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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19. 2022

마냥 외로운

이승희  < 그 냥  >

그 냥

                              - 이승희      


그냥이라는 말속에는 진짜로 그냥이 산다

아니면 그냥이라는 말로 덮어두고픈

온갖 이유들이 한순간 잠들어 있다

그것들 중 일부는 잠을 털고 일어나거나 아니면

영원히 그 잠 속에서 생을 마쳐갈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냥 속에는 그냥이 산다는 말은 맞다

그냥의 집은 참 쓸쓸하겠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술처럼 그렇게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진짜로 그냥이 산다

깊은 산 그림자 같은, 속을 알 수 없는 어둔 강물 혹은

그 강물 위로 떠가는 나뭇잎사귀 같은 것들이 다 그냥이다

그래서 난 그냥이 좋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들의 물살이 가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그냥 속에 살아가는 당신을 만나는 일처럼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그냥"이라고 말한다.


"그냥"이라고 말했을 때

그 두 글자 사이에는

수많은 감정의 보푸라기들이

쌀뜨물처럼 뽀얗게 서려있다.


오늘은

"그냥"이라는 말에

빚지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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