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졸업식
애초에 내 회사생활에 팀장은 목표에 없었다. 그래서인가 팀장을 하면서 정말이지 오랜 기간 고민을 해왔다. 팀장이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걸까, 해야 한다면 팀장을 더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대로 팀장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이제 와서 실무에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걸까 등등... 이런 내적 갈등을 브런치북으로 담아내며 조금 더 나를 선명하게 바라보고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이직, 새 출발이라는 선택을 했다.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다. 모든 이직이 그렇듯 결과는 불확실하기에 선택이 옳았다 아니다 판단할 수 없다. 선택한 이상, 결정은 된 것. 지금부터는 다른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 던져둔다.
그저 앞으로 내가 그곳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언젠가 돌아봤을 때 옳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도닥여줄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이 선택이 의미 있길 바란다.
이직을 한다는 것은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순서가 존재한다. 퇴사라는 선택은 항상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인 것 같다. 퇴사라는 단어를 뱉는 그 순간을 과연 어떻게 잘 풀어낼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까지 잘하는 거겠지?라는 의심도 함께 생긴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결단을 내렸다.
상사에게 그리고 팀원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짰다. A라고 이야기했을 때와 B로 건넸을 때 어떤 것이 더 그들에게 덜 충격적일까. 더욱이 팀장이 퇴사를 하면 팀원들은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릴 텐데. 제 아무리 말을 청산유수로 하는 사람도 팀장의 퇴사 발언은 좋게 와닿을 리 없다. 흔히 없던 사례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해야 했다. 남아있는 이들에게 이별을 고해야 했다.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단어들을 조합하며 각본만 수십 개를 짰다. 정말 3일간 6시간도 못 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상사에게 모닝커피를 청했다. 가능한 회사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커피숍으로 갔더니 유독 발랄한 캐롤과 눈치 없이 예쁜 트리가 있었다. 화사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평소와 달리 따스한 고구마라떼를 시켰다. 특별한 날이고 싶었다. 나에게도 상사에게도.
커피를 먹자는 행위는 '상담'이라는 것을 아는 그는 내게 무슨 일이냐며 긴장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의 상사는 누군가 자신에게 상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워낙 강하고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이 각인된 사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에게 상담을 하는 사람이 적다. 나의 상담은 그에게 작게나마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대하는 미소마저 수줍게 퍼진 상사의 얼굴을 보니 바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짜 놓았던 각본들이 전부 지워졌다. 하얗게 백지가 된 머릿속을 뒤적거리며 손만 빤히 바라보고 있을 즈음, 상사가 먼저 말을 건넨다.
"나 느낌이 왔다. 혹시... 둘째? 둘째 가졌어?"
그렇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큰 이슈가 되긴 하겠다.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생에 동생은 없다. 아니라고 웃으며 답변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얘기하자.
"PM님, 저... 이제 회사 떠나려고요."
"응...?"
모든 에너지를 눈뜨는데 힘썼나 싶을 만큼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고 호로록 한 모금 마신다. 내려놓는 순간에도 손은 부르르 떨린다. 본래 좀 손을 자주 떨긴 하시지만 떨림이 다르다. 격하다.
한 박자 숨을 고르고는 내게 묻는다.
"올게 왔구나. 그래, 이유라도 들어보자"
나는 지금까지 커리어 고민의 흐름에 대해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내가 기획자라는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은 실무를 할 때였다는 것, 팀장을 맡겨주셨으니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팀을 회사의 최대 규모로 키울 만큼 열심히 했다는 것, 그러니 이제 나는 다시 내 커리어를 성장시키며 살고 싶다는 것까지. 모든 고민의 흔적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떠날 적절한 시기를 고민해왔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정말 힘든 순간에 에라 모르겠다 다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은 충동이 강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우리 팀이 다른 팀이 부러워할 만큼 매력적인 팀이 됐을 때, 박수를 받을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실제로 팀장 3년간 우리 팀은 최강 팀워크로 많은 팀에서 오고 싶어 하는 팀이 됐고 힘도 생겼다. 좋은 날이었고 앞으로도 더 좋은 날이 될 거다.
