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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Nov 19. 2021

팀원의 레퍼런스 체크

결과를 알지만 격렬히 모르고 싶다.

좋은 팀장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노력 끝에 좋은 팀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면 일을 자신에게 넘기고 좀 쉬라며 내가 힘을 내야 자신들도 힘이 난다며, 절대 우리 팀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팀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자신이 만났던 팀장 중 최고라는 소리를 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동료라 그런지 더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녀와 둘 만의 면담이 있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팀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모습의 미래를 꿈꾸는지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정말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선택이든 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좋은 기회가 오면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항상 덧붙였었다. 그럴 때마다 혹시나 이 회사에 미래가 보이지 않아 떠나고픈 마음이 들거든 쉽지 않겠지만 꼭 미리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갑작스러운 공백에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놀라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귀여운 얼굴로 수줍은 보조개를 보이며 알겠다며 꼭 그렇게 하겠다고 미소 지어 주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친한 개발자 선배의 전화였는데 너네 회사에서 자신의 회사에 기획자 지원을 한 사람이 있어서 레퍼 체크 좀 하겠다고, 혹시 김모씨 아냐고. 아, 그녀의 이름 석자가 귀에 들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업력이 제법 되다 보니 레퍼런스 체크는 여기저기서 꽤 많이 받아본 편이다. 이전의 글들에서도 적어두었지만 그렇기에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늘 해왔다. 회사의 인원이 적잖기에 대부분의 경우 안면만 있는 정도 거나 한두어 번 일을 같이 해본 경험이 전부인 사람들을 주로 체크해왔다. 그런데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하필 우리 팀원 이라니...


살다 보면 어차피 결과를 알면서도 몰랐으면 하는 일들이 생긴다. 가끔은 정말이지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아니라고 직접 외면을 해보기도 한다. 어차피 이별을 마주할 것을 알면서도 미련하고 바보같이 떠나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한다. 당연히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었거늘, 그게 그렇게 아쉽고 또 속상해진다.


애당초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서 마치 본디 내 것이었던 것처럼 꽉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는 몇 가지 들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와 모든 마음을 비우라 명하셨지만 수련이 조금도 되지 않는 일반인은 참 안 되는 마음이다. 어찌하면 이 부산스러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려나.


일도 그렇다. 쉽게 끝나지 않을 장애가 일어나면 새벽까지 남아 확인을 하고 몸이 녹초가 되고 피로할 것을 알기에 장애가 난 것을 알고도 눈감고 지나가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 그래, 솔직히 장애는 정말 너무 격렬히 모르고 싶다.. 제발 모르고 싶어.






무튼, 그녀가 떠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부족함 때문이겠지? 내가 뭘 더 하면 떠나가는 마음을 고이 돌려놓을 수 있을까? 결론은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다'였다. 나 또한 최근 속이 시끄러워서 마음이 떠났다 돌아왔지만, 여전히 어지러운 상태다. 그녀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 맞아, 나도 이렇게 힘든데 그녀라고 안 힘들까. 아무리 내가 애써도 변화 불가능한 이 환경 속에서 그만큼 한 것도 대견하지. 묵묵하게 그리고 밝게,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해서라도 붙잡을 수가 없다. 그래, 인정할 건 해야지.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걸, 안 그래도 싱숭이 생숭이 마음이 녹록지 않은 이 시기에 너무 씁쓸한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늘 내 품에 안고 소중하게 그렇게 언제까지고 갈 줄 알았던 끈끈했던 나의 팀원과의 이별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것에 적잖게 당황한 것 같다. 나는 정말, 생각보다 그녀를 아끼고 좋아했던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원치 않게 알게 된 레퍼 체크에 나는 그녀와 약속했던 것처럼 좋은 평을 건넸다. 그렇게 그쪽 회사로 가려는 마음이 든 것은 내 입장에서 너무 속상한 사실이지만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일도 정말 잘하고 자신감도 있고 무엇보다 팀에서 든든한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가게 되면 충분히 그녀를 아껴주면 좋겠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맘껏 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음 한 켠에는 혹시나 잘 안될 수 있다는 생각이 소심하게 있지만, 레퍼 체크니까 마지막 관문까지 갔겠지.. 가만히 있어도 한숨이 절로 나는 걸 보니 난 이미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구나. 조만간 소식이 들려오는 날,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그녀를 응원해줘야겠다. 내가 힘이 부족해서 해주지 못했던 것들, 가서 마음껏 펼치라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함께해줘서 고마웠다고 건네며 밝게 보내주고 싶다.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정말 많이 겪었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굳은살이 생겨 이제 어떤 방향으로 찔러도 전혀 아프지 않을 줄 알았는데. 쿡쿡 쑤시고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조만간 휴가 쓰고 절이나 한 번 다녀와야겠다.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해지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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