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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Apr 07. 2020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 시부야에서 신주쿠까지

건축가의 도심산책

시부야에서 신주쿠까지

 외로운 출장지에서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저녁 약속이 생겼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내리 동창인 친구와 신주쿠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녀는 꽤 오래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도쿄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부터 출발 전부터 약속해놓은 일정이었지만 미술관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하던 차였다. 다행히 실력 좋은 설치 엔지니어들을 만난 덕분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예정대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도리어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생겨버린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개찰구도, 플랫폼도 참 작았던 기타시나가와역 전경


고민 끝에 1일권 표를 끊고 시나가와로 가는 상행 전철을 탔다.


 하라미술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기타시나가와에서 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 다시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시부야 역이었다. 가는 길이 너무 간단해 별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도쿄 지하철 환승의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간의 일본 여행에서 도쿄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지하철을 탈 일이 없거나, 혹은 지하철 시스템이 사뭇 단순했었다. 지난 2013년의 도쿄 출장에서는 그저 소장님이 표 사주면 사주는 대로 쫄래쫄래 따라다니기만 했기에 지하철 타는 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도쿄 지하철을 '혼자서' 탑승해본 것이다!


 기타시나가와 역 매표기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목적지에 Sibuya를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물론 이유를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JR 야마노테선의 역명을 게이큐 본선 매표기에서 찾으니 암만 다시 해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살짝 잔꾀를 부려보기로 했다.


 그래, 역명은 모르지만 1일권 같은걸 사면 별 문제없지 않을까?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역쯤 된다는 시나가와역 대합실 전경, 과연 교통의 요지 다운 규모다.


자, 이제 화살표를 따라 JR 야마노테선으로 환승만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난 그때까지도 저 사람들이 왜 표를 다시 사고 있는지 몰랐다.


 야심 차게 게이큐 1일권을 끊고 개찰한 나는 한 정거장 만에 시나가와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JR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는 개찰구에서 당연스럽게 내 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만 몰랐던 것 같지만 도쿄의 지하철은 운영하는 회사가 여럿이고 서로 다른 회사끼리는 환승이나 표 호환이 안된다. 쉽게 말해서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에서 코레일 운영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코레일 표를 별도로 다시 사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나는 단 한 정거장을 무려 5,000원이라는 1일권 가격을 주고 탄 착한(?) 손님이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부야 역


확실히 번화가답게 내가 묵던 호텔 앞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 유명한 시부야의 X자 횡단보도는 어디 있는 거지?


 시부야 역에 내리자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번화한 풍경에 금세 정신을 뺏겨버렸다. 이미 수중에서 나간 표값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다. 먼저 시부야로 온 까닭은 지난 출장에서 못 와봤기 때문이었고, 도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그 X자 모양의 횡단보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헌데 분명 옆 앞에 있는 큰 사거리 같은데 사진으로 보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신주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횡단보도는 역 바로 앞이 아니라 도겐자카 거리 쪽으로 한 블록 더 가야 있었다. 다행히 셋째 날 밤에 다시 한번 들러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무렵이 오후 네 시 정도였으니 약속시간인 여섯 시까지 한 두어 시간 정도를 걸었다. 아오야마-오모테산도를 거쳐 신주쿠까지 걸으며 마주친 것들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커다란 금속 상자를 살짝 열어둔 듯한 모습의 건물


#1 소바집과 미우미우


 건축가 헤르초크 드 뮤론이 설계한 아오야마의 미우미우(miumiu) 스토어. 사실 원래 방문 계획이 없었으나 우연히 아오야마를 들렀다가 마주쳤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물이다. 출장 오기 직전, 건축하는 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같이 도쿄 여행을 왔다가 이 미우미우 건물을 보겠다고 먼 거리를 되돌아 걸어왔다던 에피소드를 들었었다. 아오야마를 막 지나고 있을 즈음 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대체 어떤 건물이길래 일부러 되돌아 올 정도였던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위치도, 모양도 모른 채로 무작정 아오야마의 뒷골목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아오야마의 뒷골목을 무작정 걷다 보면...


... 갑자기 이런 금속 박스가 불쑥 튀어나온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열린 틈을 향해 걸어가 보면...


... 이렇게 살짝 열린 상자 뚜껑 같은 출입구가 나온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외형의 건물이라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난 출장 때에도 아오야마를 들러 이 건물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프라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건물인 걸로 보아 그 후에 지어진 건물 같았다. 확인해보니 2015년 완공작이다.


