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력적인 대화의 향연
로마 바티칸.
베드로의 순교 이후로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진 천국으로 통하는 도시.
이 곳에서는
'콘클라베(Conclave)'라는 행사를 통하여
지금도 베드로의 후계자를 선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콘클라베란 뜻은 라틴어인 '열쇠가 필요한(cum clave)'방 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투표인단은
감금(?)을 당하게 되는 거죠.
음... 영향력 있는 새 교황님을 뽑는 행사이니
누군가가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일까요?
사실 여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1267년 교황 클레맨스 4세의 선종 이후,
다음 교황을 위해선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선거단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268년,
이탈리아 라치오의 비테르보(Viterbo)에서 진행된 교황 선거에서 막장극이 벌어집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미는 교황 후보로
추기경단이 분열되어 버린 것이었죠.
성안의 투표장에선
서로 치고받고 고성이 오갔답니다.
그리고, 그만큼 기간은 더 길어지고, 그만큼 더 먹고 마시고 또 힘내서 다시 싸움을 하는 추기경들을 보면서, 비테르보의 주민들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아니~ 허구한 날 싸우는 놈들이
왜들 저리 잘 X 먹는데?
도대체 언제쯤 저 거지들이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1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교황님은 뽑지도 않고,
서로 멱살을 붙잡곤 쌈박질하는 이들을 보다 못한 시민들이 법원으로 달려갑니다.
(그도 그럴것이 전유럽에서 몰려온 저들의 숙식비는
모두 시민들의 부담이었거든요)
마음속으로 이들 성직자들을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던 치안판사들 역시, 민원도 들어온 김에 조금은 불경한 짓(?)을 저지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제들이 교황을 뽑을 생각이 없다면,
그들이 교황을 뽑게 만들면 될 일이었지요.
이제 시민들은 치안판사들과 함께 선거가 진행되던 성으로 몰려가 입구를 자물쇠로 잠궈버렸습니다!
난리가 난 회의장.
문을 열라고 고함을 지르는 안을 향해서 시민들이 으름장을 놓습니다.
"너희들,
누구든 빨리 안 뽑으면 먹는 것도 줄일줄 알아!!!"
그래도 상대편을 이기게 만들긴 싫었던 추기경들은,
빵과 물만 먹고 마시면서도, 서로 으르렁대며 버티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더 화가 난 시민들은
'오냐, 얼마나 버티나 보자' 하면서
회의장 지붕까지 부숴버립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던 성직자들 역시,
비가오면 이를 악물곤 마룻바닥 밑으로 기어들어가, 자신들의 옷을 천막 삼아 버티면서,
다음 교황은 '상대편은 안 뽑을 거야' 를 외쳤습니다.
무려 2년 9개월 2일,
역사상 가장 길었던 이 교황 선출 과정을 거치면서 교황청은 하나의 교훈을 얻습니다.
가둬놓고 뽑게하는 방법' 이
의외로 괜찮다(?)는 것이었죠!
(오호~!!!)
그리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저 내려오고 있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신부님.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오늘도 그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 거리의 신부님.
얼마의 시간이 지나, <프란치스코> 라는 이름의 교황님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던 신부님. 그런 신부님에게 급히 한 신도가 달려와 이야기를 합니다.
"교황께서 돌아가셨어요."
축구를 좋아하고, 조국 폴란드의 노동자들과 무시무시한 소련에 대항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 평안한 잠에 드신 것이었죠.
그리고 어김없이 '콘클라베'가 열립니다.
콘클라베가 준비되고 있는 바티칸,
전 세계에서 추기경들이 몰려듭니다.
화장실에서 휘파람을 부는 호르헤 신부님 옆에서
누군가가 물어봅니다.
백발의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인상.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신부님입니다.
"흥얼거리는 그 노래가 뭐요?"
"<댄싱퀸> 입니다. '아바' 의 노래죠."
"아바라 ... 듣기 좋군요."
약간은 굳은 미소를 남기며
요제프 신부님은 먼저 자리를 뜹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추기경들 사이로,
호르헤 신부님은 바티칸의 복잡한 정치상황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방금 화장실에서 만난 요제프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에 강력한 후보이죠. 10개 국어를 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교양 있는 추기경.
하지만, 그는 강력한 원칙주의자 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너무나 많이 세속화되었고,
그 근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다시 전통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믿음이 있는 인물이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호르헤 신부님이 날아온, 남미 대륙에서 널리 퍼진 '해방신학(종교의 사회참여를 적극 지지하지만, 사회주의적 성향을 포함하고 있다고 배척받는)' 움직임에 대하여 반대를 하였습니다.
.
그래서일까요?
