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가 '노동 인구'가 된 순간부터, 우리 집 밥솥은 조용히 은퇴했다. 온 식구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하루 한 끼라도 모여서 밥을 먹기가 어려워졌고, 먹게 되더라도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는 게 더 편했다. 또 어렸을 때는 몰랐던, 엄마가 사실 식도락에 큰 즐거움을 못 느끼는 편이라는 것과 밥보다는 초콜릿과 커피를 더 좋아하는 식습관도 이러한 변화에 한몫했다.
본가에 내려가면 내가 주로 먹는 음식은 비빔밥이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다 털어 넣고 슥슥 비벼 양껏 먹는다. 비빔밥 한 입에 집반찬을 세 가지 이상 담을 수 있으니, 내 기준 가장 가성비 좋은 ‘엄마밥 먹기’ 방법이다.
이번에 본가에 갔을 때,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성인들은 다 각자 스케줄로 바빴다. 본가에 있는 내내 가족들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면 믿으려나? 방구석 룸펜은 나 하나뿐이라, 하루 종일 새침한 우리 집 고양이들과만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각자 각방!)
그 주 토요일 오후, 외출 중인 엄마가 [맛있는 거 사갈 테니 기대해]라고 카톡을 보냈다. 과연, 엄마가 사 온다는 맛있는 건 뭘까? 사실 아점을 한바탕 먹은 뒤라 조금 흥미가 떨어진 상태이긴 했다.
엄마가 사 온 것은, 갓 튀긴 꽈배기도너츠였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
‘내가 좋아한다’는 근거가 엄마의 어떤 기억에 기대고 있는지,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의 시장 초입에는 즉석 도너츠 가게가 있었다. 엄마는 나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으레 그 도너츠 가게에서 꽈배기를 하나 사주었다. 냅킨으로 손잡이를 만들어주면, 나는 왼손은 엄마손을 잡고 오른손은 꽈배기를 들고 묵묵히 엄마의 시장 투어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그때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반 농담조로 "난 사실 팥이 들어간 도넛을 더 좋아했어!"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먹기에 편하고 네가 별말 없이 잘 먹어서 항상 꽈배기를 사준 거였다고 했다. 물론 꽈배기든 팥이든 무슨 대수고, 어린 마음에 엄마 따라가서 나한테 콩고물 하나 떨어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몇 안 되는 그 기억은 나에게 각별하다.
자취를 하면서 한 번도 사 먹어보지 못한 꽈배기였다. 오랜만에 엄마가 사다 준, 설탕이 듬뿍 묻혀 바삭하고 달콤한 꽈배기는, 어쩌면 우리 집만의 엄마표 집밥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