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 Aug 12. 2017

8월 13일은 왼손잡이의 날

세상의 모든 소외된 왼손잡이들을 응원하며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오른손잡이이신가요?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라고 대답하실 것 같은데요. 왼손잡이인 저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알게 모르게 상처주는 말들로 인해 적잖은 스트레스 상처를 받아 왔습니다. 그때는 왼손잡이란 좋지 않은 습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남들과 같아져야만 하는 줄 알았지요. 부모님의 무서운 훈육(?) 덕분에 저는 밥을 먹고 글씨를 쓰는 것은 오른손으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쨌든 오른손보다는 왼손의 힘이 더 강한 왼손잡이임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늘 주위의 '쯧쯧쯧'하는 시선으로 주눅 들어있기를 여러 해, 어느 날 문득 '아니 내가 왼손잡이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이게 내 잘못인가?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있듯,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있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래의 글은 이러한 생각이 계기가 되어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


8월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입니다. 왼손잡이도 소수자라고 하더라고요. 남들과 같지 않다는 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거지요. 하지만 '그건 틀렸어'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어요. 오는 왼손잡이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글을 다시 꺼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세상의 모든 소외된 왼손잡이 여러분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해봅니다. 여러분들은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을 때 어느 손을 사용하시나요? 양치를 하고 가위질을 하고, 손을 이용하는 운동을 할 때(이를테면, 배드민턴이나 야구, 테니스, 탁구 등과 같은)는 어느 손을 이용하십니까? 그거야 오른손이지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중 대부분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소외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지요. 위의 질문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오른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왼손잡이들에겐 그게 당연한 질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왼손잡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데요. 컴퓨터의 마우스라든지 대학 강의실 책상의 손받침, 자동차 핸들 등등 오른손잡이라면 잘 알지 못하는 왼손잡이들만의 고충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 또한 곱지가 않은데, 이러한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있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왼손잡이의 비율이 매우 낮아 왼손을 쓰는 것 자체가 의아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대다수의 물건이 오른손으로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세상에서 왼손을 사용하는 이들은 그것을 보는 사회의 다수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가 점차 굳어지면서 왼손잡이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또한 오른손과 왼손이라는 단어에서도 왼손의 차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라틴어에서 왼손잡이를 뜻하는 'siníster'(시니스테르)는 '흉하다', '불운' 등의 동의어입니다. 반면 오른손잡이를 뜻하는 'dexter'(덱스테르)는 '알맞다', '능숙하다' 등의 뜻을 포함합니다. 우리 국어에서도 ‘오른손’이라는 언어는 ‘바른손’이라고도 불리지만, ‘왼손’이라는 단어의 원형인 ‘외다’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서 쓰기에 불편하다’, ‘마음이 꼬여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글의 중세어에서 오른쪽은 ‘올ᄒᆞᆫ녁’이며, 왼쪽은 ‘왼녁’이다. ‘올ᄒᆞᆫ녁’은 형용사 어간 ‘올ᄒᆞ-’의 활용형 ‘올ᄒᆞᆫ’에 명사 ‘녁’이 붙어서 된 합성 명사이며, ‘왼녁’은 형용사 ‘외다’의 활용형 ‘왼’과 명사 ‘녁’이 붙어서 된 합성 명사이다. ‘올ᄒᆞ-’는 옳다는 의미와 오른쪽이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반면에 중세 국어에서 ‘외다’는 그르다는 의미와 왼쪽 방향이란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오른’, ‘왼’이라 표현할 때는 모르겠는데, ‘오른쪽’과 ‘왼쪽’은 ‘쪽’이란 표현 때문에 분명히 방향성을 지닌다. 그러나 본디 방향을 지칭하는 ‘쪽’이 붙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오른’과 ‘왼’은 방향과는 무관한 데서 출발하였다. (중략) ‘올ᄒᆞᆫ녁’이나, ‘외다’가 애초에는 ‘옳다’, ‘그르다’는 뜻만을 지니다가 후대에 방향성이 추가되었음을 만해준다. ‘오른’과 ‘왼’의 원초적인 언어 해석이 이미 바르고 그른 것으로 대별되었음은 왼쪽에 대한 원초적인 언어 금기가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 《왼손과 오른손》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왼손잡이의 비율은 약 10%라고 합니다. 영미권에는 약 12%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에 절반도 못 미치는 5%만이 왼손잡이이고, 왼손의 사용을 금하는 아랍어권에서는 단 1%만이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인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많은 왼손잡이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강제로 오른손을 사용하도록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필자도 원래는 왼손잡이였지만, 어릴 때 교정으로 인해 밥 먹는 것과 글씨 쓰는 것은 오른손이 더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외의 것들은 대부분 왼손을 사용하는 이른 바 ‘양손잡이’가 된 케이스입니다. 우리나라나 아랍어권의 왼손잡이의 비율이 특히나 낮은 이유가 아마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자신이 왼손잡이임을 숨기거나 아니면 ‘교정’을 통해 강제로 오른손잡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 포스터