유독 다른 사람들에게 살갑게 인사하던 그는
호르헤 신부님은 외면해버리고 갑니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 위해선
3분의 2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
영화에서는 그 엄숙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조용한 움직임들로 보여줍니다.
하늘을 향해 투표에 임함을 선서하고,
개표된 용지들은 실로 꿰어져,
새로운 교황이 나올 때까지 소각됩니다.
그리고,
바티칸의 굴뚝을 보는 세상의 눈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아직은 새로운 교황이 정해지지 않은 거죠.
이제 각 후보들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수 백년전 두 파로 나뉘어 싸우던 추기경들처럼,
모두가 모여 작전을 구상합니다.
카톨릭 교회의 변화를 열망하며, 호르헤 추기경 옆으로 모이는 사람들과 그런 그를 뒤에 놓고 교회의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요제프 추기경.
자신을 뽑으려는 움직임을 극구 반대하는 호르헤 추기경에게 다른 이들이 의미 심장한 이야기 합니다.
"지도자의 최고의 덕목은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다시 재개되는 콘클라베.
지루한 투표가 반복이 되고, 여러 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드디어, 바티칸의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솟구쳐 오릅니다. 바로 새로운 교황이 탄생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2005년,
요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 추기경은 새로운 교황이 됩니다. 그가 선택한 이름은 '베네딕토 16세'.
근본에 충실한 베네딕토 수도회의 이름처럼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카톨릭을 지켜내겠다는 신념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 백 년 전의 신비로운 예언가 멀라키는 마치 오늘의 교황님을 본 것처럼, 그의 예언서에 이렇게 새 교황님을 기술합니다.
'올리브의 영광'
올리브를 상징으로 쓰는
베네딕토회가 생길걸 마치 알고 있었던 듯 말이죠.
그렇게,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골목에서 호르헤 신부님은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발신처는 이탈리아 바티칸 시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 역시 신기해합니다.
이제 은퇴가 하고 싶은 호르헤 신부님은 바티칸으로 갈 비행기표를 이미 예약해 놓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죠.
오래전부터 보내던 그의 편지에
아무런 대답이 없던 교황청.
갑자기 날아온 편지를 보며 신도가 말합니다.
"우연의 일치네요."
이야기하는 신도에게 신부님은 이야기합니다.
"우연이란 없어요, 모두가 주님의 뜻이죠."
장면이 바뀌어 로마,
소탈한 모습의 호르헤 신부님은 눈이 휘둥그래 집니다.
공항에서 그를 마중 나온 차는 바티칸이 아닌,
멀리 위치한 한적한 시골 별장으로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의 눈에는 오래 전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은 지쳐보이는 모습으로 그를 맞이하는 베네딕토 교황의 모습이 보입니다.
먼 길을 달려온 호르헤 신부님을
교황님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그리고 둘 만의 식탁에 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죠.
하지만 이 두 분, 물과 기름일까요?
하나에서 열 까지 모든 부분에서 생각이 맞질 않습니다. 모든것이 불편한 상황.
거기다 교황청은 지금까진 상상도 하지 못하던 스캔들에 휘말려 있었으니, 2002년 미국에서 시작된 카톨릭 사제들에 대한 '미투' 운동 때문이었습니다.
카톨릭 사제들이 어린 신도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의혹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미국과 유럽의 각 국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폭로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당시 실무직을 담당하던 베네딕토 교황에게도 그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었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은퇴 이야기를 꺼내는 호르헤 신부에게 교황은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당신은 한 때 교황이 될뻔한 사람이란 말이오.
지금 은퇴한다면 교황청에 대한 항명으로 사람들이
볼거란 말이오."
이제 교황청에게 세상이 원하는 변화의 물결은 너무나 거세었고, 지금의 교황에게 바티칸의 상황은 지켜내기도 벅찰 정도로 어지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기는
호르헤 추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모든 주님에 대한 봉사를 마치고, 한적한 은퇴생활을 꿈꾸던 그를 교황님은 왜 이곳까지 불러낸 것일까요?
<두 교황> 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과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합니다.
살아 생전에 백옥좌를 내려놓는 교황님.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종신직이나 다름없는 세상 최고의 권위를 내려놓는 것.
살아있는 교황님들의 권력 이양을 보게 되는 건,
분명 우리에겐 특이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네요.
흥미로운 소재임에도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 이 영화를 접하기에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이름있는 노배우가 근엄한 사제복까지 입고 있는 모습은, 가벼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기에는 너무 부담(?) 스러운 포스터라고 할까요?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가 지날수록
그런 거부감은 주사 맞기전 알코올처럼 시원하게 날아가 버립니다.
이 영화에는 포스터가 미쳐 담지못한
너무나 멋진 매력들이 여기저기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두 명의 명배우들 입니다.
