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퇴사하고 대학원에 가려고.
그것도 전공을 바꿔서.
내용은 간단했지만 이 말을 언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제 나름 직장에 자리를 잡았고 얼마 전 결혼도 했는데 굳이 안정적인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딸내미의 선언에 부모님이 마냥 좋아라 해주시진 않을 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부터 앞섰다.
엄마한테 설명하는 건 그렇다 쳐도 아빠한테는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날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툰 아빠한테 내 생각을 말하는 건 늘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의 파격 선언을 아빠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됐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아빠의 지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드디어 아빠와의 1:1 점심 약속 시간. 맛집으로 소문난 보쌈집에 들어가 방해받지 않을 만한 자리를 살펴보고 여기다 싶어 바로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중대 발표를 하려 했지만 정작 대화의 주제는 '나의 브런치 글쓰기'였다. 언제나 딸의 일을 당신의 일처럼 챙기시는 아빠는 어김없이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이어가셨다.
“최인호 작가의 <가족>을 읽어봤니? 예전에 월간잡지 '샘터'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낸 에세이집인데 한 번 읽어봐. 너도 일상 에세이 글을 주로 쓰니 많이 도움 될 거야.”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아빠는 오랜만에 갖는 딸과의 시간에 유난히 수다스러웠다. 결국 식사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티타임을 노리는 수밖에.
집에 돌아와서 아빠와 식탁에 마주 앉아 다과를 즐기던 중 마침 아빠의 또 다른 조언이 시작됐다.
"회사에서도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지 말고 계속 이것저것 공부하는 게 좋을 거야. 영어든 뭐든."
이때다 싶었다.
"그치. 아빠, 나 안 그래도 요즘 진로 고민 생겼거든. IT분야로 진로를 돌려보려고. 퇴사하고 대학원에 가려고 해. 상황이 확실해지면 말하고 싶어서 이제야 말하네. 얼마 전에 대학원 합격 통지받았어…”
"코딩하려고?"
C언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할 때쯤 잠시나마 프로그래밍을 공부해본 아빠한테서 충분히 나올만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분야는 아니지요.
"코딩은 아니고 내가 공부하려는 분야가 뭐냐면...(이러쿵저러쿵)..."
어떤 분야이고, 전망은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졸업하고 나서의 계획은 어떠한지 나의 생각과 다짐을 이야기했다. 면접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내가 학부 전공 살려서 취업을 하긴 했지만 나는 이 업계에서든 이 직무로든 평생 일하긴 힘들 것 같아. 요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다고도 하잖아. 일을 해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더라고. 나는 힘들더라도 새로운 자극도 많이 받고 계속 공부해가는 일을 하고 싶어. 그나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진로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결정하게 됐어."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어쩜 이렇게 나를 닮았니?
"사실 나도 기계과를 나오고 컴퓨터를 배워보고 싶어서 컴퓨터 학원을 다녔었거든. 그 당시는 컴퓨터가 아직 가정에 보급도 잘 안 된 시기였어. 컴퓨터를 공부하는 건 정말 재밌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그때 집 형편이 좋지가 않았어. 수업료가 비싸기도 하고 돈벌이도 안 돼서 공부를 접을 수밖에 없었지. 결국 전자 쪽으로 길을 돌려서 직장을 구했어. 나도 이것저것 공부하고 길을 돌아왔지만 지금 나는 정말 만족해.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했고 덕분에 우리 집에 있는 컴퓨터,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 웬만한 것들은 내가 다 고칠 줄 알잖니."
그렇다. 아빠의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작년에 독립을 하면서 얻은 신혼집에서 영하 20℃라는 극한의 추위로 보일러관이 얼어 온수가 나오지 않을 때도 결국 아빠가 와서 해결해줬었지. 뭔가가 고장 나거나 망가지면 그걸 고쳐주고 수습해주는 사람은 늘 아빠였다. 아빠는 문제가 생기면 누구한테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늘 당신께서 직접 찾아보고 배우고 해결하셨고 그 과정을 꽤나 즐기셨다. 그만큼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아오신 것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빠는 나의 결정을 응원해주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시더니 책장에서 아빠가 오래전 공부했던 책 몇 권을 꺼내 주셨다. 누레질 만큼 오래된 책이었지만 기초 중에 기초라며 꼭 한번 읽어볼 것,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IT 쪽으로 간다면 코딩도 기본적으로 익혀둘 것 등 나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셨다. 많고 많던 책들 중에 버릴 것들은 버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책들이라며 의미를 더하셨다.
그 무거운 책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단지 책 그 자체의 무게라기보다는 젊은 시절 아빠의 열정과 추억, 나에 대한 사랑 등 수많은 가치가 그 무게로 느껴졌기 때문인 걸까.
그날 저녁, 내가 공부할 분야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셨는지 아빠한테서 카톡이 왔다.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마지막으로 이모티콘 하나로 대화를 마치셨다. 그리고 그 이모지 하나로 나의 결정에 대한 아빠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빠가 감성적이고 섬세하게 변하는 모습을 느끼곤 했지만 그날에서야 실감이 났다. 아빠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 생각과 동시에 딸로서 못난 나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셨다. 공부할 땐 학습에 도움을 주는 신문기사를, 겨울이 다가오면 눈길 안전운전 요령과 차량관리법을, 신혼집 마련할 때에는 부동산 거래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새로운 공부를 앞두고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쓴 칼럼을… 내가 배워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피해야 할 것, 조심해야 할 것. 아빠는 당신께서 살아오시면서 겪고 깨달은 것들을 나한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떠서 주시려고 했다. 아빠한테 나는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였던 것이다. 내가 못난 딸이라고 느끼는 점은 그런 아빠의 사랑에 무심했던 데에서 비롯된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외동딸로서 아빠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걸까. 감정이 북받쳐서 잠이 오질 않았다.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속으로라도 적어내고서야 겨우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아빠가 늘 내 곁에 있어와서 그게 늘 당연하듯 살아왔나 봐.
조금이라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준 말들을 귀찮게 여겼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아빠한테 많이 미안해.
가끔 아빠가 나한테 뭔가를 부탁하면 귀찮다고 투덜대기만 했는데 정작 내가 필요한 일 생기면 아빠한테 부탁하기만 했네.
그래도 아빠는 싫은 내색 한번 안 하고 다 들어줬던 것 같아.
이기적인 딸내미여서 미안해 아빠.
아빠, 나는 아빠 딸이어서 정말 행복해.
아빠를 닮은 딸이어서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자.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해.
딸내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