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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ug 16. 2016

오랜 정치적 갈등이 테러를 낳았다.

방글라데시 역사와 테러 문제에 대해

본문에 오류가 있어 수정합니다.
3월 26일은 <언어의 날>에서 <독립기념일>로 수정합니다. (2월 21일이 '세계 모국어의 날')

- 수정 | 2017년 2월 6일

현재의 방글라데시의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5년 8월 15일을 알아야 한다.



▲ 셰이크 무지불 라허만 대통령(왼쪽)과 이후 권력을 장악한 지아울 라허만(현 제1야당 총수인 칼레다 지아의 남편으로 하시나의 쿠데타로 시해당함)

1971년 독립한 방글라데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독립전쟁을 통해 나라를 건국했고, 짧은 역사 속에서 20여번의 쿠데타를 경험했다. 여전히 방글라데시에서는 정치ㆍ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시위와 노동 문제로 인한 시위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는 종종 폭력적인 시위로 변질되어버린다. 최근에는 테러가 방글라데시의 치안을 위협하는 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잦은 시위와 다카의 테러와 세속주의 성향 활동가, 언론인, 외국인 등을 향한 테러 등 방글라데시 정정 불안 요인에는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전범재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전범재판과 관련된 혼돈의 시작은 바로 어제 8월 15일의 역사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8월 15일, 방글라데시의 <Bangladesh National Mourning Day>라 불리는 '추모의 날'이다.

방글라데시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47년 8월 14일, 종교적인 이유로 서파키스칸과 묶여 동파키스탄으로 독립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종교만 같을 뿐이지,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언어와 민족 자체가 다르다. 이런 까닭에 파키스탄이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언어를 말살시키려 하자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총리의 아버지인 세이크 무지불 라허만이 1971년 3월 26일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파키스탄 중앙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동파키스탄 독립을 주장하는 벵갈족 시민과 학생, 지식인 등을 무차별 학살했다. 파키스탄에 대항한 독립전쟁은 3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다. 12월 3일 인도의 참전으로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하여 1971년 12월 16일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라는 국호로 독립하게 된다. (12월 16일을 <승전 기념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는 독립운동의 계기가 된 3월 26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해 이를 기념하고 있다.)
 
독립 이후, 셰이크 무지불 라허만은 스스로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고 우리나라로 보면 친일파인 '친파키스탄'을 청산하기 위한 전범재판을 추진한다. 하지만 1975년 8월 15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여 셰이크 무지불 라허만은 결국 가족과 함께 암살되었다. 그 당시 독일에 유학 중이던 현재 방글라데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와 레하나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8월 15일을 추모의 날로 정해 방글라데시 '방가본두'('국민 친구') 불리던 라허만 대통령과 그의 가족의 넋을 기리고 있다.


방가본두가 죽고 흐지부지되었던 전범재판은  방가본두의 딸인 셰이크 하시나가 총리가 되자, 본격적으로 전범재판에 대한 활동을 시작했다. 취임 이듬해인 2010년 전범 재판소(ICT-2)를 설립했고, 전범 재판소가 2013년 첫 판결을 선고한 이후 지금까지 10여 명에게 사형과 종신형, 징역 90년 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1971년에 치러진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과 통합을 주장하던 그의 지지자들로, 파키스탄군의 학살과 강간, 고문 등을 도운 혐의로 지난 2013년 재판에 회부되었다. 9개월간의 독립전쟁 동안, 파키스탄군과 파키스탄과 통합을 주장하던 그의 지지자들은 민간인 300만 명을 학살하고 20만 명이 넘는 여성을 강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자마앗 지도부 3명과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고위 관계자 1명이 이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이 집행됐다.  모두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야당 지도자로 전범 처벌을 빌미로 야권 인사에 대한 '정치탄압'이라 주장하며 야권은 반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전범재판이 시작된 2012년 이후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 상태로 인한 방글라데시 내 정정 불안정 상태가 세계적인 IS 이슈와 맞물려 세속적인 성향의 블로거 및 활동가, 언론인, 외국인 등을 향한 테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IS는 최근 외국인 대상 테러나 다카 테러의 배후로 자처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방글라데시 내 IS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IS 선전활동을 하며 조직원을 충원하고 지령을 받아 테러를 실행하고 등 SNS 등 온라인 활동 또한 무시할 수 없는 IS의 큰 활동 범주인 IS 활동 특성을 안다면 방글라데시의 정부의 주장은 반은 맞을 수 있지만, 반을 틀린 말이며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내 테러조직과 IS 간의 연계성은 무관할 수가 없다. 방글라데시 내 극단적인 정치 대립 상황과 최근 테러의 배후를 야당이라며 주장하며 정치적으로까지 이용하고 있다. 이는 고립된 상황으로 이끌어 가며 잠재적 위험요소를  키우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안정화를 위해 여ㆍ야가  대테러 활동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사진출처 | The Daily Star,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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