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문화재단 신사옥 by Herzog de Meuron
전시영역을 지배하는 건 중앙의 거대한 '아트리움'이다. 아트리움(atrium)은 건물 안쪽으로 여러 층에 걸쳐 형성되는 대규모 홀을 의미하는데 직역하면 ‘중정’ 또는 ‘중앙홀’이다. 그 기원은 고대 로마의 주거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중앙의 안뜰에서 유래했다. 현대 건축에서는 주로 공간의 중심에서 시각적, 공간적 개방감을 제공하며 때로는 채광이나 환기와 같은 환경을 제어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이제는 많은 건물들에서 자주 접할 할 수 있는 종류의 공간이지만 이곳에서는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모양 때문이다.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곡면의 노출 콘크리트 난간벽은 아트리움의 형상이 결코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게 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기엔 전시 관람의 맨 막지막 순서인 지하 2층 전시실 바닥이 있다. 이는 로비에서 출발해 지상 2층과 3층을 순서대로 둘러본 후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2층으로 다시 내려와야 하는 다소 복잡한 관람 동선을 무의식 중에 인지하게 한다. 한창 전시를 보던 중 ‘아, 아까 지하에 뭔가가 있었는데’하고 생각이 났다면 건축가의 작전은 대 성공인 것이다.
로비에서 내려다보이는 아트리움의 모양은 완전한 원(circle)이 아니다. 소극장으로 사용되는 지상 1층의 직선 벽 일부를 걸치고 있는 관계로 전체적인 형상은 '쉼표', 혹은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 단면'과도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개구부의 천장은 완전한 원이다. 두 개의 도형이 묘하게 어긋나며 만드는 조형은 벽면을 타고 내리쬐는 조명에 의해 묘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로비에서 전시실로 올라가는 넓은 계단은 벽 뒤로 넘어가자마자 그대로 작은 객석이 된다. 전시를 둘러보기에 앞서 간단한 안내나 인트로 영상을 보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냥 지나쳐버리면 그만이니 낭비되는 공간도 없다. 아마도 그리 크지 않은 대지면적 안에서 여러 기능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건축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다. 창 밖의 외부 계단과도 단의 높이와 폭을 맞춰 연장된 공간감을 연출한 것도 좋았다.
지상 2층과 3층의 전시실은 의외로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얀 벽과 바닥으로 되어 전시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공간 자체는 여느 전시장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개관전에서는 건축가의 과거 작업들을 사진과 모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의외로 그들의 작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반가운 전시물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었다. 바로 '걸레받이'와 '천장 몰딩'이다.
건축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민은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는 접점에서 발생한다. 실내에서는 바닥과 벽, 혹은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이 그렇다. 각 부분의 재료가 알아서 깔끔하게 마무리되며 만나면 참 좋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이는 많은 신경과 노력을 요한다. 보통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모서리에 두껍고 못생긴 체리색 목재를 덧댄다던지 실리콘을 덕지덕지 바르는 건 이 접점을 가려버리는 쉬운 수법에서 기인한다.
요새는 일명 ‘마이너스 몰딩’이라고 해서 못생긴 목재보다는 조금 더 수려하게 마감을 하는 방법도 흔히 쓰이는데 이곳엔 그조차 없다. 안될 건 없겠지만 시공만큼 앞으로 유지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게 분명해 보였다. 문득 상층부 사무공간에도 걸레받이가 없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시실보다는 빈번하게 청소를 해야 할 테니 거기엔 있으려나. 올라갈 수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전시실의 천장은 균질한 전반 조도를 확보하고 전시물에 따라 국부조명(spot light)을 대응시킬 수 있도록 긴 레일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 역시 균등하게 분할한 천장의 조명 라인이 있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공조를 위한 토출구(라인 디퓨져)도 레일에 숨겨 설치됐다. 뿐만 아니라 스프링클러, 비상구 표지판, 스피커 등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 또한 같은 간격으로 줄을 맞춰 배치됐다.
압권은 일명 ‘자탐’이라고 불리는 ‘자동화재탐지기’다. 제 아무리 줄을 맞춰 붙였다고 하지만 퉁퉁하게 생겨서 툭 삐져나온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이참에 헤어초크 선생께서 작고 날렵하게 생긴 감지기 하나 디자인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열심히 설계한 예쁜 천장에 못생긴 감지기를 툭툭 배치하며 마음 아파했던 나의 과거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움이 더했다.
파사드에서 낮은 쪽에 위치한 대로변 7.2m 높이 긴 창은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쪽으로 하나뿐인 중요한 창이라 그런지 앞에는 멋진 작품이 놓였다. 아쉬운 점은 창이 있는 쪽이 코어로 되어있어 점검구, 소화전, 엘리베이터, 계단실 문 등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이 너무 몰려있다는 점이다. 최대한 숨기려는 건축가의 노력이 보였지만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전에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찾았다가 너무 아름다운 계단실을 보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곳 계단실도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도슨트에게 물어보니 안된다고 했다. 전실이 있는 특별피난계단일 테니 그리 특별하게 설계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궁금했다. 이 또한 들어갈 수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전시의 마지막 순서인 지하 2층에는 조명이 없다. 대신 아트리움을 통해 쏟아져 내려오는 로비 천장의 불빛이 어둠을 밝힌다. 감각적인 조형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훑으며 만들어내는 음영에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다만 보통 이런 감동을 주는 공간의 주인공이 자연광인데 반해 이곳은 인공광인게 재미있다. 아, 물론 로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일부 반사되어 함께 들어오긴 한다.
가까이 가서 올려다보면 지상 1층 로비 천장에 줄지어 달려있는 LED 조명등이 보이는 게 생경하다. 아마 이 건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찍는 사진 구도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두운 공간을 활용해 각종 영상들을 전시하고 있는 지하를 다 돌아보고 나면 다시 로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 바로 옆 벽에서 사람들이 꼭 한 번씩 멈춰 선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실내 측 노출 콘크리트 벽에 묘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콜드 조인트'다.
콜드 조인트(Cold Joint)는 철근 콘크리트의 대표적 하자다. 유동성을 가지는 반고체 상태로 거푸집에 부어 딱딱하게 굳혀야 하는 콘크리트가 적정 비율 혹은 온도 등의 조건을 맞추지 못해 경화되는 시간차로 인해 발생한다. 외벽은 물론 실내 공간에도 숱하게 등장하는 노출 콘크리트 타설 부위 중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게 하필이면 다 보고 나가려는 순간 마주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념사진을 찍고 간다. 후광효과 때문일까. 전체적인 건축과 공간의 품질이 높아서인지 그 무늬는 심지어 벽화나 미술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하자 작품'이다.
올해 6월에 필자가 출간한 책 <건축가의 도시>의 첫 꼭지도 하필이면 같은 건축가 헤어초크 드 뮤론이 일본에 설계한 '미우미우 아오야마(MiuMiu Aoyama)'였다. 새로 쓰기 시작하는 <건축가의 도시: 서울>의 첫 글 또한 공교롭게도 같은 건축가의 작업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되니 제일 좋아하는 건축가를 그들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건 세계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니며 좋아하는 건축을 보기 위해 찾아가던 때의 그 떨림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억압되었던 몸과 마음에 다시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헤어초크 드 뮤론은 한 인터뷰에서 그들의 작업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형은 단순하게, 마감 재료는 단일하게, 작업은 정교하게'. 거기에 내가 한마디 더 붙이고 싶다. 감상은 애정을 담아, 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