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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Feb 04. 2022

기후위기, 각자도생 사회를 넘어

책 <탄소사회의 종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 #21세기북스, 2020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사회학 / 480쪽
#환경 #기후위기 #기후정의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의 논리와 작동방식을 깊이 내면화한 고탄소 사회체제를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생산, 소비, 그리고 인간의 내밀한 의식까지 지배하는 달콤한 중독의 체제다.
다른 한편으로, 탄소 사회란 탄소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불평등이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한 나라 내에서 깊이 뿌리내린 사회 현실을 뜻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탄소 사회는 팍팍한 고통의 체제다.
p.14


영화 <돈룩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풍자 영화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과한 풍자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처절하고 씁쓸했다. 종말 앞에서조차 지지율을 끌어올릴 기회로만 생각하는 정치인, 성장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가십거리를 남발하는 언론, 불편한 소식을 외면하는 대중.... 결국 막을 수 있던 종말은 기어코 다가온다. 영화의 부제는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다.

지구의 종말(엄연히 말하면 인류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실화가 될지도 모를 종말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모래바람이 부는 지구, 꽁꽁 얼어버린 지구. 그것도 아니면 행성 충돌로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을 맞은 지구…. 물론 그전에 기술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역시 종말은 너무 멀리 나간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그 시간을 이미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종말을 다룬 영화를 보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종말의 시간을 대비해 만든 지하 벙커의 입장권이나 지구를 탈출할 우주선의 탑승권은 모두에게 나눠질 수 있을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 기회가 있을까?


‘기후변화는 계급 전쟁’이라고 단정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루 종일 냉방시설에서 냉방시설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살 수 있는 혜택 받은 극소수와, 다양하게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나머지로 이루어진 새로운 기후계급”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p.229


굳이 영화 속 종말의 모습을 끄집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기후위기 문제에서 ‘형평성의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는 화두다. 기후위기에 대해 상대적으로 책임이 더 큰 국가들보다 책임이 적은 국가와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모순 속에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위기 앞에서 과거의 일은 덮어두고 제로에서부터 시작해 대책을 논의해야 할까?', '우리의 과잉된 삶은 포기하지 않은 채 개발도상국의 개발 기회를 막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 둔화를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조금 더 기술이 발전될 미래로 이 문제를 유보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기술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개도국 중에는 이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으로 이 애초부터 불리하게 구조화된 경우가 많다. 모든 인류가 그 안에서 생존과 생활을 해나가는 지구의 대기는 인류의 ‘공통 관심 사안’이다. 그런데 인류의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북반구 선진국들이 ‘대기의 식민화’를 통해 온실가스를 함부로 배출하면서 개도국들도 함께 사용해야 할 대기환경을 미리 선점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세계 모든 지역의 사회적 대비 상태, 재난 취약성, 회복력, 인프라 설비 등은 식민 지배 유산의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데 1.5도니 2도니 하는 하나의 전 세계적 단일 목표를 정해놓고 그 수치가 초과되면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기술관료적 보편주의에 입각한 목표 달성 논리다. p.100


이 책은 기후위기를 ‘인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며 ‘사회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어떤 성격의 위기인지, 누구의 책임이며, 왜 풀기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며, 왜 인권의 눈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또한 기후위기라는 범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제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맞서자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며, 제대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공정하지 않은 전환은 내일의 불공정한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사람들에게 기후행동에 나서자고 설득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환은, ‘지금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평등하고 덜 부조리한 세계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과 결부될 때에만 정의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p.262


기후위기는 결코 각자도생으로 넘길 수 있는 위기가 아니다. 함께 하지 않는다면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응책만큼이나 지구라는 커다란 사회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희망은 객관적 조건의 산물이 아니라 실천적 행동의 창조물임을 기억하자. 한편에 과학의 법칙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그리고 창의적인 적응력이 있다. 양쪽 끝을 민주시민의 행동으로 잇는다면 실존의 세기를 건너는 희망도 말할  있을 것이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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