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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Apr 28. 2020

고흐가 사랑한 수도원

생 레미의  정신병원, 혹은 생폴 드 모졸 수도원

 별안간 닭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어슴푸레 밝아오던 새벽의 고요함도 덩달아 깨져버렸다. 다시 누워봐도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고 눈은 말똥하다. 별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옆자리의 아내는 아직 곤히 잠들어있다. 에라 모르겠다. 작은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섰다.


아침 식사 전까진 돌아오겠어요


 평소 여행지에서 좀처럼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는 편이지만 아침산책이라는 걸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목적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한 곳을 정했다. '생폴 드 모졸 수도원', 사람들에게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했던 '생 레미의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정식으로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사전 답사 겸 미리 가보기로 했다.


고흐도 이 길을 걸었을까...

 수도원을 향해 걷는 길, 사각사각 길 위의 모래알을 밟아내는 소리가 적막을 밀어낸다. 불현듯 네덜란드 출생인 고흐가 어쩌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까지 오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을 도로 꺼내어 들었다.


 반 고흐는 1888년부터 약 1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생 레미에 머무는 동안 무려 100점이 넘는 드로잉과 150점 이상의 회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개중에는 <별이 빛나는 밤>처럼 잘 알려진 작품들도 더러 있다. 대도시에 실증을 느끼고 파리에서 아를로 내려온 고흐는 정신이 혼탁해져 급기야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고 만다. 그는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바로 다음 해인 1890년 오베르에서 삶을 마감했다.


빈센트 반 고흐, <산과 초원이 있는 풍경>, 캔버스에 유채, 1889
수도원 앞에 서면 보이는 풍경, 얼핏 봐도 그림 속에 그 산봉우리가 맞다!


 멀리 남쪽으로 익숙한 실루엣의 봉우리가 보인다. 고흐의 풍경화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바로 그 산이다. 숙소 근처 주택가의 골목길은 좁고 복잡했지만 산봉우리를 향해 계속 걷다 보니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으로 하나 둘 집들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내 올리브와 사이프러스가 우거진 널따란 평원이 나타났다. 모두 고흐의 캔버스 위에 심심찮게 등장하던 피사체들이다. 생 레미의 풍경은 고흐의 그림과 꼭 닮은 모양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구글 지도를 참조하니 저 들판 너머로는 로마시대 유적지가 있는 모양이다. 도시를 등지고 남쪽의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역사의 흔적을 마주하는 곳, 바로 그곳에 '생폴 드 모졸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어쩐지 더 맛있다. 출근의 압박이 없어서 일까?


 짧은 산책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집을 나설 땐 보지 못했던 파란 파라솔과 식탁이 수영장 한 편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선 매일같이 게스트에게 직접 아침식사를 차려주신다고 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아내는 내가 밖에 나갔다 온 줄도 모르는 눈치다. 아무래도 내 쪽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먹음직스러웠다. 바게트와 크루아상, 햄과 치즈, 그리고 신선한 과일과 수제 잼까지 갖춘 나름 프랑스 가정식 아침식사였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수면에 비친 아침햇살을 곁들여 한 입 크게 빵을 베어 무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단 하루만 머물고 가기엔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멋진 숙소였다. 하지만 스스로 짠 일정이 나를 재촉하는 것을 누굴 탓하랴. 덕분에 행복했었다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대문을 나섰다.


반 고흐, <생 레미 정신병원의 뜰>, 캔버스에 유채, 1889
그림 속 장소와 꼭 닮은 곳에 차를 세웠다.


 아침 산책 때 보았던 들판 한쪽으로 차를 세웠다.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지만 한산했던 좀 전과는 달리 관광객들이 제법 있었다. 한 사람당 6유로씩 두 장의 입장권을 샀다. 프랑스어로 '생폴 수도원(cloître)'이라고 적힌 입장권에는 '반 고흐'라는 단어는 있어도 '정신병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재미있는 건 아직까지도 이곳은 정신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정식 '병원'이라는 사실이다. 병원 영역이 관광객 동선과 분리되어있기는 했지만 안뜰 너머로 환자들의 모습이나 널어놓은 옷가지 등을 볼 수 있었다.


입구의 간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샀다.
관광객은 우측으로!
고흐의 <붓꽃>, 정원 곳곳에 이런 식으로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정성껏 관리한듯한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본 건물로 들어섰다. 의외로 정신병원이라는 선입견을 떼어놓으면 그저 평범하고 오래된 수도원으로 보일 그뿐이었다. '격리'나 '보호' 같은 단어보다는 '치유'와 '회복'이 먼저 연상되는 편안하고 차분한 풍경이었다.


 정원 곳곳에는 고흐가 이곳에서 그린 꽃그림들이 걸려있었다.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그림 속 식물들은 하나같이 여리고 아름다웠다.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정신이 쇠약해진 한 화가가 정신병원에서 그린 것이라고 하기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고흐는 주변으로부터 격리되고서야 비로소 평범하고 작은 아름다움에 다시금 천착하기 시작했던 것일까. '수도원'과 '정신병원'의 묘한 동거만큼이나 역설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담하고도 정갈했던 수도원의 중정
천년이 넘는 시간의 흔적이 구석구석 고스란히 묻어있다.
회랑을 향해 쏟아지는 빛, 고흐도 이 빛을 따라 이곳을 걸었으리라.


 라 투레트를 먼저 보고 와서였을까. 통석을 깎아 만든 회랑의 육중한 기둥과 벽체들이 주는 인상이 더욱 강력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날따라 강렬했던 햇살은 거친 돌 표면을 훑어내리며 그러한 물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구조체와 마감재의 구분도 없고 안과 밖의 경계도 모호한 이 오래된 수도원의 회랑은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공간을 유영하듯 음미하게끔 만든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날것 그대로의 건축 앞에서 느끼는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은 때때로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다. 인간이여 부디 자만하지 말지어다...


고흐의 방에 걸린 자화상
방 안에는 소박한 가구 몇 점이 전부다.
빈센트 반 고흐, <생 레미의 고흐 스튜디오 창문>, 종이에 과슈, 수채, 분필, 1889


 생폴 드 모졸을 찾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2층에 마련된 '고흐의 방'이다. 작은 창이 하나 있는 아담한 공간 안에는 침대와 욕조, 의자 두 개 정도가 다소곳이 놓여있을 뿐이다. 관람객들은 말없이 방 구석구석을 살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천재 화가의 삶과 그 흔적들을 느끼고 있었다.


 고흐가 이 곳에 입원하던 날, 동생 테오는 1층의 작업실과 2층의 침실을 함께 주문했다. 고흐의 작품 중에는 생 레미의 작업실을 그린 것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침실의 모습은 확인할 길이 없다. 무심한 듯 놓인 가구들 사이 빈 공간과 벽에 걸린 그의 자화상을 번갈아 보아 가며 나름의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볼 수밖에. 고흐가 작은 창 너머로 바라보았을 생 레미의 밤하늘은 또 어땠을까. 어젯밤 숙소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의 쏟아질듯한 별들과 그림 풍경을 잠시 눈을 감고 살포시 겹치어 본다.


고흐도 이 창 너머로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테지...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1889


 다시 차에 올랐다. 그새 높이 떠오른 태양이 차 안을 온통 덥혀놓은 탓에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다음 목적지인 '세낭크 수도원' 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아침에 산책하며 지나쳤던 좁은 골목길과 집들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나오니 이내 사이프러스 가로수 울창한 한적한 대로를 타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니스를 향해 동쪽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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