그렇게 이제, 이뤄낸 것을 내려놓고 마음 한편에 품었던 나의 실무 커리어를 다시 쌓고 싶다고 전했다.
평소 실무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냈었기에 상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박수칠때 떠나는 거, 개인적으로 솔직히 멋있다고 그동안 팀을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조금 차가워서 그렇지, 내 상사는 제법 멋진 사람이다. 그렇게 퇴사의 첫 단추를 겨우 풀어냈는데 더 큰 고비가 남아있었다. 우리 팀이다.
떠올려보면 안정적인 궤도에 있는 팀의 팀장이 퇴사하는 일은 아직까지 주변에 없었다. 어떻게 말을 떼야할지, 나를 바라보고 달려준 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최대한 마음 다치지 않고 떠나보낼 수 있을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먼저 팀원 모두에게 출근을 요청했다. 평소 재택근무를 권유해왔기에 팀원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며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확진자가 너무 많아지는 상황이라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꼭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런 시국에 출근 요청이 매우 불만스러웠을 텐데, 고맙게도 팀원 모두가 출근에 응해주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누군가 우리 팀에서 떠난다고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쉽게도 나라고 전했다. 팀원 대부분의 머리에는 물음표가 떴고 토끼눈이 됐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아니, 지금까지 자기 회사처럼 일하던 인간이 갑다기 나간다니? 겨우 입을 떼고 나의 성장을 위해 선택한 길이니 응원해달라고 전했다. 조금 이기적인 멘트였지만 솔직해야 했다. 아직은 소식이 생소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팀원들에게 겨우 알리고 다른 동료들에게 하나씩 단추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예상과 달리 울기도 했고 누군가는 응원을 해주었고 누군가는 원망을 했다. 역시 퇴사를 전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다.
팀원들에게 퇴사 소식을 알리고 부탁을 했다. 팀 사진이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보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팀 사진 하나 없는 게 속상했다. 사진을 보며 우리 팀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장소를 세팅하고 한 명 한 명 얼굴을 기억에 새겼다. 그렇게 사진 찍을 준비가 완료되니 상사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온다. 팀을 두고 떠나는 아랫 직원 뭐 이쁘다고... 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공존하며 꽃다발을 받으니 어깨를 도닥여준다. 그동안 정말 애썼다는 말과 함께.
내 인생에서 가장 나를 많은 성장시켜준 상사와 우리 팀, 모두가 모여 카메라에 얼굴을 담아주었다. 활짝 웃고 찍힌 사진을 보며 나는 이 팀에서 진심으로 행복했었구나 생각했다. 팀워크가 뭔지 모범이 되어 보여준 우리 팀 모두에게 고맙고 함께여서 영광이었다.
누군가는 꽃다발 든 모습에 회사생활 은퇴하냐며, 언제 다시 돌아올 거냐며 날짜를 내놓으라며, 이제 팀장 아니니까 맘껏 한 대씩 때려도 되냐며 장난을 친다. 누군가는 이러는 게 어딨냐며 눈물을 보인다. 그렇게 이제야 실감을 한 팀원들이 한 마디씩 건네며 졸업식을 마쳤다. 뭔가 더 해보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할 만큼 했다는 홀가분한 기분, 그런 나를 원망하기보다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사람들. 빈틈없이 완벽한 졸업식이었다.
마치 내가 창업자인 것처럼 지난 7년간 온 애정을 다해 일해왔다.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그 노력으로 많은 동료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에게도 살며시 격려하고 이야기해본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고, 그리고 다시 또 고생해보자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퇴사를 한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팀장을 내려놓는다.
굿바이 우리 기획팀. 정말, 많이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