 미우미우라는 브랜드가 애초에 프라다에서 파생된 브랜드이니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한 건축가가 한 브랜드의 작업을 두 번 진행한 셈이다. 프라다 샵의 이미지가 크리스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투명한 유리와 새하얀 실내로 되어있는 반면, 미우미우는 불투명한 금속을 주 재료로 그것도 개구부가 거의 없이 닫혀 있는 대조적인 형상이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같은 건축가가 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러 장의 금속판은 맞댐 용접으로 접합되어있는데, 품질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금속판을 연마하여 마치 거울처럼 만들어놓은 동측면


반면 후면의 금속판에는 아무런 처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단연코 이 건물의 가장 압도적인 인상은 두께가 15m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금속 외장재다. 멀리서 보고는 당연히 오픈조인트 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거친 용접으로 접합되어있다. 예상컨데 본래 건축가의 의도대로라면 건물 전체를 단 한 장의 금속 피막으로 덮어야 했으나 제작, 운반 또는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또 다른 '금속'을 녹여 틈을 메우는 용접이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여러 장의 판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눈에 드러나는 용접의 흔적을 지운 방법이 제법 영리하다. 이면도로와 접해있는 건물의 동측 입면이 바로 그것인데 보행자의 눈높이에 해당하는 부분만 표면을 연마하여 거울처럼 보이게 해 놓았다. 마치 흥미로운 입면을 만들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 같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건물 옆을 가까이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단 한 장의 금속판처럼 인식하게 만들려는 재치로 보였다. 본래의 의도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효과를 얻어내는 건축가의 탁월함마저 느껴졌다.


외부와는 대조적인 내부의 금색 재료가 드러나는 부분, 사진 하단에 보면 접합부가 요철 형상을 따라 물결 형태로 되어있는 게 보인다.


내부의 금색 재료는 인테리어에까지 일관되게 사용되어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재료를 통한 내외부의 확실한 구분이다. 상대적으로 얇고/광택이 적고/차가운 색상의 외장재와는 달리 안쪽의 금색 요철 표면은 같은 금속임에도 두께에 볼륨이 있고/반짝거리며/따뜻한 색상으로 되어있다. 내부는 촬영 금지라 사진은 없으나 이 내외부를 구분하는 논리는 실내 공간에서도 연속성을 가지며 전개되고 있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내부 재료인 금색 엠보싱 금속재의 결합부는 요철의 단위 유닛을 의식하며 물결모양으로 되어있다. 재료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선의 형태인 건데 건축가는 이를 실내 요소에서도 재치 있게 반복하며 유연하게 공간을 전개해 나간다. 예컨대 매장의 바닥재인 카펫의 결합부 또한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단위를 가지는 물결모양으로 똑같이 되어있다.


전면 지붕의 하부 물받이(거터)는 배수 지점을 향해 은근한 경사가 져있다.


금속 체인을 따라 내려온 물은 조경으로 숨겨진 배수구로 나간다.


 마지막으로 주목한 건 빗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전면도로를 향해 은근한 경사를 가지는 지붕(또는 들려진 벽)의 하단에는 전체 폭과 동일한 빗물받이 거터가 결합되어있다. 열린 박스 형태를 완벽하게 구사하려면 없어야 맞는 부분이지만 기능상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을 게다. 건축가는 동일한 재료로 물받이를 만들되 그 바탕이 되는 지붕판과는 분리시켜 접합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물받이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전체 폭의 좌측에서 1/3 정도 되는 지점으로 보일 듯 말듯한 경사를 가지는 물받이의 최저점에는 금속 체인이 매달려 지상으로 물을 흘려보낸다. 체인이 바닥과 접속하는 부분에는 배수구가 있되 전면 화단의 식재로 이를 가려 자연스럽게 가렸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디테일이지만 전체적인 건물의 요소들과 잘 어우러지며 깔끔하게 처리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 이 소바 집도 헤르초크 선생님 작품인 겁니까?


