 세계보건기구도 2015년 ‘신종 인간 감염질환’의 명칭에 대해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질병 이름은 그것으로 직접 영향을 받은 사람들한테는 정말 문제가 되고, 특정한 공동체나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며,  특정 지역의 명칭이나 집단, 동물 등으로 피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메르스', '홍콩 사스', '스페인 독감' 등의 명칭은 이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 생성된 병명들이다.)


이러한 우려가 지나친 기우가 아니었음을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이니즈 바이러스'라고 표현한 트럼프의 트윗 이후 많이 늘어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코로나 미국발 주장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그 결과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불안감과 공포를 차별과 혐오로 깨웠고 이는 다시 혐오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이미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것처럼 전염병이 발생하면, 차별과 혐오가 함께 퍼진다. 그 차별과 혐오가 전염병 통제의 구멍을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 초기 중국인에 대한 입국을 금지했다면, 당장의 감염을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상황에서 지금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로부터 안전했을까, 라는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이후의 삶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로 코로나가 퍼져나간 상황에서 결코 완전한 종식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삶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또다시 이러한 위협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산불이나 지진 등과 같은 자연재해, 예기치 못한 재난상황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상황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와 달리 우리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이 초연결 시대에는 각자도생의 방법으로는 살 수가 없으며, 어떤 국가도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경을 초월한 바이러스 위협에 맞서 국경을 초월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 역시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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