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솟는 볼펜

242/365 days of drawing

by 나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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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7년 전, 신입 카피라이터로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디자이너 차장님과 나만 야근을 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무리에 속하기 위해 애쓰고, 일은 서툴러도 패기는 넘치는 막내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차있을 때라 어색함과 불편함을 꾹 누르고 '차장님,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고 말을 먼저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난 사무실, 배달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차장님과 마주 앉았다. 웬만큼 친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밥 먹는 일은 정말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인데, 갓 입사한 회사에서 사수도 아닌, 다른 팀 상사와 단둘이 식사라니... 머릿속은 오만 가지 걱정들로 가득했다. 분위기가 적막해지지 않도록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말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밥을 너무 많이 남겨서 이 자리가 불편했다는 티가 나면 어쩌지 등. 만약 차장님이 꺼내신 첫마디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날 밥을 먹고 체했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어색하지? 왜 안 어색하겠어. 그런데 그걸 알아야 해. 네가 어색한 만큼 우리도 어색하다는 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걱정들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가 그리고 차장님이 (거짓말 조금 보태) 편해지기 시작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까지 나는 이 무리에 새로 들어온 내 입장만 생각했었다. 서로 이미 친하고 편한 사이에 내가 끼였으니 나만 불편하고 나만 어색한 것이라고. 저 사람은 직위가 높으니까 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까 아랫사람이 뭐가 불편하고 어색하겠어 싶었다. 손님이 우리 집으로 온다고 해서 내가 마냥 편했던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 전부 대하기가 쉬웠던가. 왜 지금껏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기존 사람들 또한 새로 들어온 나 때문에 이런저런 눈치를 봤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제야 동병상련이 들며 여기 생활,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차장님은 내 카피가 마음에 드셨는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점심 먹고 구경삼아 들린 문구점에서 이 볼펜을 사주셨다. 그냥 귀엽고 특이하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 회사를 퇴사한지는 이제 5년이 넘어간다. 차장님과의 인연은 끊겼지만 이 볼펜은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나 환경에 겁을 먹을 때마다 이 볼펜을 보고 차장님의 그때 그 멘트를 떠올린다. 나만 어색한 것도, 나만 불편한 것도, 나만 애쓰는 것도, 나만 참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그러면 거짓말처럼 두려움이 사라지고 상대를 대하기가 한결 편해진다.


생각해보니 그때 차장님은 지금의 내 나이였다. 내가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부하직원(설마 있겠지?)이나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저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텐데, 아쉽게도(?) 자유의 몸이니 허공에다 대고 떠들기로 한다. 부디 필요한 사람에게 가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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