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걱정했던 변화 중 하나는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특히 명절에 겪는 고부갈등을 익히 보고 자랐기에 더욱 그랬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맞벌이를 하시고 엄마는 직업 특성상 명절 당일 전날까지 바쁘시다. 엄마의 시댁, 그러니까 나의 친조부모 댁은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집안이다. 제사 음식은 보통 당일 전날 만드는데 엄마는 일 때문에 참석을 거의 하지 못하셨다. 친할아버지는 그 점을 늘 못마땅해하셨고 한 번은 엄마를 앞에 앉혀놓고 온갖 잔소리를 쏟아내셨다. ‘맏며느리가 돼서 어떻게 제사음식 만들러 한 번을 안 오느냐?’를 시작으로 해서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으냐, 얼마나 바쁘다고 전화 한 통을 안 하느냐, 네가 안 와서 할머니가 더 힘들지 않으냐’ 등등.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하시니 옆에 있던 나조차도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사실 제사 음식을 만들 때 정작 할아버지는 세상 여유로우신 분인데 말이다. 항상 티비 앞에 앉아만 계시면서 음식 만드는 데 괜한 참견을 하신다. 그렇게 하면 음식이 탄다느니 싱겁다느니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할머니의 결혼생활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마음도 불편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온 나는 결혼이 잘한 선택이 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다행히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우선 시댁에서도 어머니 쪽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아버지 쪽은 남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신다. 그리고 연락을 강요하시거나 같이 음식을 만들자거나 하시는 일은 전혀 없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게 좋은 거지 싶으면서 나의 편안한(?) 시집생활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엄마는 아직도 고부갈등도 많은 시대에 그런 시부모님을 만나서 다행이라며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하셨다.
오늘 추석 당일에도 아침 일찍 엄마, 아빠와 나는 친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남편은 따로 아버지 쪽으로 제사를 지내러 갔다. 친할아버지는 나를 반가워하시면서도 추석 당일엔 제일 먼저 시댁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지 왜 여길 왔냐고 물어보셨다.
“할아버지, 제 시댁은 남자들만 모여서 제사 지내요~ 그리고 시댁은 이따 남편이랑 따로 들리기로 했어요.”
할아버지는 겉으로는 웃으시면서도 예쁨 받아야 할 나의 시집생활에 내심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옆에 계셨던 할머니는 그저 나를 반가워만 하셨다. 밥을 먹고 후식으로 송편을 먹으면서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다.
“어구~ 아주 나이롱며느리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족들이 모두 빵 터졌다. 진짜인척 하는 가짜 며느리, 게으른 며느리, 세상 편하게 사는 며느리 등 여러 의미가 담아 그렇게 표현하시니 다들 할머니의 유머에 자지러지게 웃었다. 좋은 뜻의 말은 아니지만 왠지 기분 좋은 말로 느껴졌다. 그만큼 시집 생활에 부담 없이 지내서 다행이라는 뜻이겠거니 했다.
결혼을 한지 어느덧 일 년이 되어가는데 생각해보면 결혼 후보다 결혼 전에 고민도 생각도 더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보고 자라온 우리 엄마의 시집생활을 내가 겪게 되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결혼을 후회하진 않을까 생각도 많이 했었다. 결과는 나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서로 배려해가며 사는 건 당연한 것인데 내가 살아온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보니 지금 나는 정말 편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명절에 일어나는 고부갈등 사연이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세상은 점점 변해가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으니 명절 때만큼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아지지 않을까. 앞으로는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올수록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저 설레고 기대되는 날로 여겨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