 사실 소제목을 '소바집과 미우미우'로 붙인 까닭은 위 사진 때문이다. 아오야마로 들어오는 이면도로 초입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바집인데 지붕의 형상이 헤르초크의 샵과 너무나 닮아있어 한 장 담았다. 아마도 미우미우의 전면부 경사지붕의 은근한 각도 또한 일본적인 요소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서민음식인 소바와 고가의 명품, 오래된 목재와 차가운 금속, 도쿄의 한 음식 가게와 스위스 건축가의 플래그십 스토어. 그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닮은 두 건물을 발견하고는 아오야마를 빠져나오는 내내 킥킥거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당신이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혼자 웃음을 참고 있는 사람을 마주친다면 아마 이런 걸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건축가일지도 모른다. 많은 배려와 관심을 가져주자.




미우미우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프라다 스토어


6년 전의 나는 왜 저 문을 들어가지 못했을까...


#2 프라다의 화장실


 여기까지 왔으니 바로 앞에 있는 프라다 스토어를 안 보고 갈 수가 없었다. 사실은 지난번에도 여길 왔었지만 안에 들어가 보질 못하고 앞에 앉아만 있다가 돌아갔다. 글쎄,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제 막 대학생 티를 벗은 신입사원 시절, 어딘가 후줄군해보이는 스스로 모습이 저 안의 공간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다. 물론 다시 찾아온 지금은 더 이상 그럴 필요 없다. 딱히 그때보다 더 귀티가 난다거나 구매력이 있어 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저길 들어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난 절대 화장실을 쓰려고 이 건물에 들어온 게 아니다... 자연스러웠어


창밖으로 '용기 없는 신입사원이 앉아 망설이던 벤치'가 보인다.


마침내 목적 달성, 참고로 지하 1층에 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자연스럽게 쇼핑을 하는 척(그러나 나 빼곤 모두 내가 답사 왔다는 걸 알아챘겠지만) 화장실을 빠르게 스캔했다. 하지만 모든 층을 다 돌아봐도 당최 찾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물어봤다. 알고 보니 화장실은 지하 1층에만 있었다.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고, 용기 없던 지난날의 미련도 풀었으니 속이 후련했다.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애플 스토어


건물 전체가 유리와 금속으로 되어있다. 사진에 보이는 중앙계단의 바닥 또한 유리다.


#3 애플스토어의 플로어힌지


 다시 대로를 건너와 오모테산도로 넘어왔다. 이 곳 역시 아오야마와 비슷하게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즐비한 번화가다. 지난번 답사 때 꽤 많은 건물들을 들렀었지만 그 사이 애플스토어가 새로 생겼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이곳은 서울로 치면 청담동 명품거리와 비슷한 곳임에도 확연한 분위기 차이가 난다. 아무래도 보행자 중심 거리이기 때문 같았다. 글을 쓰기 얼마 전 혼자서 청담동을 걸어봤었는데 거리에는 보행자가 눈길을 둘 만한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억 소리 나는 고급 차들이 빠른 속도로 골목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위협마저 느낄 정도였다. 같은 명품샵임에도 청담동보다는 오모테산도의 그것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기보다는 어떤 대상을 가정하여 설계했는가의 차이 같았다.


유리와 철을 이용한 다양한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으나, 의외로 투박하다.


중앙계단의 곡면 유리 난간끼리 만나는 부분


전면부 유리 멀리언은 별이 다섯 개, 아니 유리가 다섯 겹!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은 유리 디테일이나  전 세계 애플스토어 대부분이 이와 같이 금속과 유리를 이용한 투명한 공간감을 내세우고 있어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다만 실제 구현된 것을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구석구석 열심히 살펴보긴 했다. 구조마저 유리로 해결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여러 장을 겹쳐 쓰고 있었는데 특히나 전면의 유리 멀리언은 무려 다섯 장을 겹쳐 놓은 형상이었다. 그럼에도 투명도가 생각보다 꽤 좋은 편이라 느낌은 잘 구현되긴 했으나 좀 투박해 보이긴 했다. 아무래도 유리는 깨질 듯 말 듯 한 그 위태로운 여리함에서 극도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일까?


플로어 힌지를 보다가 문득, 이 건축을 위해 땀깨나 흘렸을 모든 사람들의 노고가 떠올랐다.


 질릴 정도로 유리, 유리, 유리뿐인 건물 전체에서 의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주출입구 유리문을 잡고 있는 플로어힌지다. 보통 많이 쓰는 방법대로 하면 힌지를 고정하기 위한 철판이 바닥에 큼지막하게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힌지를 고정하는 판 자체도 작을뿐더러 동일한 두께로 금속 문턱을 연장하여 덧대 힌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으나 저걸 구현하기까지 설계자나 감리자, 시공자 모두 꽤 고생했을게 분명하다. 하루에 이 문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 중에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설사 한 명도 없다 해도 나 하나만큼은 그 노고를 꼭 알아주고 싶어 사진으로 남겼다.




