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새파랗던 날이었다. 비행기 한 대가 작정한 듯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건물을 충돌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비행기가 옆 건물을 들이받았다.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은 한없이 맑은 하늘과 너무나 대조되어 마치 평화가 산산조각처럼 깨져버리는 순간 같았다.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5부작 다큐멘터리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을 보면서 9/11 테러 사건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테러 및 전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영상들의 취합본에 생존자, 언론인, 정부기관 관료, 국회의원 등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삽입하여 9/11 테러가 터닝포인트로서 어떤 영향을 준 사건인지를 여러 측면에 비추어 보여준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08:46 미국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를 충돌, 오전 09:03 남쪽 타워를 충돌 후 두 건물 모두 붕괴. 같은 날 오전 09:37 버지니아주 미 국방부 본부 펜타곤 서쪽면 충돌. 네 번째로 납치된 비행기는 워싱턴 DC를 목표로 삼았지만 승객들의 저항 끝에 펜실베이니아주 들판에 추락하고 말았다. 짧은 시간 안에 연이어 벌어진 이 일들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사 결과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 집단이 비행기 세 편을 납치하여 일으킨 최악의 테러였다.
미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이런 감정들은 점차 분노와 복수심으로 이어졌다. 미국 정부는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세력을 추적하고 알카에다에 테러를 계획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한 모든 세력을 발굴하고 처단하기로 다짐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미국은 알카에다 집단에 피난처를 제공해준 탈레반 세력을 몰아내고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고 이로써 21세기 최초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는 9/11 테러와 그 이후의 전쟁과 관련하여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도록 한다. 미국 대통령의 광범위한 군사력 승인, 탈레반 정권 축출을 위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인권 침해 문제, 정보 수집을 위한 감시법 개정, 정당성이 흔들린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인이 미국에 등지고 탈레반 세력을 옹호하게 된 배경, 전략 없던 전쟁의 결말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생각이 깊어진다. 테러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됐지만 그 과정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는 현재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광장, 인공 연못, 박물관 형태의 '9/11 Memorial & Museum'이라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3년 전 뉴욕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자연스럽게 그곳으로도 발걸음을 옮겼다. 끊임없이 울리는 폭포 소리를 들으며 웅장한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연못 가장자리에 새겨진 희생자의 이름들이 보인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고 무력한 사람임을 느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기도를 했다. 기도에는 나의 불평과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막으실 순 없었나요? 저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드리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당시에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삶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살 수밖에 없겠지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한 답을 이 다큐멘터리 영상의 끝을 향해가면서 얻게 되었다.
브렌다 버크만(퇴역한 뉴욕 소방국 소방장):
"9/11 사태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날 전 국민이 서로를 도우면서 하나가 됐다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건의 주범에게 보복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결정하기 전이었고요. 9/11 사태를 통해 배울 교훈이 많지만 '증오'가 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사랑'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비록 테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테러에 대응하는 수단이 '증오'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은 법을 개정하고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증오를 표출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전쟁으로 인해 수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천조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있었다. 탈레반 세력을 축출하고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탈레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버렸다. 과연 미국이 얻고자 했던 결과였을까.
브렌다 버크만 전 소방장의 발언에는 '증오'를 제1의 대책으로 삼는 것을 비판하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랑'이라는 가치가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굉장히 막연하고 애매한 관념처럼 나 자신과는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아프더라도 분노를 잠시 참는 것도 사랑의 일부이지 않을까. 작은 노력으로도 사랑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출구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이미 나온 듯하다. 사랑의 가치를 알리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