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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weller Sep 16. 2020

조카와 함께한 식사시간

슬픔을 참는 일보다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는 일은 훨씬 견디기 쉽다.

조카를 보러 휴가를 내고 동생네 다녀왔다.

태어난 지 이제 겨우 6개월이 된 조카지만, 이 귀여운 생명체가 없던 때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애기는 내 삶에 깊이 각인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내내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귀여움을 내뿜던 조카.

밥때가 되었는데 맘마를 안 주면 두피까지 빨개지도록 악을 쓰고 운다.

황급히 맘마를 입에 물려주면 쌕쌕 숨을 힘껏 쉬어가며 젖병을 빤다.

애기가 분유를 먹는 동안에는 되도록 움직이거나 표정을 자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는 제법 커서 그런지, 조금만 자세를 틀거나 자극을 줘도 쉽게 몸을 들썩인다.

조카는 또래 애들에 비해 신체 발달 정도가 하위 1%에 든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둘레는 정상이란다.

그러니까 나는 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맘마를 먹여야 한다.


그런데 맘마를 쭉쭉 빠는 이 애를 보면 너무 귀여워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그래서 미소를 참아야 한다. 슬픔을 참는 일보다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는 일은 훨씬 견디기 쉽다. 그 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 손톱만 한 입으로 맘마를 빤다. 그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순간은 소중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꼬물꼬물 살아 숨 쉬는 생명, 그 생명을 받친 내 손과 몸이 느끼는 무게, 천국의 보석 같은 아이의 눈망울, 벌름거리는 작은 콧구멍, 힘껏 젖을 빠는 숨소리와 드문드문 아이가 들려주는 깊은 날숨, 우리 둘을 비추는 오후의 햇빛 같은 것들.


언젠가 조카가 마주해야 할 세상의 크고 작은 아픔을 덜 아프게 느끼면서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지금 과거의 내가 주고 싶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영빈이는 내가 사준 움직이는 공 장난감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하루에 수십 번 외치는 "귀여워! 너무너무 귀여워!"라는 소리도. 그럼 과거의 내가 줄 수 있는 건 뭘까. 오늘의 조카와 오늘의 이모가 같이 느낀 기억의 순간, 조카도 분명히 감지했을 그 기억을 내가 대신 기억해주고 싶다. 미래의 조카에게 줄 수 있는 내 최선의 선물이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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