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문화재단 신사옥 by Herzog de Meuron
결론적으로 건물은 젖지 않았다.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의 외벽 재료는 일명 ‘송판 무늬 노출 콘크리트’다. 말 그대로 소나무 판을 덧댄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구조체를 만들고 이를 그대로 노출시켜 마감했다는 뜻이다. 보통의 노출 콘크리트라고 하면 거푸집 안쪽에 일명 ‘테고(Tego) 합판’이라 불리는 매끈한 코팅면을 붙여 맨질맨질한 표면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도 제법 익숙한 건축가 타다오 안도의 방식이다. 반면 소나무판의 표면을 버너로 그을려 특유의 요철을 극대화하게 되면 마치 야생 동물의 피부나 사람의 지문처럼 거친 무늬가 콘크리트 표면에 그대로 아로새겨진다.
게다가 표면에 덧바른 유성 발수제는 그 음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발수제'는 시공을 마친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 발라 빗물의 침투와 오염을 막는 역할을 한다. '방수'와 '발수'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방수'는 그것을 적용한 대상 너머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발수'는 적용한 대상 그 자체가 물에 젖어 품질을 잃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다. 때문에 노출 콘크리트처럼 별도의 마감이 없는 외벽 표면이나 벽돌, 석재와 같이 흡습성이 있는 마감 표면에는 반드시 발수제를 적용해야만 내구성을 담보할 수 있다.
전시장 한편에 놓인 여러 차례의 목업(mock-up) 샘플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건축가는 발수제의 색상이나 점도마저도 면밀히 고려했던 것 같다. 표면의 요철을 따라 중력 방향으로 고이며 굳은 용제는 해당 부위를 본래의 콘크리트 색상 보다 진하게 만들며 마치 웨더링(weathering) 효과마저 연출하게 계획되었다. 깊고 반복적인 송판의 무늬는 빗방울에 젖어드는 자국을 감추기에 좋았고 멀리서 보면 여러 방향의 패턴으로 인해 이를 알아보기 더욱 어려웠다. 물론 아직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 발수제의 성능이 좋은 것도 건물을 젖지 않게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건물에는 마땅히 ‘지붕’이라고 부를만한 부위가 전혀 없다.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겨 찍어본 꼭대기 부근에는 손바닥 하나 정도 폭의 면적이나 있을까. 비를 모아줄 지붕이 없으니 당연히 흘러내릴 물도 없다. 여전히 흩날리는 빗방울 아래서도 조금도 젖은 기색 없이 우뚝 솟아있는 건축은 그 기이한 조형만큼이나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동네인 강남 한복판에서 말이다.
건축가는 송판의 아이디어를 ‘송은(숨은 소나무)’이라는 이름에서 착안했다고 공식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도 단일 재료로 된 거대한 면을 효과적으로 연출하기 위해서 사용한 트릭이 아닐까 싶다. 대학로 아르코극장의 거대한 벽돌벽을 만들며 불규칙하게 몇 개씩 내어 쌓도록 했던 김수근 선생의 재치나,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벽에서 면귀목을 이용해 면분할 패턴을 도입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시선을 분산시켜줄 작은 요소를 도입하여 큰 그림을 보게 만드는 방법이다.
송은에 사용된 송판은 정확히 900 x 900mm 정방형 단위로 방향을 교차해가며 거대한 면을 이룬다. 규격화된 거푸집인 유로폼의 기본 단위가 600 x 1200mm이니 묘하게 잘 안 맞는 크기다. 건축가가 정한 절대적인 크기를 맞추기 위해 시공과정에서도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노출 콘크리트의 시공 품질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다. 정방형의 모듈은 외벽뿐 아니라 실내 노출면에서도 동일하게 차용되며 재료에 일관된 표현을 보여준다.
예매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우산을 쓰고 천천히 주변을 걸었다. 건축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첫 작업의 무대가 된 도산대로에 대해 ‘참고할 만한 건축이 없었다’고 다소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도시나 건축을 무시했다기 보단 ‘강남’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맥락을 간파한 결과였다.
천문학적인 지대와 상업성이 최우선시되는 특수한 도시 상황에서 건축은 더 많은 면적, 더 튀는 재료로 흔히 과유불급의 착오에 빠지기 쉽다. 그런 가운데 저층부를 완전히 공공에 내어주고 심지어 그 흔한 쇼윈도 하나 만들지 않는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은 분명 가장 독보적인 인상의 건축일 수밖에 없다. 다들 더 큰 목소리를 내려 혈안이 되어있는 가운데 눈감고, 입 막고, 귀 닫아 가장 튀는 건축이 된 것이 재미있다.
건축의 파사드(facade)는 아주 명료하다. 개구부 두 개, 창문 두 개. 좌측 하단의 개구부는 차가 들어가는 구멍, 우측 하단의 개구부는 사람이 들어가는 구멍이다.
손바닥만 한 은박을 일일이 펴 붙여서 금속성의 광택이 있는 주차 진출입구는 육중하고 무광택의 노출 콘크리트 외벽과 대조를 이룬다. 차가 없어도 왠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고만 싶은 욕구마저 불러일으킨다. 건축은 보통 사람이 쓰는 공간을 다룬다고 생각해 주차 진출입구는 소홀해지기 쉬운 곳이지만 간접조명까지 곁들여 공을 들인 이곳은 감히 지금껏 본 진출입구 중 가장 우아했노라고 적어두고 싶다. 하물며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저분한 내 차로는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외부 방문객에겐 주차가 허용되지 않고 있어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두 개의 길고 높은 창은 각각 전시장에 하나, 사무공간에 하나씩 나있다. 송판 무늬의 간격과 배수로 떨어지는 덕분에 손가락을 들어 개수를 세보니 아랫쪽 창은 여덟 모듈, 정확히 7.2m 높이다. 상부의 창은 그보다 더 높아 보였다. 전시장으로 쓰이는 2, 3층과 상층부 사무공간에 자연광을 들이는 용도일 것이다.
재미있는 건 창문이 있는 면이 남쪽이라는 점이다. 전에 유리 커튼월로 된 남향 오피스 건물에서 일할 때 창가에 앉았다가 머리가 지끈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리 궁전들은 대부분 너무 많은 햇빛이 실내로 쏟아지는 바람에 블라인드를 치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한낮의 태양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창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적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혹여 일하는 곳이 너무 어둡진 않을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북쪽을 향하는 면으로는 각 층마다 길게 띠 창이 있고 삼각형 모양대로 상부로 올라갈 수록 건물의 폭이 좁아지니 채광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직접 올라가 볼 수가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90도 각도를 틀어 대로가 아닌 중정을 향하는 출입문을 들어서면 지상과 지하 전시공간을 아우르는 둥그런 아트리움이 나온다. 먼저 이곳을 들렀던 건축하는 동료들의 SNS를 통해 익숙했던 바로 그곳이다. 곡면의 난간 벽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작은 소극장을 지나 자연스럽게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반시계로 돌아가는 계단은 얇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외부의 계단과 완벽하게 동조되어 있다. 여기선 계단이 하나의 동선이라기보다는 조금씩 들려 올라가는 바닥, 혹은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외부에서는 계단 끝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나와봤다. 나 말고도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눈으로 확인하는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건축하는 사람이 분명하지 싶다. 아쉬운 건 끝이 막다른 길이라는 점이었다. 실내에서 계단을 따라 소극장과 전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처럼 외부에서도 저 끝으로 도시의 다른 공간이 연결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못내 남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안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계단을 따라 본격적으로 전시공간을 돌아볼 차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