이러한 왼손잡이들이 겪는 고충과 그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알리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 바로 세계 왼손잡이의 날입니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은 매년 8월 13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날은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처음으로 창립한 딘 켐벨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1932년 미국인 딘 켐벨(Dean Campbell)은 세계 최초로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하였습니다. 그는 왼손잡이 신문을 발간하며 여러 가지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미국 내에서는 왼손잡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왼손잡이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 딘 켐벨의 생일을 기념해 1796년 처음으로 왼손잡이의 날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 공식적 행사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92년 왼손잡이협회가 매년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지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날은 오른손잡이들도 다양한 체험활동들을 할 수 있는데, 왼손잡이용 병따개 등의 왼손잡이용 도구들을 이용해보고, 왼손만 쓸 수 있는 게임 등을 통해 왼손잡이의 일상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 왼손잡이들이 평소 느끼는 불편들을 이해하고, 자신들에 대한 배려와 오른손잡이 중심의 생활용품들을 개선해줄 것들 호소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기념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날 하루 동안 자신만의 ‘왼손 구역(Lefty Zone)’을 정해 그 장소에서는 왼손만을 사용하면 됩니다. 오른손잡이들이 왼손을 이용하여 식사를 하고 글씨를 쓰고, 왼손으로 스포츠 활동들을 해보면서 왼손잡이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평소 오른손잡이에게 맞춰진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왼손잡이들이 어떠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왼손잡이 체험을 해봄으로써 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던 왼손잡이들은 누가 있을까요? 위 그림은 대부분이 다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르네상스 천재 화가인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왼)>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오른)>라는 그림이지요. 중세를 지나 새 시대의 개막이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왼손잡이 거장을 찾아보던 중, 르네상스의 그 찬란만 문화 중심에 있었던 세 명의 거장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모두 다 왼손잡이였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왼손잡이들이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문학계의 거장인 마크 트웨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또한 문학계를 이끈 왼손잡이였고, 마리 퀴리, 아이작 뉴턴, 베토벤 등 한 시대를 이끌었던 많은 위인들이 왼손잡이였습니다.

하지만 왼손잡이들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실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왼손을 금기했던 시대에서 왼손잡이는 동성애자나 장애인, 하층민,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했고, 선악과를 따는 이브의 손, 13세기의 마녀, 범죄자의 어두운 손은 모두 왼손이 차지했었습니다.

요즘은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뇌의 지배를 받는 왼손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들도 활발합니다. 좌뇌는 몸의 오른쪽을 지배하고 우뇌는 몸의 왼쪽 부분을 지배하고 있으며, 좌뇌의 경우는 논리, 언어 등을 담당하고 우뇌의 경우 공간과 시각 등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반드시 이러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왼손잡이들의 두뇌는 애초에 남들과 다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책 《왼손이 만든 역사》에서는 왼손잡이들이 가지는 몇 가지 공통적인 자질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직관력입니다. 왼손잡이는 상황을 파악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특별한 직관, 인식 능력을 보여줍니다. 둘째, 감정이입 능력입니다. 어떤 왼손잡이들은 자신의 직관력을 자기 자신 혹은 수학적, 음악적 영역에 쏟아 붓지만 다른 왼손잡이들은 이 능력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셋째, 시각•공간 능력입니다. 주로 우뇌지배적인 위대한 왼손잡이들은 시각•공간 개념의 영역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넷째, 수평사고입니다. 수평사고는 인습적이지 않은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이는 은유의 성질과도 관련이 있는데, 같은 사물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화를 잘 내는 성격입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많은 왼손잡이들은 성격이 사납다고 합니다. 여섯째, 고독입니다. 당신이 세상에 맞추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 당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도 한 방책이 되기도 합니다. 일곱째, 인습타파입니다. 많은 왼손잡이들이 현재의 사회적, 지적 구조를 질색해 하며 그런 구조를 무너뜨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꽃피울 자리를 찾으려 합니다. 여덟째, 독학입니다. 왼손잡이 중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책을 통한 것보다 경험을 통한 학습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아홉째, 실험정신입니다. 이 특성은 왼손잡이의 타고난 변화주도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상가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왼손잡이들은 가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단기간에 현실로 만들어냅니다. - 《왼손이 만든 역사》, <머리말> 中 14~19페이지



EBS 지식채널e ‘왼손에 관한 짧은 진실’ 캡쳐


소수자인 왼손잡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만든 ‘국제 왼손잡이의 날’.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왼손잡이들의 고충이 많이 알려지고 왼손잡이를 향한 편견과 나쁜 시선들이 많이 감소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들은 여전히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왼손잡이를 향한 불편한 시선과 모욕적인 말들이라도 사라지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왼손잡이들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능력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무관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