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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Jun 06. 2020

첫 이별과 슬픈 악수

최고 학년이라는 으쓱함과 새로운 반에 대한 설레임 가득 안고 6학년 5반이 되어 선생님을 만났다.

6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새로 만난 선생님과 반가움은 잠시 우리 반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부임 2년 차 햇병아리 선생님과 산골 아이들의 기싸움이었을까?

당시 선생님이 전교회장 친구와 공부 잘하는 친구 몇몇을 편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선생님은 뭔가 처방이 필요하다 생각하셨는지 빈 종이에 불만사항을 써내라고 했고. 우리들은 너나없이 불만을 가득 채워 냈다.


몇몇 아이들을 편애한다는 우리들의 불만과 오해는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처럼 20대 초반의 선생님을 덮쳤다.

선생님은 그 후로 교단에 오르지도 못하시고 우리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셨다.

한동안 수업도 못하시고 기운을 차리시지도 못하셨다. 교실에 들어오기가 힘들어 복도에서 머뭇거리시는 것도 수차례 목격했다. 신입 선생님이 감당하시기에는 우리 반 친구들의 오해와 불신이 너무나 컸다.


교감선생님과 다른 반 선생님이 교대로 수업에 들어오시는 일이 잦았다. 일이 그 지경이 된 후에야 우리 반 아이들은 정신 차리고 선생님 관사에 몇 번을 찾아가 무릎 꿇고 잘못을 빌었다. 조를 나눠서 돌아가면서 선생님 방을 찾아갔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를 마무리되었으나 선생님의 상처가 치유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2학기 개학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신다는, 그것도 바로 다음날.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다음날, 우리 반은 숨 막히는 침묵과 훌쩍거림으로 아침부터 무겁게 가라앉았다.

행정적인 처리로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이 교감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오셔서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계획에 있던 전근이라고 하셨지만 그 말을 믿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앞엔 슬픈 이별만 남아있을 뿐.

마침 미술 준비물이 찰흙이었는지 나는 그 이별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애꿎은 찰흙만 주물럭거렸다.


선생님의 이별인사는 공식적인 인사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로 마무리되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선생님 책상 바로 앞자리였다. 그 덕에 제일 먼저 선생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다. 찰흙을 주물러 엉망이 된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잦은 배앓이로 입원을 했던 걸 기억하시고는 아프지 말라고 하시며...


내 손바닥의 찰흙 물기와 선생님 손바닥에 닿자 '쩍'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반 아이들의 손바닥에는 찰흙과 이별의 슬픔이 함께 도장처럼 찍혔고 그 찰기 어린 악수는 지금껏 가장 슬픈 악수가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당부의 말과 악수를 마치고 선생님을 배웅하러 터미널로 가면서 우리 반 아이들은 길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말썽꾸러기 남자 친구들까지도.

나에게 첫 이별은 그렇게 아프게 남았다.


곧 새로운 담임이 오셨지만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날마다 일기장에 그 맘을 털어놓았다.

새 담임 선생님은 어느 비 오는 날 자습을 쓰고 있던 나를 불러 세워놓고  선생님 있는 학교로 전학 가라는 차가운 말로 가슴에 생채기를 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쫓아내다시피 한 것처럼 얘기하면서 이제와서는 그리워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창밖의 비만 노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새 담임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가을 운동회도 하고, 수학여행도 가고 해가 바뀌어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식 날 강당 객석 구석에 비켜서 있는 홍 선생님을 발견하고 우리 반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 반 친구들과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기에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휴가를 내고 먼 곳에서 달려오신 선생님.

새 담임한테 누가 될까 봐 미리 연락도 못하고 몰래 객석에 숨어 계셨던 선생님.


두 분 선생님이 나란히 교단에 서 주시길 바랐지만 미묘한 상황 때문에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복도에 서 계셨다가 공식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여름에 헤어진 선생님과 겨울에 다시 만나자마자 나는 선생님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렸다.

6학년 그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온 듯했다.

이별, 그리움, 슬픔, 질투, 편애, 정, 배려, 책임, 상처, 편지, 일기,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내 유년의 가장 큰 사건


산골 매서운 바람 부는 학교 운동장에서 고작 11살 차이 나는 선생님과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첫 이별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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