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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Sep 16. 2020

불편한 장치 속 친절한 전시

답엘에스 온라인 전시 <우리의 아시아>

방글라데시에서 머물며 올렸던 사진을 보고 주변에서 사진집을 내라고 하거나 사진전을 열라는 권유를 종종 받았었다. 사진 인화부터, 액자, 대관료 등 적잖게 돈이 드는 일이기도 하고 전시에 대한 프로세스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칭찬에 내심 기분은 좋았지만, 전시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팝업 전시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첫 전시는 숲길을 걷다 꺼낸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팝업 전시였다. 아름다운 제주의 숲을 걷다 이 멋진 길을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 숲길을 배경으로 친구의 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팝업 전시를 <같이 걸을까>라고 제목을 붙였고 스무 번 가까이 제주의 산과 바다로 나가 자연에서 팝업 전시를 열었다. <같이 걸을까>를 통해 전시가 그 어떤 캠페인이나 활동보다 소통할 수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 카페와 도서관에서 연달아 전시를 진행했고 아트페어와 미술제에도 참가했다. 제주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온라인 전시까지 어쩌다 보니 팝업 전시를 제외하고도 10차례 전시를 개최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경험이 쌓이며 의도와 컨셉을 설치로 녹여내는 우리만의 설치 컨셉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 작품 설치의 높이

첫 전시였던 팝업 전시에서는 사진의 프레임도 없었고 부스나 작품 설치대도 없었다. 야외여서 당연히 사진을 걸 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땅바닥에 사진이 내팽개쳐져 있다는 인상만 없앨 정도로 바위 위, 벤치나 계단, 나무 등에 적당하게 세워둘 뿐이었다. 전시라고 하기엔 불친절한 설치였고 높이도 들쑥날쑥하여 당연히 사진을 보기에도 아주 불편했다.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관심을 보이고 관람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고 보거나 쪼그려 앉아 사진을 감상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자세를 낮추고 사진 하나하나를 눈을 맞추고 감상했다.

이후 실내 전시할 때에도 작품 설치는 성인의 눈높이보다는 낮게 설치해 눈높이를 어린이 관객에 맞췄다. 사실 보는 이가 허리를 숙일 필요 없이 눈높이에 맞춰 작품이 있어야 좋은 위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 키는 다 다르니 적절한 작품 설치 높이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아동이나 휠체어 이용자에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와 어려움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작품의 위치를 조금 낮게 달았다. 그게 첫 번째 의도였다면, 두 번째는 팝업 전시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살짝 허리만 숙여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내 위치가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경험을 하길 바랐다. 정말 조금만 관심을 두고 주변을 살핀다면,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작품을 조금 낮춘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고, 불편함을 호소한 사람도 없었다.


둘째, 캡션 없는 전시

여전히 많은 고민이 있고 사람들에게도 가장 볼멘소리를 많이 듣는 부분이다. 사진의 캡션이 없는 대신 우리가 직접 설명하기로 했다. 물론 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몇 개의 문장으로 추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사진마다 긴 글의 설명을 붙여 놓을 수도 없고, 그렇게 한다면 마치 전시를 이렇게 저렇게 봐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처럼 비쳐 오히려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며 사람들이 이들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많은 질문을 던져주길 바랐다. 사람마다 궁금해하는 점이나 피드백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따라 조금씩 설명도 달라졌다. 맞춤형 도슨트!!


셋째, 전시실의 벽 색

<나와 아시아>에서 처음 시도할 수 있었는데, 전시실 벽을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해준 갤러리 측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개의 전시실을 한쪽은 원래대로 하얀색으로 두고 다른 전시실은 어두운 회색을 칠했다. 어두운 회색 벽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표현하고 싶었다. 악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편견을 상식처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편견을 거두고 바라본다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만큼 우리가 담을 수 있는 세계 또한 커지지 않을까?


넷째, 빈곤 포르노 없는 전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개발도상국의 이미지에는 일하는 어른이 없다. 굶주린 아이, 일하는 아이 등의 이미지로 소비되며 어른들은 무력하고 무책임한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발도상국 빈곤의 원인이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함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잘 생각해보자.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 고정관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모금을 위해 개발도상국의 빈곤이나 비극을 부각해왔던 후원 광고 영상이나 미디어 비친 모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이다. 이렇게 인권을 배려하지 않고, 단지 주목을 끌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빈곤이나 비극을 충격적인 이미지로만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을 ‘빈곤 포르노’라고 한다. 빈곤 포르노는 이성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에 호소하여 보는 사람에게 지나친 책임 의식과 죄책감을 강요한다. 물론 그렇게라도 지갑을 열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우선 자극적으로 연출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한다. 그리고 자극적인 이미지 또한 어느 순간 무감각해지게 되고 이로 인해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편견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빈곤과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사진전뿐 아니라 답엘에스가 활동하는 이유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편견을 줄이기 위함이므로 우리의 사진이나 활동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그리고 온라인 소통 

7월 <나와 아시아>에 이어 온라인에서 <우리의 아시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번 온라인 전시를 기획한 게 아니었다. 그동안의 전시해온 공간을 살펴봤을 때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처럼 우리의 전시가 누구에게나 문턱 없는 전시이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누구나 환영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전시에 오고 싶었지만 제주에 없는 친구들과 전시 기간이 길지 않아 전시기간 동안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지인들, 그리고 2, 3층에 위치한 전시실에 오기 위해 가족과 함께 끙끙대며 유모차를 짊어지고 온 관람객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예산과 일정, 인력 등의 문제로 한계에 부딪혔고 제주에서만 짧은 기간 전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장소나 이동권의 제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온라인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

온라인 전시 진행 두 달째. 9월 방문자 기록을 살펴보니 국내 다양한 도시와 다양한 국가에서 <우리의 아시아>를 관람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람 시간을 보니 오래 머물며 꼼꼼하고 진지하게 전시를 본 듯했다. 우리의 고민이 헛되지 않은 거 같아 뿌듯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취약한 고리(온라인 취약계층 포함)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는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겠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했고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습니다. 악수 대신 주먹치기, 온라인 회의, 랜선 인터뷰 등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도 달라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속으로 녹아든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낯선 타인과의 접촉은 불안감으로, 때론 불안감은 혐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의 아시아>는 많은 분의 성원과 관심에 힘입어 9월 30일에서 10월 31일까지로 연장하여 진행합니다. <우리의 아시아>는 남아시아와 한국, 제주를 잇는 전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을 잇는 전시, 삶을 위로하는 전시가 되길 되길 소망합니다. 코로나에 지지 말고 연결 이어가요, 우리!  

답엘에스 온라인 사진전 <우리의 아시아>
신상미/ 이혜령 / 주미영 
2020.8.11(Tue)-10.31(Sat) *연장!
amaderasia.org
기획 | 답엘에스(DAP LS)
후원 | 이디아트(E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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