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5 days of drawing
오랜만에 밥을 했다. 나는 대부분의 집안일을 귀찮아 하지만, 밥을 짓는 것은 순위권 안에 드는 귀찮은 일이다. 심지어 일은 밥솥이 거의 다 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 번 할 때 왕창 해둔다. 처음 며칠은 보온 상태로 두고 먹고, 그 뒤로는 냉동보관 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식으로 소진한다. '갓 지은 밥'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다. 어떤 식으로든 먹기 전에 따스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밥솥은 내게 세탁기보다도 덜 자주 만지는 기계다.
밥에 애정이 없는 것 치고는 밥솥이 꽤나 삐까뻔쩍한데, 몇 달 전 엄마가 홈쇼핑으로 주문해서 쏴주셨다. 말을 하고 시간을 알려주는 밥솥이라니, 과분하다. 뭔가 기능도 많아 보이는데, 오로지 '백미 일반밥, 취사' 기능만 쓴다. 그 전에는 장난감 같은 밥솥으로 밥을 지어먹었다. 디자인은 그게 더 예뻤다.
먹는 즐거움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밥에 대한 애정이 딱히 없으니 밥이나 밥솥에 대한 감수성이랄까 철학이 너무도 빈곤함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아까 열심히 일을 하는 밥솥을 관찰하면서 드로잉을 할 때는 뭔가 내 안에서 작은 울림(?)이 있었다고 느꼈는데, 밥을 다 먹고 나니 날아가 버렸다. (그냥 '배고픔'이었나...) 글로 남기기 위해 앉으니 '밥 하는 건 너무 귀찮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쌀, 밥솥, 엄마한테 미안해지는 밤이다.
http://www.instagram.com/dara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