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5 days of drawing
18일째 이어가고 있는 드로잉은 항상 같은 스케치북에 제한된 도구만 써서 해오고 있다. 사쿠라 코이 고체물감 12색, 물통붓 3종류,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0.4. (가끔 두꺼운 선이 필요할 땐 코픽 멀티라이너 1.0을 쓰기도 하는데, 스테들러와 코픽을 일부러 구분 지은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샀다.)
팔레트는 늘 드럽다. 매번 씻어두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섞어놓은 색을 다음에 또 쓰기도 하니까... 너무 비겁한 변명인가. 흰색 플라스틱이라 금세 물감물이 들어 씻어도 얼룩덜룩하다. 브런치에 올리는 그림 그릴 때 빼곤 이 팔레트를 쓰지 않는데, 늘 그림에 그림자를 넣다 보니 검은색 물감이 움푹 파였다. 365번째 그림을 그릴 때면 물감이 얼마나 많이 닳아 있으려나.
물통붓은 한 3년 전쯤 샀는데, 그땐 잘 쓰지 않다가 이제야 뽕을 뽑고 있다. 물통이 달린 붓!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진짜 무릎을 탁 쳤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가 막힌다. 일본 사람이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빳빳한 듯 탱탱한 인조모는 컨트롤하기 편해 마음에 든다. 얼마 전 들은 수채화 재료학 세미나에서 인조모는 탄력이 좋은 대신 빳빳해서 종이 표면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종이 손상까지 신경 쓰며 그릴 수 있는 내공은 아니라 그냥 막 쓴다.
드로잉 펜도 산지 몇 년이 된 것이다. 갓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어느 브랜드, 어느 굵기가 나에게 맞는지 몰라 화방에서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보며 다양하게 사봤다. 막상 펜을 사고 보니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내 실력은 생각지도 않고 도구 탓만 했다. 그렇게 또 필통만 지키고 있던 펜들인데, 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면서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매일매일 그리고 쓴다는 게 부담스럽긴 해도, 여러모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으로 그리진 못했지만, 스케치북은 '글로리아'라는 곳에서 만드는 A4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쓴다. 종이가 105g이라 사실 수채화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을 조금만 많이 써도 종이가 울고(그림을 올릴 때 운 흔적은 보정으로 지운다), 얇다 보니 물감이 금방 말라버린다. 일단 드로잉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라 종이에 욕심을 내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 의외로, 얇은 종이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느낌도 있어서 크게 불만은 없다.
화구는 보고, 듣고, 사고, 쓰고, 말하는 것 모두가 다 즐겁다. (그중에서 제일은 역시 '사는 것'.) 별 얘기 꺼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글이 길어졌다. 내일은 드로잉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의식인 라벨 작업에 쓰는 다이모를 그려야겠다. 요즘 소재가 좀 궁했는데,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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