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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pr 29. 2020

코로나19, 대한민국 인권 실험대에 서다

코로나19 ② 전염병과 인권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이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나의 신념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사이 충돌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으로는 100%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오가면서도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은 비겁함 때문이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거나 실수가 두렵기도 했고 나 역시 많은 편견을 가진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까닭도 있었다.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잠시 보류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수첩 여기저기 끄적인 메모들이 쌓여만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더욱더 심란해졌다. 부족하더라도 기록으로써 정리를 해둬야 일련의 생각들이 역시 정리될 것 같았다. 글을 써야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으니까…….




코로나 우려국에서 모범 방역국으로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국가 중 하나로 많은 걱정을 받던 우려국이었다. 하지만 투명하고 개방적인 한국식 방역을 통해 효과적으로 코로나에 대응했고, 코로나 우려국에서 방역 모범국으로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 우리는 효과적인 방역 시스템뿐 아니라 놀랄 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전 세계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극단적인 봉쇄정책 없이 사회적 거리 두기만으로도 효과적인 방역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대한 한국의 대처는 개인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이번 사태에서 우리나라가 잘 대처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부뿐 아니라 코로나 사태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포기해야 했던 선거까지 무사히 치러냈다.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그 전과 다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캠페인이 이어졌다. (카드뉴스 | 신상미)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도 괜찮을까? 코로나로 인해 혐오와 인종주의 문제, 가짜 뉴스와 막말 문제, 방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문제 등이 드러났지만, 방역을 위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거나 논의가 유보되었다. 하지만 언제든 코로나와 같은 위기는 다시 찾아올 수 있고, 지금 제대로 논의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코로나를 통해 우리 사회는 인권 역량 확인하는 시험대 위에 선 것이다.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알 권리, 표현의 자유

코로나 초기 나는 거의 뉴스 중독이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지인은 뉴스와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정보를 찾게 했는데, 과도하게 쏟아지는 정보로 인해 오히려 불안감은 커질 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언론을 불신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 언론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코로나와 같이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의 경우, 신속한 정보전달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속보 경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오보를 내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언론이 오히려 대중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결국 바쁜 의료진들이나 방역 당국 또한 그걸 해명하느라 소모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언론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신중하지 못한 언어 사용도 문제였다. 방역을 도와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대중을 패닉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해야 했다. 공포, 패닉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부터 그 공포가 시작될 수가 있다는 것을 그들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동선 공개

환자의 동선, 접촉자 현황 등 역학조사에 따른 개인 정보가 언론에 공개되면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확진자의 동선을 놓고 ‘불륜', '민폐', '신천지' 등 추측과 평가가 오갔고 확진자에 대한 낙인찍기로 이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코로나' 보다 '동선 공개'가 더 무섭다는 말이 돌 정도로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확진자가 되었을 때 쏟아질 비난과 조롱을 미리 걱정했다. 확진자 동선 공개는 공익적 필요성에 있지만, 공익이라는 이유로 확진자들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사생활이 노출된 부작용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킬뿐 아니라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을 숨게 만들어 방역의 구멍이 될 수도 있다.


확진자 동선 공개에 대한 사생활 침해 문제와 더불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격리조치나, 전자팔찌 형태의 안심 밴드 도입 등 윤리 인권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공중의 보건이냐, 인권이냐’ 하며 양분화해서 문제를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선거와 맞물리면서 여야가 더불어 코로나 극복에 힘쓰는 게 아니라, 정쟁 시비를 하며 사태 초기에 예측 가능했던 문제나 대비책 등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방역에서 인권은 옵션이 아닌 필수

우리는 이제까지 잘 해왔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인권이 침해되거나 인권과 공익을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인권이 침해받거나 일부 개인의 탈선을 막지 못해 다수를 위협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충분히 논의하고 질문했을까?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재난 사태에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을까?',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얼마나 유보될 수 있는가?', '가짜뉴스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인과 언론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해 대책은 없을까?', '소수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 재난 극복상황이 장기간 지속하고 있는 게 건강한가?' 이제라도 질문하고 논의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감염병 대응에 있어서 혐오와 인종주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뿐 아니라 실제로 방역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코로나가 전 세계에 불어닥칠 현재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더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당장은 코로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경험이 유의미한 사례로 기록되리라는 것이다.


사진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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