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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Jun 07. 2022

달리는 이유

요즘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수영, 복싱, 주짓수, 자전거, 등산, 양궁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운동 중에 ‘달리기' 를 가장 오랫동안, 가장 즐겁게 즐기고 있다.


4월 157km, 5월 161km 를 달렸다. 5월에는 서울에서 달려서 대전까지 간 셈이다. 왜 달릴까. 사실 나는 왜 달리는 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달렸다. 정말 그냥 달렸다. 애초에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지, 왜 하는 지 자문해본 적이 없는데 주변사람들이 꽤 많이 물어본다. 크게 2가지 질문인데, ‘왜’ 달리는 지.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달리는 지.


듣자 마자 든 생각은 ‘재밌어서’ 였다. 그리고 말하고 나니, 부가적인 이유가 하나 더 생각났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두가지 답을 했다. 친한 사람이라면 ‘재밌어서, 그리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 덜 친한 사람이라면 ‘재밌어서요' 라고. 그렇다. 왜 달리는 지, 왜 그렇게까지 달리는 지 2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재밌어서 이다. ‘왜'에 대한 답이 충분하면 ‘그렇게까지'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을 안해도 될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에서 재미를 느꼈고, 그 재미를 통해 얻게 된 것들은 뭐가 있을까.

우선 내가 느낀 가장 큰 재미는 집중과 몰입이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에는 바람도 좋고 음악도 신나서 상쾌한 재미를 느끼지만,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힘들어서 상쾌함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자세가 무너져 손발을 엉망으로 흔들고 삐걱대는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달리는 행위 하나하나에 집중을 해본다. 그러다 보면 중심이 생기고 동작이 재정비 된다. 동작의 반복됨 속에서 내가 없어지는 순간이 생긴다. 내가 주체적으로 달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건지, 마치 마리오 네트 인형 처럼 달리기가 나를 조종 하는 건지 헷갈리는 것이다. 물아일체가 이런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의지'로 시작한 활동이 ‘내가 없어질 때'에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정말 귀한 몰입의 순간이다. 고통의 산을 넘은 즐거움은 처음의 상쾌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의 대가로 중독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내가 없어지면 느껴지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내가 없어지는 ‘비움’과 없어져서 ‘채워지는 것들' 이다.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고민, 번민 같은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자아가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고 작은 고민들을 한껏 부풀려서 괴로워 할 때 그 고민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달리기는 그런 고민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운동이기에 환기하기에는 최적의 운동이다. 자아가 없어진다는 것은 비슷한 맥락에서 ‘나'에게 집중된 시선을 거두고 밖으로 향한다는 뜻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주변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내 몸은 반복 행위를 통해 자동화(?) 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관심이 더 많이 생긴다. 최근에 본 것들을 옮겨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강물과 바람이 장난치며 만들어 내는 듯한 물결, 이런 장난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고고한 왜가리, 정오쯤에 힘 센 햇살로 반짝이는 윤슬, 초여름 물가에 핀 수선화와 붓 꽃의 향연, 절기가 스며들어 짙어져가는 신록, 항상 나와 앉아 계시는 익숙한 아주머니들의 웃음 소리, 똑같은 시간마다 나와서 색스폰을 부는 중년 남성들의 색스폰 크루, 다리 기둥에 낙서해 둔 ‘00아 사랑해’의 빛 바램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탐미하다 보면 반복처럼 느껴지는 하루가 매일 다르게 느껴지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세상을 느끼게 되면 어떤 경외심이 들고, 감사함이 빼곡히 채워진다. 세상 속에서 내 존재가 작고 귀엽게 느껴질 때, 예상치 못한 힘과 묘한 위로를 얻는다.


여기까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푹 빠진 것이다. 이제 그 대상을 더 탐구하게 되고, 말릴 수 없는 의지가 생긴다. 달리기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지고 그 시간과 계획이 내 일상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 같은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든 연락할 짬을 내고, 관련된 모든 것들이 궁금해지고, 귀찮음이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의지가 솟아나지 않나.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이 되는 것. 그런 것이다. 달리기를 위한 시간을 내고, 달리기에 관한 게 궁금해지고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의지란 저녁 약속이 있으면 아침에 뛰고, 아침에 늦잠을 자면 점심시간에 뛰고, 넘어져서 다쳤을 땐 짧게만 달려보고 그런 식이다. 재밌을 꺼란 기대감에 하루가 또 재밌어진다.


탐구하다 보면 관심이 확장되고 뻗어나간 범위에서 소소한 재미와 교훈, 연대감이 생긴다. 달리기를 하러 갈 때 ‘오늘은 어떤 양말을 신지’ 하면서 즐거워 하고, 신호등 앞에서 무슨 음악 듣지? 하는 게 재밌고, 달리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하면서 달리기에 관한 책도 읽어보다가 ‘나도 써볼까?’하며 어떤 이야기를 쓸 지 상상해본다. 같이 뛰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마라톤에 참여하기도 하고, 온라인 런클럽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떤 과학자가 “하나를 깊게 파다 보면 넓게 알게 된다” 고 말했고, 스피노자는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넓게 파든 깊게 파든 그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즐거워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고,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으니 지속할 수 있었고, 더 깊이 즐길 수 있었다. 과정에서의 보상은 고통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관조적 태도를 기를 수 있었다. 이런 즐거움이 내 일상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면, 내 인생을 더 풍요로워 지지 않을까. 그 즐거움들이 모여서 내가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 주길 바래본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달리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나도 잘 모르는, 내가 달리는 이유에 답하기 위해 생각해 보았는데 답이 더 명백해졌다. ‘재밌어서요’라고 답할 수 밖에. 내일은 점심 약속이 있다. 그러니 아침에 달려야겠다. 노란색 꽃무늬 양말을 신어야지. 그리고 daft punk 노래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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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달리면 좋은 점이 정말 많은데 다음에 더 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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