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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빈 Mar 26. 2020

브라질에 집 지으러 왔수다

 주브라질 한국문화원 - 2019.0731.1000

 이번 브라질 출장길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전 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봄 일본으로의 출장이 모형을 들고 가 설치하는 나름 단순한 작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엔 어찌 됐든 간에 '집'을 '지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역만리 브라질까지 와 대나무로 집을 짓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풋-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이번 출장은 그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하나같이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가로 1.8m, 세로 3m, 높이 6.5m의 2개 층 규모의 대나무 건축물


 이것이 이번의 내가 완수해야 하는 '출장의 목적'이다. 이 요상하게 생긴 건축물은 이미 서울과 도쿄에서 전시되었던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된 것으로 당시 모형과 영상으로 선보였던 인간과 새를 위한 건축물을 1:1 실제 크기로 만든 것이다. 훗날 비무장지대 내에 지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건축물인 만큼 자연 유래 재료인 대나무와 노끈 만으로 건축하도록 한 원칙도 그대로 구현하였다. 다만 실내에 설치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총 5개 층 규모 중에서 2층과 3층 만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만들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이 건축물을 지구 반대편에 똑같이 세우는 것!


 보통의 '현장'이라는 게 서울만 살짝 벗어나도 내 맘대로 잘 안되고 배로 힘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여긴 지구 정반대편의 브라질이란 말이다. 고생길이 열릴 건 안 봐도 뻔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똑같은 건축물을 이미 지난 서울 전시에서 지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난생처음으로 계획해본 대나무 건축의 난해함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수 없이 도면 수정을 했지만 브라질이라는 낯선 환경하에 과연 이 계획안이 얼마나 완벽하게 지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상파울루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내 의문이었다. 


오는 8월부터 상파울루 중심가로 옮겨온 한국문화원, 이번 전시가 곧 개관전이기도 하다.


문화원 1층의 전시공간, 하얗게 새로 칠해진 벽들이 전시로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대나무 건축물은 리셉션 앞, 로비 정중앙에 세워기로 되어있었다.


 30시간의 긴 비행에도 다행히 내 몸은 건사했다. 저녁 늦게 호텔로 들어와 짐을 풀고는 곧바로 골아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네 명의 작업자들을 지휘하여 나흘 안에 설치 작업을 끝내야만 한다. 단 하루의 여유도 없었다. 작업을 종료함과 동시에 바로 다음날 대대적인 개관식 행사가 준비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결코 그 누구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나의 귀국 편 비행기는 작업을 마치기로 예정된 당일 저녁에 출발하기로 되어있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내려왔다. 우선은 아침을 든든히 먹어두기로 했다. 뭔가 불안하고 예측이 잘 안될 때는 일단 배부터 든든히 채워두는 게 경험상 가장 괜찮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일일이 닦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장소인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건 한국에서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준비했던 대나무의 상태였다. 지어질 건축물은 주요 구조부터 바닥, 외장, 계단까지 모든 요소가 대나무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재료보다도 대나무의 품질과 의장성이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난 서울에서의 작업에서는 담양에서 막 베온 생물 대나무를 직배송받아 썼었다


 준비된 대나무가 문화원 앞마당에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세히 보면 볼수록 한국 대나무보다 더 조직도 치밀하고 묵직한 게 건축용으로는 더 좋을 것 같았다. 의외로 아마존 근처에서 대나무가 잘 자란다는데 혹시 이것들도 거기서 온 걸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


 작업자 한 분이 먼저 나와 수건으로 정성스레 표면을 닦고 계셨다. 첫인상이 좋았다. 미리 시키지 않은 일임에도 실내에 들어갈 전시물이니 으레 깨끗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아니 열을 확신하고 싶었다. 본인이 하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작업자라면 믿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나흘간 호흡을 맞췄던, '우리 팀'이다.


 뒤이어 나머지 세 분이 도착해 비로소 작업자 전원이 모였다. 그중 한 분은 나와 비슷한 동양인 인상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계 브라질인이고 일전에 일본문화원의 대나무 작업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철사나 노끈을 이용해서 기다란 부재를 강하게 묶어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서울에서의 작업 때는 '비계공'을 섭외하여 진행했었다. 대나무 건축이라는 게 딱히 정형화된 공종이 아니다 보니 이번에도 작업자를 섭외하는 게 특히나 까다롭고 난해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나무 작업 유경험자를 수소문 끝에 찾은 모양이었다. 출발이 좋았다. Obrigado!


통역 또한 중요한 작업의 일부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하고 작업자들은 영어를 못한다. 아무리 건축이 도면으로 의사소통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 한마디가 때로는 백 장의 도면보다 나을 때도 있다.


 작업 내내 옆에서 통역을 도와줄 담당자가 도착했다. 아직 대학생인 그는, 브라질에서 오래 살아 한국어와 포르투갈어를 둘 다 자유롭게 구사했다. 그간의 현장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단순한 통역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일지라도 설계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반드시 오역이 생기고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먼저 한국어로 통역자에게 설계의도와 작업 진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한 후에 비로소 작업자들과 다시 한번 회의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순서와 방법에 확신이 있다.


 물론 나의 지시를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구현해낼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장을 통솔해야 하는 입장에서 작업자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회의를 마치고 문화원을 나왔다. 오늘 하루의 작업은 저녁 시간 이후에 다시 와 확인하기로 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현장을 통솔할 때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칙이다.


가지런히 쌓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대나무들


기초 바닥과 주 기둥까지는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혔다.


 해가 저물어 다시 돌아와 본 현장의 작업은 건물의 구조가 되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기초 바닥과 위치 잡기까지 진행되어있었다. 각도가 조금 틀어진 것만 바로잡아주고는 첫날부터 늦은 시간까지 고생한 작업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격려를 건넸다. 아마 오늘 하루는 치수대로 부재를 가공하고 준비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리라. 내일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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