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점을 느꼈습니까?"
이 문항에 글을 써 내려가는 나는 이 글이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임을 느낀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는 마음속에 고이 접어두고 새로운 도전에 아깝게 실패했던 경험과 같이 면접관이 주목할 말한 내용을 그럴듯하게 풀어낸다. 자소서에 담긴 경험들이 솔직히 인생에서 아주 힘든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힘들었던 일들은 마음속에 아주 단단히 묻어두고 쉽게 꺼내지 않는다.
아직 인생 28년 차이지만 인생의 쓴맛을 본 경험은 결코 적지 않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뼈저리게 후회만 남은 사랑도 겪어보고, 한국 토박이가 교환학생 경험해보겠다고 영국에 갔다가 정작 소통이 안돼서 방에 갇혀 지내보고, 취업 준비 중 정말 입사하고 싶었던 기업에서 탈락의 맛을 보고 좌절도 해봤다. 그리고 겨우 들어온 지금 직장에서도 쉬운 일이란 없고 힘든 일의 연속이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남편이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낸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2-3달쯤 지나서였나,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내가 그 마음을 몰라주고 차갑게만 대하니까 이 사람이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처럼 이 사람의 진심을 몰라주고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가는 이 사람마저 떠나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미안한 마음에 나도 덜컥 눈물이 났다. 그 일이 있은 후 그가 나를 사랑해주는 그 마음에 정말 감사했고 나도 이 사람을 더 사랑해줘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고 이 사람을 만난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교환학생 생활에 점점 적응하기 시작한 것도, 취준을 힘들어하면서도 결국 취업을 하게 된 것도 힘든 과정을 하나의 성장통이라 여김으로써 가능했던 것 같다. 어쨌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포기하지는 않았다.
최근 직장 일로 힘들어서 매우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지만 아주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다. 간혹 일에 치일 때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며 스스로 다독이곤 한다. 인생이 다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내 곁에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살아볼 만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일들이 결코 무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쓴맛을 삼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쓴맛을 삼키고 그 끝에 오는 특별한 맛, 마치 쓴맛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던 그 맛을 느끼는 순간 나 자신이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