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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Jun 07. 2020

겨울 아이

등굣길에 우리 집에 들러 내 방문 앞에서 물끄러미 나의 등교 준비를 바라봐주던 아이

외지 고등학교에 진학한 내게 3년 내내 고향 소식을 편지로 전해주던 친구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 '루피나'라는 세례명을 갖게 해 준 친구

유난히 하얀 피부와 빛나는 눈망울,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무척 잘했던 아이


쪽빛 청춘이 이유여서일까?

상처 받은 내가 문제였을까?


당시 그 친구와 나는 젊음과 미래에 대한 꿈도 꾸었지만 철없는 나이 사랑과 우정 사이를 두고 왈가불가할 중대한 오해가 있었다. 아비를 여윈 직후 낯선 도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극도로 예민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하필 어린 시절 소꿉친구처럼 가까이 지냈던 남자 친구와 그 친구가 이성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 버린 눈 앞의 현실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질식할 만큼 힘겨웠던 시간이었다. 연애나 사랑 따위는 사치에 가까웠다. 그런데 가장 친하다는 두 친구는 나의 상황과 감정과 무관하게 젊음과 사랑의 줄타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것에 이유모를 화가 났다.

나는 몇 차례 편지로 서늘한 감정을 풀어놓았고 친구는 솔직하고 친절한 해명으로 상실감으로 상처 입고 날뛰는 내 마음을 보듬으려 했다.


곧 만나서 오해를 풀자던 친구의 마지막 편지와 설악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비보가 그 해 첫눈과 동시에 무참히 쏟아져내렸다.

스무 살에 아빠를 하늘로 보내드리고 고작 일 년이 지난 후 절친마저 다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세상 온갖 신들을 원망했다.


속초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미시령 커브길에 멀미도 심했지만 슬픔에 제 멋대로 흔들리는 머리를 가누기 힘들어 내내 머리를 감싸 쥐어야만 했다. 고속버스 차창 너머에는 흰 눈과 밤안개가 범벅이 되어 마치 꿈속과 같았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가고 싶을 만큼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차창을 밀고 엄습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피 끓는 절망 앞에서 친구를 잃은 슬픔은 견줄 수 없었고 아비를 여윈 설움과는 결이 다른 고통이었다.


"내 자식이 살아만 온다면 네 놈 뼈를 이 자리에서 바로 갈아 마실 거다"

친구 아버님은 가해자에게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슬픔과 분노를 토해내셨다.

친구 어머님은 울지도 못하시고 끝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실려나가셨다.


연이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오열과 통곡을 반복한 까닭에 탈진한 나는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했다.

혼자 집으로 되돌아가면서 친구를 삼켜버린 눈 내리는 설악산이 야속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는 눈물의 농도, 슬픔의 채도로 알 수 있다. 눈물의 농도와 슬픔의 채도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채 가슴에 빗금으로 남고 말았다.


그렇게 친구를 보내고 난 후부터 조용필의 <친구여>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했고 속초와 설악산을 맘 편히 갈 수 없었다. 친구에게 받은 편지는 밀봉된 채 20여 년이 넘도록 감금당했다. 친구의 이름을 듣는 것도, 내뱉는 것도 못했고, 친구와 오해를 풀지 못한 채 보낸 것이 일생 죄책감으로 나를 옥죄었다.


스물한 살. 말 그대로 꽃다운 나이에 영화처럼 천국으로 떠난 친구를 다시 찾은 건 꼭 스물 한 해가 지난 후였다.

미시령 옛 길 한편 커다란 바위 하나, 삐죽한 나무 한 그루, 웅장한 울산바위를 마주 보고 있는 맑고 청명한 설악산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친구에게 "외롭지 않니? "라고 물을 수 있게 된 것은 곱절의 시간을 보낸 후였다.


겨울 그리고 눈이 내리면 내 자식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생을 마친 친구가 떠오른다.

하얀 눈이 빗발쳐 내리면 순수한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가 마치 내 곁으로 오는 것 같아 반갑고 설렌다.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위를 겁내지 않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친구의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친구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내가 보낸 편지를 보고 나를 원망할 거라는 생각에 평생 마음이 짓물렀었는데 정작 친구 언니는 나를 기억조차 못했다고 한다. 먼저 떠난 가족을 잊고 살아야 살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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