콜드 브루에 사탕수수 설탕을 넣어 만든 라떼,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다.


#4 블루보틀의 향기


 최근 성수동에 한국 1호점이 생기면서 꽤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블루보틀이 아오야마에도 있다. 출장에서는 미술관 임무가 끝나고 발주처와 답사를 다니며 넷째 날에 잠깐 들렀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16년 뉴욕 답사에서 브라이언트 공원 바로 앞에 있는 블루보틀에 들렀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는 뉴욕에서 요즘 꽤 뜨는 곳이라고 소개했었는데, 어느새 일본을 거쳐 한국에까지 점포를 확장한 것이다.


마당의 녹음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삐죽 튀어나온 철물은 가방걸이다.


테라스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다. 사람들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알아서 자리를 잡고 선다.


  아오야마의 뒷골목 작은 주택가에 위치한 곳이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분명 지도를 보고 찾아갔지만 커다란 간판 같은 게 없어 그냥 지나칠뻔한 찰나, 엄청나게 강력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 향이 코를 찔렀다. 그렇게 향기에 취하듯 끌려 작은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들어서자 실내를 가득 채운 자욱한 커피 향 사이로 힙스터들의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테라스와 통하는 문은 열려있고, 거기엔 문턱도, 문틀도 없다.


마치 서버와 손님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는 듯한 느낌, 블루보틀 아오야마의 특징이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아직 평일 아침 열 시. 개장하자마자 찾아왔음에도 실내는 만석이요 카운터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마당을 향한 외부 테라스를 제외하고는 손님들이 앉는 실내 공간은 한국의 여느 커피숍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특별한 것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주방 쪽이었다. 확연하게 높이가 낮은 작업대를 놓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동작 하나까지 훤히 내다보인다. 오픈 주방의 개념을 뛰어넘어 주방과 객석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여 마치 한 공간에서 내 옆자리 친구들이 나를 위해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완벽하게 열려있는 주방과 마당을 향해 개방된 테라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흐름. 작은 골목길에서 눈보다 먼저 코를 통해 이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단지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질 좋은 원두를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너무 구경을 열심히 하다 보니 약속시간이 촉박해졌다.


이제 저 건널목만 건너면 신주쿠 역인데...


... 열 대가 넘게 지나가도 당최 열릴 생각을 안 한다. 아, 포기하고 육교로 건널까


 #5 신주쿠의 철도건널목


 시부야에서 신주쿠까지 한 4km 조금 못되니 한 시간이면 걷겠지 했었다. 그게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 보니 두 배 넘게 걸려 버렸다. 여섯 시 약속시간에 간당간당하게 신주쿠 역 앞까지 왔는데 마지막 철도건널목 앞에서 발이 묶였다.


 처음엔 번화가 한가운데 철도건널목이 있는 게 신기하여 사진이라도 찍을 생각으로 육교 대신 차단기 앞에 섰다. 한 두어 대 지나가면 금방 열릴 줄 알았는데 열 대가 넘어가도 차단기는 꿈쩍도 안 했다. 그제야 간과한 사실이 떠올랐다. 신주쿠역은 무려 다섯 개 회사, 아홉 개 노선이 지나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있는 일 이용객수 세계 최대의 역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 시간은 퇴근이 가까운 평일 저녁 여섯 시. 쉴 틈 없이 지나가는 열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육교를 써도 됐지만 기다린 게 아까워서 끝까지 서 있었다. 도쿄의 철도사정에 문외한인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몸으로 부딪혀가며 많이도 배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즐거운 저녁시간을


 마침내 친구와 조우했다.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보라는 말에 나는 주저 없이 '야키토리(꼬치구이)'를 택했다. 생맥주 한 잔을 놓고 오랜만에 서로 물어보는 근황 이야기부터 시작된 대화는 이내 위에서 글로 쭉 써내려 온 도쿄의 건축과 디자인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건축과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는 둘이 만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움 가득한 짧은 만남을 끝으로 나는 신주쿠 역에서 다시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호텔이 있는 신반바 역으로 돌아왔다. 물론, 시나가와에서 기타시나가와까지 한 정거장만큼은 아침에 끊어놓았던 1일권 남은 표로 해결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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