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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키 May 22. 2020

벨 에포크, 그리고 오디세이

취중 일기

문득 한탄만 하기엔 아직 내가 젊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글을 쓴다.


고기를 먹던 회식자리는 화기애애했지만 결국 슬프고 씁쓸하게 끝났다. 하루하루를 전속력으로 달려온 사람들의 노고가 인정받지 못했던 상황은 결국 일방적 통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너무나도 적은 예산 제선 안에서의 제한적인 활동만을 허락했던 시스템은 결국 가능성을 닫고 모든 문제를 예산절감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외주화'하는, 가장 단순하고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일말의 가능성마저 닫는 방식의 해법을 택했다. 그 결론을 모두가 알고 있는 채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상황에, 밝아지려고 한들 밝아질 수 있을 리가. 그렇기에 소주를 섞은 맥주는 달았고, 알코올에 취약한 나는 시뻘게진 얼굴로 할 말 없는 상황 속에서 그저 웃고만 있었다.


이 산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이 흐름과 조류 자체가 변할 것이란 생각이 잘 들지 않게 된지도 어연 일 년이 넘게 지났다. 모두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한 위로를 건넬 때,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상태가 곧 죽음과도 같다는 얘기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것도 여러 번이다. 벌써 십 년 가까이 지난,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가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접어들었다는 그 교과서적인 분석이 점점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마치 과거의 '벨 에포크'만을 떠올리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 이어진다. 딱히 해법도, 방향성도 보이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나 자신조차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죽음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들 계속됐다. 하루하루 버텨나가기 급급했던 삶 속에서, 저 거대한 조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만 살고 말 것인가. 배가 침몰한다고 해서, 같이 침몰해서 죽을 것인가.


술자리에서 잠시 빠져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선배 옆에서 어제 봤던 다큐 얘기를 한다. 나는 그 화법이 우리 같지 않았기에, 메이드가 괜찮았기에 괜찮았다고 변론을 해보지만 선배는 요지부동이다. 잘 만들었지만,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고 킬링 포인트가 없기에 소구력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2부는 괜찮을 거라고, 다른 화자의 시선에서 비전을 얘기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거기에도 비전이 없을 것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그 다큐 역시 여전히 올드스쿨형 미디어 산업에 마땅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끝나긴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꿈틀거림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냥 죽기에는, 그저 죽어만 가기에는 '모두와 함께 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제공할 수 있을 거의 유일무이한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쉽다. 서로의 화젯거리가 떨어진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설명 없이 어제 했던 프로그램 얘기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시대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힘의 위력이 아쉽다.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이었고, 아무리 를 써도 잘 나갔던 시대의 힘이 영영 돌아올 일은 없을지라도 이렇게 빨리 포기해버리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설득할 수 있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 어떻게든 싸워봤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너무 약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그 방식이 나의 가치관과 신념에 반할 지라도, 나만 좋은 무엇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소구 할 수 있을 무엇이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검은 바다로 떠나는 오디세이.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이 일렁인다.


설령 '타이타닉'에서 침몰할지언정 아직은

글쟁이가 아닌 영상쟁이로 가라앉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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