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강제 북송 그리고 폭행
주의: 이 글은 폭력적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면 슬픔이 몰려 온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보면 마음이 울적해져 온다. 회색빛 흐린 날을 당연히 우울한 날씨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기괴하게 생각한다.
늦가을이다.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진다.
우리 집 건너편에는 중국계 미국인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다. 그 할머니 집 앞에는 한 그루 감나무가 있다. 제법 색깔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곧 수확할 때가 된 듯 싶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감나무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할머니는 한 해의 성과를 그 감나무 한 그루로 정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감나무의 무성하게 달린 감이 곧 할머니의 기력이 아니겠는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내 정수리 위로 저 감이 떨어지면 아플까?’ 그리고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라고 혼자서 씩 웃으며 마음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봐 뒤를 돌아본다.
20년 전 일어났던 사건을 지금 꺼내보려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던 2003년 여름 어느 날. 그때 날씨도 오늘처럼 맑고 푸르렀다. 십여 명의 탈북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조선족 목사가 운영하는 작은 교회에 숨어 지냈다. 낯선 중국 땅에서 구걸하던 삶을 청산할 수 있어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탈북자들 무리에서 영원히 안전하게 살 줄만 알았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신이 죽기 전까지는. 신이 죽던 날, 나는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다.
신의 전지전능이 내 손목에 닿기 전 중국 공안의 전지전능의 수갑이 내 손목에 먼저 감쌌다. 한여름의 수갑은 내 손목에 닿는 순간 서늘함을 안겨주었고 두려움이 내 심장에 키스를 하며 그 키스가 너무 각렬하여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검은 제복에 은색 견장을 단 중국 공안이 십대 소년 양팔에 은팔찌를 선사한다. 따다닥-따다닥 은팔찌 톱니가 마지막 칸에 도달했을 때 딸깍 하며 멈췄다. 공안이 당황해 한다. 은팔찌를 끝까지 조였지만 내 팔목에서 헛돌며 주먹이 빠진다. 공안은 나의 양팔을 뒤로 묶고 포승줄로 묶는다. 다른 탈북자들은 모두 은팔찌를 찼는데 나만 포승줄이다. 특별 대우인가?
‘강제 북송’이 나를 반긴다. 20여 명을 태운 버스가 천천히 중국 교두다리를 건넌다. 그것도 2대, 3대, 아마 3대의 버스였을 것이다. 그날 강제 북송당한 탈북민들은 족히 50명은 넘었을 것이다. 내가 탄 버스 안은 공포의 무게로 머리를 떨구고 있는 탈북자들이 내뿜고 있는 어둠의 공기만 있었다. 에어컨도 틀지 않은 무더운 여름 버스 안은 공포의 냄새로 가득했다. 그리고 버스 안은 고요했다. 가끔씩 맞은편 의자에 머리를 박고 훌쩍이는 탈북 여성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중국 공안이 맞은편에서 동료들과 깔깔댄다. 손에 들고 있던 전기 고무막대기를 휘두르며 담배를 피운다. 동료를 한 번, 탈북자들을 한 번 번갈아가며 희롱의 눈빛을 발사한다. 중국 공안이 웃을 때마다 니코틴으로 누렇게 바랜 치아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의 신보다 더 전지전능한 눈의 보이는 저 중국 공안에게 손과 발을 싹싹 빌면 풀어주지 않을까?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너무 살고 싶어서 죽고 싶다. 몇 분 후면 내 피부에 상처를 입힐 그 무엇으로부터, 그래서 내 피부에 닿을 온갖 학대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내 영혼을 팔겠습니다.
바퀴가 아스팔트를 핥으며 서서히 굴러간다.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난다. 볶음 요리 냄새인가? 창문 건너편으로 아저씨들이 웃통을 까고 길바닥에 앉아 마작을 노는 모습이 보인다. 깎은 과일을 가득 실은 삼륜 자전거를 아저씨가 힘들게 끌며 버스와 경쟁을 한다. 껍질이 벗겨진 노란 파인애플이 싱그럽고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곧 나의 정신이 죽을 것인데 자꾸만 그 냄새에 현혹돼 버린다. 꽈배기 튀기는 냄새며 계란이 특별 향신로에 푹 삶아지는 한약 냄새가 물씬 풍겨 창문으로 들어온다. 버스 밖은 시끄러운 잡음을 내며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분주한 사람들 틈 사이로 평온한 공기들이 순환했으며 비둘기들이 평화로이 음식 찌꺼기를 쪼아댄다. 저기 버스 밖은 평화가 있었고 내가 있는 이곳은 공포가 있었다. 저 사람들 중에 나를 구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방독면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의 앞을 막고 나를 구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한 쌍의 부부가 내가 타고 있는 버스 위로 올라와 나를 아들이라 말하며 구출해 줬으면 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께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나를 악에서 구하소서.”
신은 평화로울 때에는 옆에 있었고, 불행할 때에는 옆에 없었다. 구원을 바랄 때는 등을 돌렸고, 신의 은총이 필요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찾아왔다.
