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가 하면 될 것이지
상사: 달하씨, 이 지표는 좀 이상하지 않아? 고객들이 이번에 바꾼 메인 디자인 때문에 이탈하는 건 아닐까?
나: 글쎄요. 단순히 비주얼을 보고 이탈하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요. 기능을 사용하는데 연속성이 끊겼거나 사용하...
상사: 아니 아니, 봐. 지금 이게 눈에 너무 들어오니까 모든 시선이나 클릭이 거기로 갈 거잖아. 그러면 다른 것도 사용을 하려고 시도를 안 할 거 같아.
나: 저희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찾는 목적이 더 쉽게 판매관리를 하기 위함이니까요. 디자인보다는...
상사: (무시) 버튼이 이렇게 들어가면서부터 다음 스텝까지 가는데 허들이 되는 거 같아.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이탈이 많지 않을 거 아냐.
나: 아, 네... GA심어서 동선 파악해보겠습니다.
상사: 그래, 최대한 단시간 내 나한테 보고 좀 해줘요.
물어보는 저의가 뭘까. 이미 당신 안에 정답은 있고 내가 그것을 아무 반항 없이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거면 그냥 요청해서 스크립트를 심어서 보면 될 것을. 그걸 지가 심는 것도 아닌데 요청하는 작업부터 자신이 그 보고서를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 검증을 해내는 것이 귀찮은 것일까.
대체 왜, 그들은 내면 속 정답을 갖고 묻는 것일까?
답답할 노릇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쉽사리 열 받는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고 반감만 커질 뿐이다. 인공지능은 계속 고도화된다면서 왜 원하는 데이터를 말로만 하면 자동으로 뿅 하고 추출해주는 인공지능은 개발이 이렇게 더딘 것인가. 스피커 고도화는 그만하고 이것부터 좀 해줄 수 없나? 언제까지 절대 권력자 요청에 의해 개발팀에 재요청 후 데이터를 받고 그것을 로딩도 느려 터진 엑셀로 열어 비주얼 라이징을 하고 그것으로 사장님이라는 놈한테 보고를 하고...(후 진정)
그렇다. 우리는 회사원이기에 종종 정답을 이미 정해두고 맞이하는 상황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상사에게, 팀장에게, 사장에게. 그들이 세운 가설을 신빙성이라는 것 하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검증해내야 하는 상황이 늘 존재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팀장 되고 이런 위험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간다. 팀원들에게 말을 할 때 나의 가설이 절대 정답이라 여기지 않도록. 사용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감히 단정 짓지 않도록. 그럼에도 그런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는 없지만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면 소름 끼치지만 그렇게 주기적으로 나를 다스리고 또 다스려본다. 감히 주제넘게 사용자를 판단하지 말고 팀원들의 말을 무시하지 말자고. 그 어떤 명확한 객관성을 띄기 까지는 절대, 주관으로 사용자와 팀원을 대변하지 말자고.
안타깝게도 나의 상사는 이런 생각이 안중에 없다. 더불어 주관을 객관화하는 습관이 있다. "내 생각에는 " 또는 "내가 보기에는"이라는 말이 입에 필터로 달려있어서 그 말을 거치지 않고는 말을 내뱉지 못하는가 싶을 정도다. 저 말을 듣게 되면 그를 가끔 멍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가끔은 '저 새끼가..?'라은 생각과 함께 당황스러우리만치 쳐다봐서 "왜?"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심하게 짝이 없어 쳐다보는 건데, 자기 말이 틀렸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말하고 호다닥 고개를 숙인다. 마스크 안에서 쌍시옷을 소리 없이 내뱉으면서, 상황을 흘려보낸다.
올바른 상황 대처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상사와 건강한 충돌(?)을 위해 의견을 나누고자 좀 더 의견을 내면 그들의 내면 속 작은 불씨에 부채질을 하는 것 밖에 안된다. 행여 내가 한숨처럼 내뱉는 말들 중 신경에 거슬리기라도 하면 마치 부부싸움 단골 멘트와도 같은 "지금 말 다했어?"와 같은 전투 직전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것이 이 상황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직 길인지 확신을 못하겠다. 상사의 말이 그저 맞다고 신뢰하고 따라야 할까.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한 상황 인지를 위해 다른 의견들을 내보아야 할까. 둘 다 해봤는데 전자는 상황을 편히 흘려보낼 수 있으나 개똥 같은 결과가 오면 내가 다 뒤집어쓰는 일이 생기고, 후자는 그냥 그 상황 자체가 개똥이 된다. 그럴 거면 전자를 선택해야 하나 싶지만 너무 억울하다. 으으.
대부분의 회사생활은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정말이지 어떻게 참아내고 해결해야 할지 아직도 너무 어려운 부분이다. 가설이 정답인 것처럼 행동하는 상사는 오늘도 내게 이런 의견을 전한다. "나의 생각은 이런데 너는 우선 들어보고 내 말이 혹시 틀린 부분에 대해 말해봐. 하지만 내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 알아서 판단해."
아니, 진짜 대체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거야?
아시는 분 답 좀 알려주세요. 네?
.
.
.
퇴근하는 길, 급히 연락을 받고 야근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지치고 괴로운 나머지, 어디든 해갈을 해야 할 것 같아 브런치에 살며시 올려봅니다. 야근러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