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울지 않는 달』
“달은 처음으로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 생겼다.” p.40
이지은의 『울지 않는 달』은 전쟁과 파괴로 상실과 상처 입고 삶의 불완전함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의 기도를 듣던 초월적 존재였던 달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져 땅으로 내려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늘 위에서 인간들의 기도를 듣던 달은 그저 하늘에 떠있을 뿐 전지전능한 힘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끝없는 기도 속에서 점점 지쳐간다. “먼지보다도 작게 부서져 한 톨의 자신도 남지 않기를. 그 누구도 자신에게 기도할 수 없기를” 빌며 스스로 소멸을 바라던 달은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땅으로 떨어진다.
하늘에서 떨어진 달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와 상처 입은 늑대 카나와 함께 땅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지만, 아이와 카나가 서로를 돌보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달 역시 변화한다.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달은 한결같은 카나의 헌신으로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했다. 스스로 알지 못했을 뿐 달도 늘 아이의 곁에 있었다. 달은 ‘함께 있음’을 경험하며, 관찰 대상이라고만 여겼던 카나와 아이가 정작 자신을 지켜 준 존재였음을 깨닫는다.
“다 부서지고 작아지면 별이 되나 보지”라는 문장은 존재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우화적으로 담아낸다. 이 책은 탄생과 소멸, 그리고 재생의 순환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던 관계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고 살아간다. 그러나 달과 아이, 카나가 서로를 돌보는 여정은 타인과의 연결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관계의 소중함과 존재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제공한다.
p.23
달이 나지막이 입을 뗐다.
“원래 삶은 완벽하지 않단다.”
처음이었다. 달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p.52
“너의 용기로.”
카나가 늑대의 인사를 전했다. 늑대들은 배려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인사는 ‘너의 배려를 잊지 않겠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p.88
“곧 멈출 거야.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건 없단다. 나도 하늘에서 떨어졌잖니.”
p.92
달은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일까 궁금했다. 달에게 감정이란 늙지 않는 쥐의 나이를 알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숙제였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무지개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순간이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확신했다.
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2025
소설 | 164쪽
#관계 #존재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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