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
1879년 류큐왕국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키나와인은 끊임없이 일본 본토로의 동화와 이화 정책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왔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키나와 주민은 일본 본토 국민을 살리기 위해 희생되었고 종전 이후에도 미군 주둔지로 잠재적 전쟁의 위험과 불안을 떠안고 있다.
“당신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당신 눈앞에서 일본인이 중국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당신은 비판적이지만 무관심으로 가장한 적은 없습니까?”
- 『칵테일 파티』 중 p.102
오시로 다쓰히로는 전후 오키나와 문학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1925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1943년 중국 상하이 동아동문서원대학에 입학했지만, 패전으로 1946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67년,『칵테일 파티』로 오키나와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쿠타가와문학상(제57회) 수상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오키나와인은 누구인가’, ‘일본인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전후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를 향해 성찰적인 물음을 던져왔다.
누구를 증오해야 할지 지금 딱히 특정한 죄인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전쟁을 증오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고. 전쟁을 증오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책임을 면하게 되는 것이고.... “
- 『신의 섬』 중 p.261-2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에서는 전후 오키나와의 모습을 그린 3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미군 점령하에 미군 기지와 관련된 오키나와의 현실을 고발하는 『칵테일 파티』(1967),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 집단자결을 다룬 『신의 섬』(1968), 어느 날 갑자기 전쟁에 내몰린 오키나와 가족의 모습을 그린 『거북등 무덤 -실험 방언이 있는 한 풍토기』 (1966)다. 3편의 소설을 통해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겹쳐지고 어긋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전쟁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흔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중첩되어 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상기시켜 준다.
촌장은 잠시 뒤 돌아와서 명령을 전달했다. “군은 최후 병사 한 사람까지 섬을 사수할 각오를 하고 있다. 그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도민은 자결하라”라는. 그리고 한 세대에 한 개의 수류탄을 배급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동요는 있었지만, 얼마 뒤 누군가가 수류탄의 신관을 뻬고 그것을 가슴에 안고 냇가에 있던 여러 명의 사람들과 산화하자, 그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여기저기서 폭발을 일으켰다. 불발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긁거나(긋거나?), 혹은 괭이로 아이 머리를 내리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까지 329명이 자결을 하고, 자결을 피해 마을로 돌아간 몇 안 되는 이들 가운데는 다음 날 자결해 하천 하류에서 피가 발견되기도 했다.
- 『신의 섬』 중 p.128
특히 ‘오키나와 집단자결’(집단자결이라 쓰고 '집단학살'로 읽는다. 명백히 집단학살이었다)를 다룬 『신의 섬』은 충격적 그 자체였다. 이 작품의 배경은 태평양전쟁 말기 1945년 4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인 '오키나와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약 21만 명이 희생됐다.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국이 상륙하면 치욕적인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며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한다. 결국 오키나와인들은 미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느니 스스로 죽는 것을 선택(당)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에게 받은 수류탄을 이용하거나 극약을 먹었고, 가족과 이웃은 서로 칼로 찌르거나 목을 졸라 죽는 것을 도왔다. 1000여 명의 오키나와인들이 집단자결로 목숨을 잃었다.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독립을 유지하다 1879년에야 일본에 강제 병합된 곳이다. 일본 사람들은 오키나와에 상륙하며 오키나와인들이 자신들을 배신하여 미군의 스파이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일본군은 황민화 교육을 통해 ‘집단자결’을 강요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도 오키나와 집단 자결은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목에 면도칼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 있어요. 아버지는 상처가 없는데 말이죠.”
- 『신의 섬』 중 p.156
이 작품이 ‘문제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고, 꺼려했던 금기를 깨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폭력성뿐 아니라, 그동안 암묵적으로 쉬쉬해오던 본토-오키나와 사이의 불신과 갈등, 오키나와인 사이 침묵되고 침묵이 강요되었던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촌장이 주민들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서로 죽여야 했던 역사를 누구는 자신의 치부로 감추고 싶었고, 누군가는 쓰라린 상처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였던 것이다. 승전국-패전국, 국가-지역, 다수-소수, 가장-가족 등 다양한 사회의 권력 구조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중첩되어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없었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 이 작품은 오키나와인-야마토인(본토인) 간의 미묘한 관계와 차별, 조선 출신 노동자와 조선인 위안부를 언급하며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책임져야 했던 부채는 없는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데 모아 전쟁의 희생자로서 모시는 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묻고 있다.
전쟁 이후 몇 년이 지나 섬에서 겨우 생활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자 유골 수습이 시작되었다. 격감한 인구와 세대에 해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몇몇이 가세했다. 그들이 유연, 무연의 유골들을 주워 모았다. 형식적으로 숫자만 맞춘 유골을 거두어갈 사람이 있으면 전달하고 나머지는 무연불로 모셨다. 전쟁의 기억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 『신의 섬』 중 p.142
심리적으로 극단에 몰린 오키나와인들이 다른 선택지 없이 집단자결을 했어야 했던 배경과 이후에도 오키나와 전쟁에서 오키나와인들이 스파이짓을 해서 진 거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나는 이 장면에서 ‘제주 4.3’을 떠올렸다. 잔인했던 학살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겪어야 했던 비극의 삶. 오키나와가 겪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폭력과 차별, 편견은 제주가 겪어야 했던, 겪고 있는 폭력성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됐다.
"어이, 할망. 함포여, 함포. 전쟁이여."
(~중략~) "뭐 마씸? 함포? 전쟁? 오늘 온댄마씸?"
"그려, 온댄 허네. 빨리 도망가사 해. 애들은, 아이고."
"내일 있을 졸업식 연습에."
우시는 서둘러 처마 끝으로 가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다시 통 앞으로 돌아왔다.
"도새기 배는 채워둬야."
그리고는 우시가 뒤편 돼지우리 먹이통에 감자죽을 붓고 있으려니, 다시 두 발 정도 쾅쾅, 쾅쾅하는 소리가 울렸다.
"할망. 뭐 허는 거라? 죽으면 손자들한테 미안허잖아."
젠토쿠는 쌀을 담은 석유통을 삼태기에 옮겨 싣던 손을 내려놓고는, 뒷방 창문에서 소리쳤다.
"아이고, 지금 당장 죽기야 허쿠과, 영감도 함. 도새기 배를 채워두지 않고 도망가면 언제 다시 먹이를 주게 될지 모르잖우꽈."
-『거북등 무덤 -실험 방언이 있는 한 풍토기』중, p.270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은 작품 속 오키나와의 방언이 제주어로 번역된 『거북등 무덤 -실험 방언이 있는 한 풍토기』다. 전쟁이 코앞까지 닥쳤지만 피신은 가더라도 돼지의 먹이는 주어야 한다. 전쟁이 나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낙천으로 해석해야 하나 살짝 실소를 머금었다가 하루아침에 일상이 전장으로 변해버린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쟁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겠구나 생각하니, 씁쓸함이 뒤섞였다. 오시로 다쓰히로의 작품을 읽으며, 전쟁은 어떤 시선, 어떤 언어로 기록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승자의 시선, 다수의 시선으로 기록되어진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침묵되어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오시로 다쓰히로는 소설을 통해 지역의 시선으로 전쟁을 다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