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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19. 2021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영화 [ 흐르는 강물처럼], 1992

< 흐르는 강물처럼 > ( A River Runs Through It) 은 시카고 대학 교수 노먼 맥클레인(1902~1990)가 쓴 자전적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1992년 로버트 레드포트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미국 서부의 경이로운 자연 풍광과 예술로 승화된 플라이 낚시의 장면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 가운데 한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브래드 피트가 주연 배우로 출연하여 배우로서 인정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

장로교 목사 리버런드 맥클레인은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서부 몬타나주 강가 마을에 자리 잡고 아내와 노먼(클레이크 세퍼)과 폴(브래드 피트) 두 아들과 함께 목회활동과 플라이 낚시를 운명삼아 살아간다. 목사는 대자연과 낚시를 통해 두 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인생을 가르친다.




관습과 전통을 고수하는 엄격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두 형제는 매 순간 함께 하며 서로 사랑하지만 끝없이 경쟁하면서 자란다.  매사 거침이 없고 강인함과 고집으로 확실한 색깔을 가진 동생 폴, 아버지를 거역하지도 않으며, 규율과 규칙을 따르는 형 노먼.  형 노먼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동시에 동생의 저돌적이고 솔직한 모습에 때론 주저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두 형제는 큰 다툼 없이 비교적 우애 있게 지낸다.

이토록 다른 두 형제가 우애 있게 자란 이유로는 부모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흔한 말로 형제를 차별하지 않고 양육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형제는 적어도 가족 내에서의 상처는 없었다. 완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는 순종적인 노먼을 쉽게 칭찬하지도 않고, 아버지를 넘어 규율과 관습에 저항하는 폴을 호되게 야단치지도 않는다. 맥클래인 목사 부부는 결이 다른 두 형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면서 키운다.


시와 문학을 공부하러 도시로 떠났던 노먼에게 낚시는 고향의 푸근함이자 오래된 취미이다. 노먼의 삶은 흐르는 강물처럼 순조롭다. 그러나, 폴에게 낚시는 삶 그 자체였다. 낚시 때문에 고향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플라잉 낚시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폴의 낚시 수준은 어느 순간 아버지의 가르침과 관습을 벗어나 "예술의 경지에 이른 완벽 그 자체"에 다다른다. 하지만 폴의 삶은 평범함에서 이미 멀어져 있었다.


형제의 기질이 다름을, 자식의 인생의 길이 각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맥클래인 목사 부부의 모습에서 한번 놀랐다. 호기심과 모험심을 바탕으로 본능과 자신의 욕구를 좇아 살던 폴이 결국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의 상처는 형언할 수 없겠지만 표면적으로 담담히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두 번 놀랐다.

한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닐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닐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아들의 장래를 직접 설계하고 그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까지 일체의 일탈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 오만한 자식 사랑으로 결국 아들을 잃고 말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들을 안고 그제야 진정한 마음을 담아 오열한다.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모습이 사뭇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한 아버지와 자식을 명예와 성공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내세운 아버지,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아픔과 상처는 분명 다를 것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한 자식이 기울까 노심초사하면 자식 사이에서도 평균점이 맞춰지길 바라는 것이 부모 욕심이다. 삶의 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부모라고 해서 강요할 수도 없고, 가족이라고 해서 간섭할 수도 없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 흐르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각자의 해답은 자신의 삶 어딘가에 숨어있으므로.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서로 인생의 항로를 찾을 수 있도록 등대지기가 되어준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만의 바람과 물결을 따라 영혼의 강줄기를 흘러간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본 이후 내내 가슴에 흐르는 문장이다. 남들은 차지하고서라도 가족 내에서 이해와 사랑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함이 늘 힘겨웠다.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이해와 사랑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랑하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서로를 할퀴고, 원망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선했다.

여전히, 아직도 완전히 사랑한다는 말은 쉽고도 어렵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감명 깊게 보긴 했지만 이 문장이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부터 도전해보기로 다짐했다.



[ 흐르는 강물처럼 ]을 꼭 보셨으면 하는 분들

1. 다른 기질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

2. 자녀와 취미를 갖고 싶은 분

3. 대자연의 위로를 받고 싶은 분

4. 가족 안에서 이해와 사랑 부족으로 상처받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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