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소설
후텁지근한 초여름 저녁의 습기가 장례식장으로 퇴근하는 민재의 등덜미에 고루 스민다. ‘큰 맘 먹고 산 와이셔츠인데, 젠장. 다 젖어버렸네.’ 속으로 투덜거리며 민재는 가산병원 장례식장 문에 들어선다.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하늘에 남아있는 해의 여운이 유리 자동문에 반사된다. 문이 열리자마자 시원하고 건조한 바람이 그의 젖은 등을 감싼다. 이상기후로 30도가 넘는 날이었다. 돈 많은 병원은 에어컨 구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정도 크기의 건물이면 하루 냉방비가 어느정도 나오려나.’ 민재는 머리를 굴려 돈계산을 한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운 그의 손에는 얼마 전에 당근에서 무료 나눔을 받은 갤럭시 폰이 들려 있다. 돈계산을 하며 그는 걸음 수에 따라 몇 백원을 주는 앱을 습관적으로 켜 퇴근길에 얼마를 벌었나 확인한다. ‘300원 벌었네.’ 들릴듯 말듯 민재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건물 로비 앞에는 커다란 스크린에 어제나 오늘, 혹은 그제 이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죽음’을 주제로 특별히 기획해 설계된 이 장례식장은 유명한 건축가 이건준씨가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망자와 살아있는 자가 마지막 이별을 하는 공간이라는 상징을 담아 건물 전체가 거대한 다리 모양으로 생겼다. 아치 형태로 된 다리 기둥이 건물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다섯 개가 뚫려있고, 각 아치마다 죽은자의 공간이 하나씩 마련되어 있다. 세로로 길게 뻗은 ‘이별의 다리’는 발인을 할 때 관을 들고 왼쪽끝부터 오른쪽 출구로 걸어나가는 의례를 하는 장소다. 민재는 그 내용을 상조 앱태크를 하다가 나온 광고에서 언젠가 본 기억이 있다.
다리의 초입에 달린 거대한 스크린에서 민재는 어제 심정지로 급사한 회사후배의 아버지 얼굴을 더듬어 찾는다. 2초에 한번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망자들은 대중이 없다. 남자였다 여자가 되고, 할아버지였다가 아줌마가 된다. 문득 민재는 급사한 회사후배의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정신을 차려 후배의 이름을 찾는다. ‘아들 남길영’ 이라는 글씨 위에 커다란 궁서체로 ‘특실’이라고 써있다. 민재는 시선을 다리의 아치들로 돌려 유난히 아치모양이 큰 특실을 발견한다. 특실의 입구인 아치모양의 다리는 양 옆에 2개씩 있는 다른 호실보다 1.5배 크기는 되는 것 같다. LED로 만들어진 아치문은 투명한 이온음료수같은 색으로 치장되어 있다. 망자가 좋아하는 색깔로 문의 색깔을 꾸밀 수 있다는 말도 광고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난다.
민재는 이온음료 색깔 문을 통과해 들어간다. 그 안에는 투명한 문과 대비되는 칙칙한 검정탁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탁자 뒤에 구부정한 거북목을 하고 남길영이 핸드폰을 들고 앉아있다. ‘설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쟤는 당근 재배하고 닭 키우고 있나?’ 남길영 뒤에는 또 다른 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임영웅의 애달픈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마 남길영의 아버지가 살아 생전 좋아했던 노래가 아닐까, 민재는 추측해본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길영이 황급히 일어나 악수를 하며 말할 때 우유 썩는 냄새가 난다. 마치 민재 앞에서 평생 처음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처럼 길영의 목소리는 가래 소리인지 목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길영에게 만원 정도 받고 치과의자에 눕혀 이를 닦이고 치간칫솔과 치실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으나, 민재는 길영이 어제 아버지를 잃은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붙들어 본다.
“아니야.. 힘내라.”
민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명록에 이름을 쓴다. 길영이 날숨을 쉴 때마다 은근히 퍼지는 썩는 냄새가 마치 시체 썩는 냄새 같다는 생각에 이 냄새야말로 장례식장에 꼭 어울리는 냄새라는 생각을 한다. 마르고 풍채 없는 길영은 제 몸에 맞지 않게 조금 큰 검정 정장을 입고 있다. 머리는 제대로 감지 않아서인지 그의 좁은 어깨 위에는 두피에서 내려앉은 각질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이 방으로 들어오시면 되세요.”
길영은 민재를 영정사진이 놓인 방으로 인도한다. 민재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쯤은 더 커 보이는 흰색 방 한 가운데 길영의 아버지가 민재를 노려보고 있다. ‘아무리 사진이 없다고 해도 저런 사진을 해두나.’ 민재는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애써 감추고 길영의 아버지를 향해 한 발짝 씩 걸어나간다. 민재를 뒤따라 온 길영의 시선은 여전히 그의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민재는 살다살다 이런 장례식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노려보는 길영의 아버지를 향해 흰 국화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흘러나오는 임영웅의 노래가 죽을 때까지 화가 나있던 길영의 아버지를 위로하는 것 같다. 그는 왜 화가 나 있는 걸까. 얼마나 기분이 나빴으면 웃고 있는 사진 하나 남아 있는 게 없을까. 하다못해 어린시절 사진이라도 없었을까. 아니면 길영이 사진 고르는 게 귀찮았던 걸까. 하긴, 저 정도 게임중독이면 납득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런데 돈이 많나? 어떻게 이런 특실을? 민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 답해가며 기괴한 망자와의 인사를 마쳤다.
“선배 제가 혼자 앉아있어야 해서.. 죄송해요.”
길영은 오른손으로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각질이 우두두 떨어진다. 민재는 알콜 스왑으로 손을 닦고 싶은 충동이 이는 걸 느낀다.
“아 괜찮아 괜찮아. 난 상관하지 말고 앉아 있어.”
길영은 민재에게 안으로 들어와 뭐라도 먹고 가라고 권했지만 민재는 가능한 빠르게 이 아치형 다리를 벗어나 ‘살아있는 자’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저녁 한 끼면 적어도 1만 5천원은 세이브 될텐데..’ 그러나 민재는 길영의 입에서 나는 냄새가 자꾸만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냄새가 절약의 유혹을 처참히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민재는 황급히 아치다리를 빠져나온 뒤 자동문을 지나 밖으로 돌아왔다. 작은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고 있었다. 와이셔츠 안으로 점점 땀이 났다. 민재는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핸드폰을 들어 아빠 번호를 찾았다. ‘참, 현대백화점 앱 출석체크까지는 하고 전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