이 영화는 실질적으로 두 배우가 끌고 가는 스토리입니다. 그런 만큼, 위험부담이 아주 큰 영화이기도 하죠.
애초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떨어져 버린다면,
시청자들은 중간에 리모컨을 던져버릴 거고,
반대로 한쪽이 너무 압도적인 연기를 보인다면,
전체적인 영화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릴 거예요.
(히스레저의 조커가 영화 <배트맨>의 이름을 관객들에 머리에서 지워(?) 버린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앤서니 홉킨스' 와 '조너선 프라이스' 의 잔잔하지만 예리한 연기는 가히 압도적입니다.
영화를 보기전 이미 '앤서니 홉킨스' 의 압도적인 연기력을 알고 있던 탓에, 상대역인 '조너선 프라이스' 를 조금 걱정했었습니다만 괜한 걱정이었죠.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명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를 보면서,
로마시대 콜로세움 경기장에 서 있는
두 명의 검투사가 생각이 나다가,
또 갑자기 한 없이 정겨운
시골 아저씨들의 만담도 생각이 났습니다.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 배우들의 완급조절은
거친 화면 질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영화의 매력은 대의명분을 말하는 높은 지위의 인간들의 나약한 내면을 자연스럽게 짚어낸 점입니다.
두 명의 교황들은
변화하는 세상과 그래도 지켜야 할 가치관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주제로 싸우다가 대화가 깊어질수록 점점 서로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게 합니다.
지금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가슴속에
자신이 카톨릭 사제들의 성범죄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인간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해버린 세상을 무시하고 조직을 위해 범죄를 덮으려다가, 오히려 커다란 역풍을 맞고 모두가 위험해진 상황에 쳐했습니다.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조직의 도덕성이 깨졌을 때, 모두가 모르게 덮으려 했던 그의 결정을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려 하지만...결국.
그도 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한 인간임을 대화를 통해 느끼게 됩니다.
호르해 추기경은 어떠할까요?
군부독재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뒤바꾼 조국 아르헨티나. 자고나면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었던 젊은 추기경님.
모두를 보호하고자 했던 그의 선택은 결국 모두를 휩쓸어 가고 맙니다. 그가 아끼던 2명의 신부님과 한 때 사랑했던 여자까지도 말이죠.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도와야 했기에,
호르헤 신부님은 낮에는 독재자들에게 세례를 주며,
그들과 어울려 웃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과, 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갑니다.
둘의 대화에서 묻어 나오는 인간적인 후회와
그로인해 만들어진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상처들.
대화 속에서 묻어 나오는 인간적인 고뇌들을 듣고 있노라면, 스승을 외면하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렸던 베드로의 인간적인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마지막 매력 포인트는
어느 세대와 지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 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지켜야 할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과, 변한 세상에 따라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명분으로 다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이 아름다운(?) 엔딩인 경우를... 사실 잘 보진 못했습니다.
완고한 교황님은 '댄싱퀸' 노래를 들으며, 호르헤 추기경을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헛웃음을 짓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상대방을 바라볼 용기를 냅니다. 예전에는 마주치면 인사도 하지 않던 그를 별장으로 불러들인 거죠.
그리고 불편한 대화를 인내심을 가지고,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상대를 이해하려하며 애써봅니다.
그가 모든 천주교 사제들 위에 있는
유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런 완고한 교황을 호르헤 신부님 역시 잘 이해하질 못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불편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교황님과 탱고를 즐기는 추기경님.
그렇게 불편하던 둘은 대화를 통해 가르침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항상 대척점에 서있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완고하던 교황님은 드디어 그의 시대가 끝나감을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옴을 말은 하진 않지만 느끼게 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변화' 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전에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부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어떨까요?
'전통' 은 항상 나쁜 것이고,
'진보' 는 항상 좋기만 한 걸까요?
'정의' 는 항상 옳은 것이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모두가 ‘불의’ 인가요?
'정의' 란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변화' 를 실행하는 이들은 항상 옳은가요?
내가 믿는 '정의' 는 진정한 정의 일까요?
혹시,
나만의 정의로움이 누군가에겐
감당못할 피해를 주고있진 않나요?
영화 <두 교황> 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할 '배려와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대하여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서로 공감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뭘까요?
어쩌면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시끄러운 술자리 보다는,
'진솔한 대화'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자세' 가
우리에겐 더욱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저한테는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는
두 명의 교황, 아주 높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
진보와 보수(저는 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아요^^)
...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서로 아쉬워하는,
평범한 우리들이 지금 사회에서 겪고 있는 문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습니다.
누군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답답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올해가 가는 마지막 하루에는,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서로가 마주 앉을 수 있는 공간에 그렇게 편안히 앉아, 눈을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너무나도 인간적인 두 교황님이
이탈리아의 어느 별장에서 그랬던것처럼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