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365 days of drawing
내 자취방에서 '이런 걸 네가 왜?'라는 질문이 나올 법한 물건을 꼽자면 1순위는 단연 이 '법화경'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그때 살던 동네가 '법화정사'라는 곳과 가까웠는데, 몇 년째 법화경 필사를 하고 있던 엄마가 법화정사에서 법화경을 사다 달라고 하셔서 쭐레쭐레 사러 갔더랬다. 엄마 것만 살랬더니 엄마는 내 것과 동생 것도 같이 사라고 하셨고, 사고 얼른 나올랬더니 지금 스님이 와계시니 이름을 받아가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한 채 시키는 대로 또 쭐레쭐레 어느 공간에 들어갔다.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인 듯 보였는데, 어느 걸걸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때 당시 고향집에 가면, 엄마는 늘 어느 스님의 강연 테이프를 틀어놓으셨는데, 나는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목소리만은 잊을 수 없게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그런데 스피커를 통해 듣던 그 목소리가 지금 내 앞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저 법화경의 표지를 열면 누구누구 불자님께 하며 이름과 날짜, 누가 드림 등을 쓸 수 있는 장이 나온다. 거기에 그 스님이 '소원성취'라는 문구와 받을 사람의 본명과 법명, 그 날의 날짜를 불기로, 그리고 드리는 사람 칸에 스님의 법명을 적어주셨다. 나는 마치 저자(?) 사인회에 온 사람처럼 앞에 서서 기다렸다. 누가 봐도 불교의 ㅂ도 모르는 사람, 누가 시켜서 온 사람처럼 멀뚱히 서서.
법화정사를 나서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테이프 속 그 스님을 만났다고. 아니나 다를까 엄마 목소리의 옥타브와 데시벨이 한껏 올라간다. 그 스님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방금 얼마나 엄청난 일을 겪은 건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왔어야 하는데. 가치를 모르는 엉뚱한 사람이 기회를 누려버린 기분은 영 찜찜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엄청난(?) 스님이 내 이름까지 적어주신 이 엄청난 법화경에 먼지를 쌓는다. 그러다 가끔 일이라도 안 풀릴 때면 먼지를 슥슥 닦고 두 손으로 책을 꽉 쥔 뒤 '제게 기운을 주세요'하며 공으로 행운을 바란다. 퍽이나 잘도 들어주겠다 싶다.
http://www.instagram.com/daralogue
http://blog.naver.com/wrongtimenos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