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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ug 24. 2021

우리가 모르는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림 | sangmi 


지난 15일, 아프간 정부는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카불을 다시 장악하자 탈레반에 정권 이양을 선언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간 지속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그동안 아프간에서는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그리고 아프간은 어떤 나라일까?


“거리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총소리는 너무나 낯설었다. 폭탄과 총소리밖에 듣지 못하고 자란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 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식당에 서로 달라붙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 p.58, 연을 쫓는 아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하면 내전과 테러,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부르카를 떠올린다. 하지만 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프간 거리에는 부르카와 미니스커트나 트렌치코트, 원피스 등 서양식 복장은 공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부르카 착용은 강제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었던 것이다. 여성들 또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사회적으로 활동했던 시기였다. 지금의 모습은 원래 아프간의 모습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가까이 끊임없는 정쟁과 내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비극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 둘러싸여 있으며, 유라시아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1천 년 이상 페르시아, 그리스, 몽고, 영국, 소련 등 외세의 침략과 정복을 받아왔으며, 근현대에 들어서는 19세기에는 영국, 20세기에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조직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습을 받았고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20년간 지속된 미국과 아프간의 전쟁은 이번 미군의 철수로 정권은 다시 탈레반에게 돌아갔다.      


탈레반 통치 5년

1919년, 3차 아프간-영국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아프간은 한동안 평화를 유지한다. 하지만 1973년, 군부 쿠데타로 200년 왕정이 붕괴되고 이후부터 쿠데타와 내란 등 혼란이 시작된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지만 1988년 제네바 평화협정으로 다음 해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군벌 간 세력 다툼으로 내전이 확산된다. 1994년, 이러한 혼란 속에 외세 척결과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탈레반이 등장한다.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자, 반복된 정쟁 싸움과 외세의 침략에 지쳐있던 아프간 사람들은 처음에는 탈레반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바람과는 달리, 이슬람 샤리아법을 강압적으로 적용한 억압적 통치를 자행하면서 탈레반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텔레비전, 영화 등의 오락행위는 일절 금지됐으며, 샤리아법을 어기면 태형과 공개처형 등 극형을 서슴지 않았고, 특히 여성에 대해 가혹한 억압과 폭력을 가한다. 여성의 교육과 취업 및 각종 사회활동을 막았을 뿐 아니라 여성은 부르카와 남성의 동행 없이는 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없고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탈레반은 우상숭배 또한 금지했다.


찬란한 유산과 다시 위기에 처한 아프간의 황금 유물

아프간은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연결하는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페르시아, 그리스, 불교, 힌두교와 이슬람 문화가 전파ㆍ교차되어 곳곳엔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깃든 유산들이 풍부했다. 탈레반은 이러한 문화유산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강탈하고 파괴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문화유산 바미안 석불 폭파 사건이다. 2001년 탈레반은 1500년 전, 절벽을 깎아 만들었던 거대한 석불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이 문화 유적을 폭파해 버렸다. 


더 큰 위험에 놓인 소수민족

아프간은 파슈툰(42%), 타지크(27%), 하자라(9%), 우즈벡(9%) 등 20개 이상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다. 험준한 산맥과 사막 등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중앙집권적이기보다는 민족별로 분산적이고 고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민족별로 독립적이며, 민족의 혈통과 명예를 사상적 요소나 종교보다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뿐 아니라 민족 간의 분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아프간을 지배하던 수니파인 파슈툰족과 소수의 시아파인 하자라족의 인종문제는 19세기부터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소수민족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혐오는 탈레반 정권 하자라족 수천 명을 살해하는 대량학살의 비극을 야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하자라족은 탈레반 정권 시절 가장 치열하게 대항하던 집단 중 하나였다.  


지난 20년 그리고….

2001년 미군의 공습으로 탈레반은 정권에서는 물러났지만,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살 테러, 외국인 납치 등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이러한 테러의 대상에는 하자라족과 같은 소수민족과 여아들의 학교가 그들의 타깃이 되었다. 이러한 테러와 같은 위험과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존재했음에도 아프간 사람들은 여성의 교육과 사회참여 등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여아와 여성들은 학교, 직장으로 돌아왔고, 여자 축구단이 생겨났다.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과거 탈레반 집권 당시 행했던 무자비한 인권 탄압과 충격적인 만행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절대 지나친 기우라 볼 수 없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장악한 지 일주일. 이미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국제기구 등 외국기관 협력자와 언론인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며, 탈레반은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과 카불 공항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자국민에게 총격을 가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보복은 이미 아프간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내 반탈레반 무장세력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어 다시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더불어 알카에다와 IS 테러 조직들의 움직임조차 심상치 않다. 이는 현재 사태가 아프가니스탄만의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국제사회는 심각한 인도적 위기에 처한 아프가니스탄과 전 지구적인 안보 위기에 처한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벌써 난민 수용 찬반으로 시끄럽다.  


국내외 사정으로 각 국가의 입장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인류사에 있어서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비극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비극은 비단 아프가니스탄만의 실패가 아님을 말해준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아프간의 문제는 결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연대와 관심이 절실하다.




아프가니스탄의 100년 사 : https://blog.naver.com/dapschool/22248016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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