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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May 07. 2020

코로나19, 우리의 삶은 변할까?

코로나 19 ③  하나의 지구, 하나의 공동체  

우리의 삶은 변할까?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이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나의 신념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사이 충돌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가슴으로는 100%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오가면서도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은 비겁함 때문이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거나 실수가 두렵기도 했고 나 역시 많은 편견을 가진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까닭도 있었다.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잠시 보류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수첩 여기저기 끄적인 메모들이 쌓여만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더욱더 심란해졌다. 부족하더라도 기록으로써 정리를 해둬야 일련의 생각들이 역시 정리될 것 같았다. 글을 써야 정리되는 생각들이 있으니까…….




우리의 삶은 변할까?

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인류 종말을 그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같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2020년 지구촌의 모습이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지구 곳곳에서 봉쇄 정책이 펼쳐졌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됐고 학교와 가게는 문을 닫고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모두 멈췄고 거리는 텅 비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부분이 변하면서, 그동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이후로 그동안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독식하며 이기적으로 사용해왔는지,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는 지구가 보내는 경고임이 분명했다.


코로나는 많은 혼돈과 함께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성찰적 물음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갈망과 필요성이 커질수록 '변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우리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왔지만 직면한 위기에 비해 우리의 삶은 이상하리만큼 변화가 없어 왔다.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대안보다는 기존의 선택지를 선택하는 것이 익숙해서 안정적이고 훨씬 쉽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도 언젠가는 잠잠해질 것이다. 이 위기가 지나고 나면 변화를 요구하던 목소리도 곧 사그라들 것이고, 그만큼 사람들의 의지와 관심도 줄어들면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매번 그래 왔듯이 (현재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건대) 결국 이번에도 관성이 이길 것이라는 불안함이 가슴 한쪽을 차지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뉴욕타임스 토머스 프리드먼은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코로나를 기준으로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나뉘어 세계는 이전과 절대로 같아지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우리의 관성과 상관없이 세계는 이미 변화에 들어섰다. 온라인 개학, 비대면 회의, 기본소득 성격의 재난 기금 등 일시적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하기도 했다. 우리가 좋든 싫든 변화는 왔고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위기가 끝나더라도 좋은 변화는 계속 유지하며 이 변화를 계기로 우리가 원하는 미래에 닿을 기회로 삼아야 하는 숙제만 남았을 뿐이다.


많은 나라가 코로나로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한국은 성공적인 방역과 시민의 참여로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대외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우리 안에서는 그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리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안의 성공이다. 이제 코로나 대응 경험을 국제사회와 나누고 우리의 성공을 모두의 성공으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에도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계적인 관심과 영광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국가를 넘어선 전 지구적 연대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 아무도 그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쩌면 문제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였을지 모른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을 때도 아직 코로나 감염자가 없던 대부분의 국가는 아시아만의 문제로 치부해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독감과 비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무색하게 코로나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됐다. 초연결 시대에 감염병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않은 지도자들의 오판과 오만으로 많은 나라가 중요한 초기 대응 기회를 놓쳤다.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쳐온 미국과 복지국가라고 자부해왔던 유럽도 코로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지구촌’, ‘세계시민’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각국 지도자들은 제 나라 상황에 급급해 국경을 폐쇄하고 이동을 제한하며 국가별로 간신히 버티기만도 버거워 보였다. 협력에 대한 논의는커녕 코로나 발원지를 두고 중국과 미국은 여전히 소모적인 핑퐁외교 중이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각 국가 간 협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했을 세계보건기구 역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어디에도 전 지구적 리더십이나 국제협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의 안전
국경을 초월한 바이러스 위협에 맞서 전 지구적인 연대와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 초기 잃어버렸던 국제 협력 시스템을 다시 복원하고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한 곳에서 코로나 종식을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여전히 코로나와 싸우는 나라가 있다면, 언제든 국경을 넘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별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타국을 돕고 국제 사회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 그 자체가 우리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대의 대상을 국가나 민족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한 것처럼 연대 범위를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까지 확장해야 한다. 그동안 인간이 많은 공간을 침범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넘어 더 큰 공존을 상상하고 나아가야 한다. 인간과 함께 지구를 공유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안전하지 않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위험하다면 인간 역시 안전할 수 없다. 우리만의 안전을 외치는 것이 우리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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