덜커덩. 버스가 조중 경계선을 밟고 지나간다. 중국 경계선에서 북한 경계선으로 넘어갈 때 미래의 폭력을 예감한다. 나를 실은 버스가 북한을 향해 점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요동친다. 숨이 가빠지며 곧 졸도할 것만 같다. “500미터 앞에 보위부가 있습니다. 300미터 앞에 보위부가 있습니다. 100미터 앞에 보위부가 있습니다.” ‘이런 젠장. 이젠 죽었구나!’ 속으로 생각한다. 보위원 한 명이 멈춰 선 버스로 다가온다. 중국 공안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공안으로부터 서류 봉투를 건네받는다. 그 서류 봉투 안에는 공안에게 조사받은 정보들이 들어가 있다. 공안에게 잡히기 전까지 중국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교회로 갔는지, 한국인들을 만났는지 등의 정보들이 들어갔다.
북한 땅을 밟았지만 중국 정부 소유인 버스에 있는 나는 아직 중국 공안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공안이 버스에 탄 탈북자들에게 내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잔뜩 겁에 질린 탈북자들은 휘청대며 버스에서 하나 둘 내린다. 내리는 순서대로 북한 보위원이 1열, 2열, 3열로 세워 둔다. 공안이 나란히 서 있는 탈북자들에게 다가와 손에 묶여져 있는 수갑을 푼다. 그 무게가 족히 몇십 킬로그램이다.
“대가리 숙여!” 중국 공안이 떠나자 보위원이 바로 돌변한다. 보위원은 50여 명의 탈북자들의 오른쪽 신발끈을 풀게 한다. 그 신발끈으로 탈북자 한 쌍씩 묶는다. 그리고 딱딱한 땅바닥에 무릎을 꿇게 한다. 무릎 꿇인 탈북자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야! 이쌍 간나새끼, 바른 대로 말 안하니? 썩어(죽다)지고 싶어?” 앞줄에 서 있던 탈북자 한 쌍이 취조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보위원의 고성이 들리고, 두려움의 떨고 있는 탈북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뻑! 빡! 탁!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탈북자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들려온다. “보위원 동지,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도강(탈북)하지 않겠습니다.”
탈북자들이 취조실로 불려갈 때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나올 때는 모두들 피를 흘려 있었다. 취조실로 걸어 들어갔다가 어떤 사람들은 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속이 메슥거려 왔다. 심장이 빨리 뛸수록 혈관은 더욱 열심히 피를 나르며 나의 정신을 더욱 맑게 했다. 취조실로 들어가기 전 그렇게 이뻤던 이름 모를 누나는 나올 때는 한낱 볼품없는 이름 모를 누나가 되어 나왔다. 살기 위한 선택치곤 그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단지 삶을 선택하여 죽는 길이 아닌 살길을 선택한 것뿐인 탈북자들에게 ‘북한 공무원 동무들, 너무한 거 아니오?’
탈북자들은 보위원에게 1차 취조를 받은 후 또 다른 곳으로 이관됐다. 회색 시멘트칠한 방구석은 퀘퀘한 냄새를 풍겼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중앙 복도를 훑고 지나간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여성 보위원이 자신의 코끝을 가린다. 심장이 구멍 날듯 섬뜩한 눈빛을 쏘며 “어휴, 더러운 냄새!” 하며 탈북자들의 옷깃이 닿을까 멀찍이 벽에 붙어 지나간다. 그 모습이 가증스럽다. 우리 탈북자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자본주의 냄새요, 자유의 냄새이다. 그 보위원 여성에게서 나는 묵은때 냄새보다 더 향긋하고 상쾌한 냄새였다. 하긴 그 보위원 여성은 샴푸 냄새가 익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보위원 여성이 우리 탈북자들을 커다란 방으로 짐짝 취급하며 마구 쑤셔 넣었다. 그리고 누리끼리한 군복을 입은 보위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손에 하얀 위생 장갑을 끼고 있었다. 보위원들은 50여 명의 탈북자들을 좌우로 나눴다. “남자들 왼쪽으로!” 남자보위원이 외쳤다. “여자들은 오른쪽으로!” 여자 보위원이 외쳤다. 좌우로 나뉜 탈북자들은 그 곳에서 신체적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좌우로 나뉜 탈북자들은 모두들 탈의를 했다. 속옷까지 벗겨졌다. 여성들은 극도로 수치심을 느끼며 망설였다. “빨리 안 벗어? 빨리 벗는다. 실시!” 여자 보위원이 짜증내며 소리를 친다. 탈북 여성들이 계속해서 망설이자 보위원은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로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머리를 내리친다. 몽둥이에 맞은 탈북 여성은 순간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한다. 보위원이 다시 막대기가 들려 있는 손을 들자 움찔하던 탈북 여성들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벗겨진 탈북 여성들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왼손으로는 부끄러움을 가렸다. 다시 한번 보위원의 막대기가 휘둘렸다. 여성들의 부끄러움이 풀어지며 두 개의 풍성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생명의 근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속옷 하나 거치지 않는 우리 탈북자들은 그저 고깃덩어리였다. 보위원들은 벗은 우리를 번갈아 가며 아래위를 훑는다. 서로 마주보며 비웃는다. 그들의 눈알이 움직일 때마다 탈북 여성들의 몸은 움츠려졌고 그들이 비웃을 때마다 우리 탈북자들은 영혼이 죽어갔다.
