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65 days of drawing
프리한 나는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에 본가에 내려갔다. 기분은 룰루랄라였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다. 버스에서부터 위가 콕콕 쑤셔왔다. 좀 쉬면 괜찮겠지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콕콕 쑤셨다. 앓아누울 정도는 아닌데 가끔씩 올라오는 통증이 거슬렸다. 결국 본격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병원에 갔다. 위염인 것 같다고 했다.
심각하진 않지만 얼른 낫기 위한 몸부림으로, 약도 먹고 음식도 신경 써서 먹고 있었다. 그러는 내게 엄마는 물 대신 레몬에이드를 권했다. 썬키스트 레몬에이드. 레몬맛 아니 레몬향 음료에 가까운 음료. 심지어 탄산도 없는... 과연 레몬이 들어있긴 할까. 엄마는 조금이라도 들어있지 않겠냐며, 레몬은 산이니까 소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엄마는 진지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 이 순진한 아줌마를 우째야 좋을꼬.
엄마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나중에 뒤통수를 맞더라도 일단 믿고 본다. 아빠는 의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 사이에 태어난 나는 왔다 갔다 한다. 대체로 의심이 많으나 가끔 바보처럼 순진해질 때가 있다.
살면서, 의심을 잘(?)해서 나쁜 일을 비껴갔을 때의 안도감은 그닥 산뜻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좋은 것에 대해 했을 리가 없는 의심이 맞는 것도 씁쓸하거니와, 그런 걸 의심해낸(?) 내가 현명하다기보다 (왠지 모르게) 영악하다는 기분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믿고 믿는 세상을 바라면서도 나도 모르게 곤두서는 안테나를 막을 길이 없다.
레몬과즙 농축액 10%. 레몬에이드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한테 '내가 뭐랬어'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참고 또 참았다.
+ 참, 엄마는 내 레드립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무슨 이야긴지 갸우뚱하시는 분은 바로 직전글을 확인해보세요:) )
http://www.instagram.com/dara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