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재앙’을 체험하다

by 디아키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 속 전쟁은,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현장이라기보다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재앙’과 같이 그려진다. 왠지 처량한 해변에서 쭉 이어지는 끝없는 바다는 너무나 고요해서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다. 보이지 않는 적은 폭탄과 비행기의 형태로, 혹은 웅웅거리는 거대한 소음의 형태로 다가온다. 현실 앞에 놓인 인간이란, 너무나도 작고 작은 존재라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인다. 미미하고 무력한 존재는, 공포에 절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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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덩케르크> 속의 인간은, 그토록 미미하고 무력함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 현장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작은 요트들. 해변에서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헤엄’치는 군인들. 계기판이 망가졌음에도 적기들과의 수많은 싸움을 이어가는 조종사. 전쟁의 공포는 사람의 눈과 귀를 막고, 마비된 이성은 삶을 비극으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쉽게 산화하지 않는다. 발버둥 친다. 두려움에 맞서 싸운다. 투쟁한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영국인으로서 놀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제’로 자신에게 있어 자랑스러울 역사를 그려낸다. 과잉은 없지만 이입은 있고, 과시는 안 보이지만 확신이 묻어있다. 관객은, 그가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그 판에서, 단지 구경꾼으로 남는 대신 전쟁의 일원으로서, ‘재앙’을 함께 극복해나간다. 적은 대사와 단순한 플롯으로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체험은 극대화된다. 전쟁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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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의 능력을 또다시 증명했다.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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