“얼마나 처먹었으면 돼지새끼처럼 살이 뒤룩뒤룩 찐거야! 왜 뙈놈들이랑 붙어먹으니까 좋던?” 젊은 탈북 여성들의 고운 피부를 보고 여성 보위원이 시기를 한다. “수령님의 은덕을 배신하고 잘도 도망쳐 살았겠다. 더러운 것들!” 보위원들은 우리 탈북자들을 구더기 보듯 역겨워했다. 보위원들은 나체 상태인 탈북자들을 양손으로 깍지 끼게 한 후 머리 위로 올리게 했다. 그리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30번을 반복하게 했다. 보위원들은 탈북 여성들 자궁에서 돈이 나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렸고, 항문에서 돈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을 떼지 못했다. 보위원들은 우리 탈북자들이 황금알을 낳아 주기를 바랐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한 명씩 밖으로 불러내 보위원들 앞에서 변을 보게 했다. 보위원들이 원하는 것처럼 탈북자들의 신체에서는 돈이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중국 공안에게 붙잡힌 경우는 돈을 준비할 틈도 없이 잡히게 된다. 어쩌다 두세 명 탈북자들에게서 돈이 나오는데 그 탈북자들은 항상 돈을 준비하는 경우이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한 삶 속에서 준비성이 철저한 탈북자들은 중국 돈을 랩으로 싸서 삼키거나 혹은 자궁 속에 숨길 수 있는 크기로 돌돌 말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곤 했다.
적나라하게 벗은 여성들 속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 두 손으로 배를 꼭 잡고 있다. 20대 후반 젊은 임신부이다. “나라를 배반하고 도망친 년이 남의 씨까지 받아왔어? 왜, 중국 뙈놈 밑에 깔려 있으니까 좋던?” 보위원이 임신부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보위원은 악마가 되어 더욱 그 임산부를 괴롭힌다.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로 임신부의 머리를 가격한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구 휘두른다. 보위원 손에 머리채를 빼앗긴 여성은 보위원이 휘두르는 대로 머리가 마구 휘청되더니 균형을 잃고 짐짝처럼 저 멀리 내팽겨쳐지고 만다. 쓰러진 여성을 향해 소리 지르며 빨리 일어나라고 명령한다.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그 보위원의 허공에 대고 하는 헛짓거리가 얼마나 두려웠던지 여성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위원 앞으로 다가선다. 보위원은 그 임신부에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추가적으로 몇십 번 더 시킨다. 음흉한 눈빛을 가진 보위원은 그 임신부의 행동을 관찰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마로 탈바꿈되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탈북자들은 보위원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나체로 된 채 요지부동하고 있었다.
삶이 힘들어지고 괴로울수록 욕구는 강해진다. 곧 죽을 것 같은 굶주림 속에서도 살고 싶은 갈망은 더욱 깊어진다. 맞을수록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마음에는 분노의 불씨가 점점 커져 더욱 원망하게 된다. 원망의 대상이 생기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 모든 탈북자들 마음속에는 분노의 불씨가 적어도 한두 개씩 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북한 정부를 향한 분노가 깊어졌다. 그 독재정권 정부 속에서 녹봉을 받아 먹는 보위원들, 안전원들, 군인들... 얼마나 악마들인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나쁜 인간들은 보위원들이란 집단들이다. 탈북자들을 향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지만 보위원들은 일부로 그렇게 이유없는 폭력을 가한다.
보위부 출신이었던 탈북자들이 가끔 방송에 나온다. 그리고 본인들은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을 한다. 다른 보위원들과 다르게 탈북자들 혹은 범죄자들을 배려하고 특별히 대우해 줬다고 말을 한다. 그 말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누구의 요구 혹은 나쁜 보위원 출신을 색출하기 위해 심문한 것도 아닌데 굳이 방송에 나와서 그렇게 먼저 말하는 사람들은 관심종자들이다. 성향이나 특성을 보았을 때 그런 부류의 보위원들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이유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장본인들이었다.
이 모든 사건들은 20년 전 북한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두려움의 벌벌 떨고 있던 탈북 여성들의 삶은 그 후와 전으로 나뉘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치심과 분노로 더 이상 탈북하지 않고 북한에 남아 삶을 계속 산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분노로 탈북하여 중국에 꼭꼭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 혹은 자유의 땅 남한을 선택하여 지난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고 있는 탈북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에게 나쁜 악행을 저지른 보위원들은 지옥도 아까우니 지옥행 열쇠를 잃어버려 지옥에서조차 버림받아 무한 반복행 어둠으로 떨어지길. 세상에는 백 퍼센트의 좋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백 퍼센트 나쁜 사람이 있다. 누구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누구든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흐린 날과 맑은 날이 있듯이 기분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와 탈북자들은 나쁜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은 세상으로 끌려갔고, 나쁜 행동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인간들 틈에서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