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는 사랑을 지켜온 연인들을 위한 찬사
어쩌면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 영화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죠. 무려 18년 이란 긴 시간을 이어져 온 비포 시리즈.
'비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아름다운 그리스 해변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들이라는)
비엔나, 파리에서 만났던 두 연인이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그리스의 해변가에서 데이트를 가집니다.
쉴새 없이 ‘셀린(줄리 델피)’ 에게 이야기 하던 사랑꾼 ‘제시(에단 호크)’ 는 이제 퍼져버린 몸매에 수염도 깎지 않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사랑스럽던 셀린은 어째 신경질이 부쩍 늘어버린
중년 아줌마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나이와 중력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요?
이렇게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던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이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커플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영화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비행기를 그냥 떠나보낸 (두 번째 이야기, <<비포 선셋>> 의 이야기입니다) 두 커플의 9년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공한 소설가이던 '제시'는 이미 결혼하여
미국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다시 만난 '셀린'과 함께하며,
제시는 전 부인의 아들과는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미국으로 가서 남겨진 아들을 만나는 제시.
오랫동안 잊지 못하던 사랑을 찾았지만, 자신의 늦은 선택으로 인해 남겨진 아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죠.
그런 아들을 위해 '그리스'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합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미국행 비행기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시의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들을 보내고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셀린과 그의 새로운 가족들(쌍둥이 딸들) 역시 그리스의 작은 섬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제시는 변해버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방금 돌려보낸 아들의 문제로 심각해지는 두 사람.
제시는 성장기의 아들이 걱정이 되어 옆에 있고 싶어 하지만, 셀린은 자신의 직장을 포기하고 이사를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다가도,
현실의 벽에 서면 당장 싸움을 시작하는 두 사람.
비엔나의 밤거리에서, 파리의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던 두 연인이, 나이 든 모습으로 나타나 현실 생활을 이야기하며 티격태격 대는 모습이 적잖이 충격적입니다.
평생을 싸우지 않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던 로맨스 소설의 마지막이 리얼타임 쇼가 되어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안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영화 중반부에 스크린을 보면서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동화는 이제 다 커버린 어른들의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린 전처,
그런 엄마에게 아들을 맡길 수 없다고 걱정하는 제시는 셀린에게 넌지시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양육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미국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 같아, 제시에게 셀린은 화를 냅니다.
급기야 '아이들이 없으면 지금까지 살고 있겠어." 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오게 되죠.
셀린의 대사 하나하나에는 아름다웠던 시절,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육아와 가정에 힘써야 했던 주부로서의 삶에 대한 한스러움이 녹아 있습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기회를 파리에서 잡으려는 이 순간 미국 이라니요?
폭발해 버린 셀린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당황한 제시는 이런 셀린을 따라 밤거리로 나갑니다.
아름다운 별빛들이 둘의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이해되지 않는 인간세상의 모습을 담담히 관전하는 것처럼 말이죠.
비포 선라이즈, 선셋 ... 그리고 미드나잇.
오랫동안 이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누구나 꿈꿔봄직한 동화 같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배경의 도시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8년 이란 긴 시간을 영화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두터운 팬들의 응원과 다음 동화에 대한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이번 이야기를 유독 '이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동화 같은 멋진 로맨스 이야기를 선사하던 두 편의 전작들과는 결이 다른(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나쁘진 않으면서도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후기나 댓글에
이런 말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연인들도 결국, 시간의 힘 앞에선
어쩔 수 없이 현실 지구인으로 변해가는구나...'
라구요.
영화를 보면서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리뷰를 위해 영화를 보면 볼수록
또 다른 의미가 보였습니다.
지는 석양을 보면서
이제는 오래된 연인들이 되뇌는 대사,
'아직 있다... 아직 있다...'
라는 말은 어쩌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운명을 믿고 뜨겁게 사랑해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이 아닐까요?
같이 나누었던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
티격태격 서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두 커플은 불안해 보이지만, 오래된 유적지를 서로 두 손을 맞잡고 밝은 표정으로 걸아가는 모습에선 서로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수줍은 '설레임' 이 보였습니다.
비엔나의 밤거리를 누비며,
파리의 오후를 즐기며,
서로에게 사랑스런 웃음 짓던 그때처럼 말이죠.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 비포 미드나잇.
세 편의 '비포' 시리즈를 보면서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한 영화'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포 미드나잇’ 은 동화 같은 비포 시리즈를
가장 현실의 영역으로 돌려놓은 영화입니다.
아름답던 젊은 연인들의 앞에는 이제,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가득하죠.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부딪히고, 아름다울 것 같았던 결혼 생활에도 다툼이 찾아옵니다.
두 연인은 이제 서로의 생활에 언제든 고민과 다툼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합니다.
격정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죠.
그리고 검은 밤하늘 아래 마주 앉아 대화를 합니다.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주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아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쯤은 화가 나서 싸워본 경험이 있어본 우리들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곤 이내 쌓인 감정들은 풀리며 다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합니다.
18년의 시간을 품은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설레이는 사랑' 의 감정이 있어야 함을.
그런 사랑의 감정이 '설레임 없는 익숙한 일상' 으로 바뀌지 않게 하기 위해선, 서로가 항상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노력해야 함을.
그리고,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지키려 노력한 이들은
수평선에 걸린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추억할 자격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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