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를 계승
제주의 중산간은 예로부터 목축업이 성행하여 목축문화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날 제주를 대표하는 축제로 계승되고 있는 들불축제다.
제주에서는 중산간 초지를 찾아다니며 방목 관리하던 풍습이 있었다. 방목을 맡았던 목동 ‘테우리’들은 양질의 목초를 찾아다니며 소와 말에게 풀을 먹였다. 농사 일이 거의 없는 늦겨울에서 경칩에 이르는 기간에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고 새 풀이 잘 돋아나도록 하기 위해 마을별로목야지에 불 놓기(방애)를 했다고 한다. 불태워진 곳에서의 곡식들이 아무런 병충해 없이 무럭무럭 자랐고, 새풀은 다시 중산간에 풀어놓은 우마들이 먹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그렇게 대대로 내려오던 풍습이 축제로 승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지난 주말 궂은 비바람 날씨에도 기어코 불은 타올랐다고 한다.제주지역 한 신문에 <비날씨 일부 기름 이용한 '들불축제' 환경 우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다. 기사의 내용은 제주도 최우수축제, 9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제주 들불축제를 안개와 비 날씨 등 악천후 속에 강행하며 기름을 사용하는 등 무모한 시도를 했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불 놓는 1시간 앞당겼으나 이를 제대로 홍보도 하지 않아 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과 도민들의 비난도 나왔다.
몇 해전 제주는 강풍으로 인해 들불축제를 취소 연기했다. 오름 불 놓기를 보기 위해 축제장을 찾은 도민과 관광객은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지나고 나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다들 칭찬했던 기억이 있다. 타 지역의 억새 태우기 축제가 산불로 번지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대형참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전통문화 재연뿐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를 계승하는 것 또한 함께, 아니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축제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 정책결정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노고에 대한 치하는커녕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니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