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500

52/365 days of drawing

by 나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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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쯤인가, 현관 앞에 비타500 한 박스가 (한 병도 아니고 한 박스가) 편지봉투와 함께 놓여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길에 다른 집 앞에도 놓여있는 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주인아주머니께서 좋은 분이긴 하지만 이런 걸 돌리실 분은 아닌데...'였다. 꼿꼿하게 선 채로 고개만 쭉 빼서 봉투 겉면을 보니 빌라 건너편에 있는 복지관 로고가 찍혀있었다. 출처를 확인하고 든 생각은 '복지관에서 웬 영업?'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믿는 나는 봉투를 열어봤다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라 그냥 문 앞에 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금 전단지를 돌렸다가 다시 회수해가는 것처럼 그냥 두면 알아서 가져가겠거니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문 앞 내가 옮겨놓은 그 장소에 비타500이 그대로 있었다. (와, 사람들의 양심에 진심 감동...) 그러고도 며칠을 더 두다가 결국 못 참고 봉투를 열어봤다. 며칠부터 며칠까지 복지관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불편을 끼치게 될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냥 1층에 A4용지로 한 장 프린트해서 붙여놔도 될 것을 뭘 이렇게까지 한담!' 괜히 약이 올랐다. 편지지가 '넌 왜 그렇게 때가 묻었니?'하고 비웃는 것 같아서 바로 버렸다. 박스를 북북 찢어 폐휴지함에 넣었다. 비타500 10병을 냉장고 안에 막 집어넣었다. 민망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고 얼마 뒤,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옆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비닐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틈틈이 유리병이 부딪혀 짤랑이는 소리가 났다. 백 퍼센트 비타500 병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사람이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해진 비타500 한 병을 꺼냈다. 순간적으로 '약 탄 건 아니겠지?'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나도 이런 내가 싫다. 드르륵, 병뚜껑 뜯기는 소리에 안심하면서 쭉 들이킨다. 달달하니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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