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학년이라는 으쓱함과 새로운 반에 대한 설레임 가득 안고 6학년 5반이 되어 홍 선생님을 만났다.
6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새로 만난 선생님과 반가움은 잠시 우리 반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부임 2년 차 햇병아리 선생님과 산골 아이들의 기싸움이었을까?
당시 선생님이 전교회장 친구와 공부 잘하는 친구 몇몇을 편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선생님은 뭔가 처방이 필요하다 생각하셨는지 빈 종이에 불만사항을 써내라고 했고. 우리들은 너나없이 불만을 가득 채워 냈다.
몇몇 아이들을 편애한다는 우리들의 불만과 오해는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처럼 20대 초반의 선생님을 덮쳤다.
선생님은 그 후로 교단에 오르지도 못하시고 우리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셨다.
한동안 수업도 못하시고 기운을 차리시지도 못하셨다. 교실에 들어오기가 힘들어 복도에서 머뭇거리시는 것도 수차례 목격했다. 신입 선생님이 감당하시기에는 우리 반 친구들의 오해와 불신이 너무나 컸다.
교감선생님과 다른 반 선생님이 교대로 수업에 들어오시는 일이 잦았다. 일이 그 지경이 된 후에야 우리 반 아이들은 정신 차리고 선생님 관사에 몇 번을 찾아가 무릎 꿇고 잘못을 빌었다. 조를 나눠서 돌아가면서 선생님 방을 찾아갔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를 마무리되었으나 선생님의 상처가 치유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2학기 개학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신다는, 그것도 바로 다음날.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다음날, 우리 반은 숨 막히는 침묵과 훌쩍거림으로 아침부터 무겁게 가라앉았다.
행정적인 처리로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이 교감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오셔서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계획에 있던 전근이라고 하셨지만 그 말을 믿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앞엔 슬픈 이별만 남아있을 뿐.
마침 미술 준비물이 찰흙이었는지 나는 그 이별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애꿎은 찰흙만 주물럭거렸다.
선생님의 이별인사는 공식적인 인사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로 마무리되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선생님 책상 바로 앞자리였다. 그 덕에 제일 먼저 선생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다. 찰흙을 주물러 엉망이 된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잦은 배앓이로 입원을 했던 걸 기억하시고는 아프지 말라고 하시며...
내 손바닥의 찰흙 물기와 선생님 손바닥에 닿자 '쩍'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반 아이들의 손바닥에는 찰흙과 이별의 슬픔이 함께 도장처럼 찍혔고 그 찰기 어린 악수는 지금껏 가장 슬픈 악수가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당부의 말과 악수를 마치고 선생님을 배웅하러 터미널로 가면서 우리 반 아이들은 길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말썽꾸러기 남자 친구들까지도.
나에게 첫 이별은 그렇게 아프게 남았다.
곧 새로운 담임이 오셨지만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날마다 일기장에 그 맘을 털어놓았다.
새 담임 선생님은 어느 비 오는 날 자습을 쓰고 있던 나를 불러 세워놓고 홍 선생님 있는 학교로 전학 가라는 차가운 말로 가슴에 생채기를 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쫓아내다시피 한 것처럼 얘기하면서 이제와서는 그리워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창밖의 비만 노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새 담임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가을 운동회도 하고, 수학여행도 가고 해가 바뀌어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식 날 강당 객석 구석에 비켜서 있는 홍 선생님을 발견하고 우리 반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 반 친구들과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기에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휴가를 내고 먼 곳에서 달려오신 선생님.
새 담임한테 누가 될까 봐 미리 연락도 못하고 몰래 객석에 숨어 계셨던 선생님.
두 분 선생님이 나란히 교단에 서 주시길 바랐지만 미묘한 상황 때문에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복도에 서 계셨다가 공식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여름에 헤어진 선생님과 겨울에 다시 만나자마자 나는 선생님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렸다.
6학년 그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온 듯했다.
이별, 그리움, 슬픔, 질투, 편애, 정, 배려, 책임, 상처, 편지, 일기,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내 유년의 가장 큰 사건
산골 매서운 바람 부는 학교 운동장에서 고작 11살 차이 나는 선생님과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첫 이별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