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덕후 생활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 근황을 묻는 말에 조심스레 '아이돌 생일 카페 다녀왔어.'라고 말했고 '그게 뭔데?'라는 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어느 아이돌에게 '치여서' 아주 활발하게 팬덤 활동을 하고 있다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치이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예능을 보다가 순간 잡힌 웃는 모습에 심쿵해, 정신을 차려보니 덕질 전용 계정을 파고 앨범을 듣고 팬카페에 가입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아이돌은 도대체 어떻게 웃었길래 심쿵해서 입덕까지 했어?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생활, 직장 생활에서도 나는 누군가의 최애가 될 수 있다.
입덕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고, 누구든 내 예상 밖 모습을 보고도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구직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아니 백수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내 마음속 두더지가 밑으로, 밑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나는 왜 아무 데서도 반겨주지 않는 것 같지?
그럼에도 80억 인구 중에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어딘가 반드시 있다.
대학생 시절, 자원봉사로 외국에 간 적이 있었다. 한국 문화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플래시몹을 준비했는데, 아뿔싸. 천하에 둘도 없는 몸치인 내가 그 플래시몹에 끼게 된 것이다. 인원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억지 춘향이로 춤 연습을 했는데, 춤 못 춘다고 구박받는 게 어찌나 서럽고 억울하던지...
그리고 본 공연날. 기적은 없었다. 재능의 벽은 컸다. 나는 한결같이 녹슨 로봇 같았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냥 밝게 웃는 것뿐이었다. 망신살은 당당해야 빛난다!
공연이 끝나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한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플래시몹을 했던 역 광장의 꽃집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의 기세가 100%인 공연을 처음부터 다 봤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넸다.
"너 웃는 게 예쁘구나. 보는데 기분이 다 좋아졌어!"
"정말요?"
나는 꽃을 받으면서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최애가 될 수 있다.
그 기준엔 자격도, 완벽함도 필요하지 않다.
과거의 나는 알고 있었는데, 최근의 나는 그걸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