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는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따뜻한 사람인 것 같은데 차갑기도 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집에서 회사에서 친구들에게 또는 처음 접하는 누군가에게도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물론, 때때로 같은 사람의 모습일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최근 들어 나의 본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환경적으로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만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저울질하며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온전한 내 모습을 돌이켜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저, 시간은 흘렀고 별다른 생각 없이 살던 대로 살아왔다.
따분한 얘기지만 내 본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본디 나 자신을 잃고 살지 말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돌이켜보니 내 본모습은 잊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성숙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커다란 미움을 받았다. 몸에 상처만 나지 않았을 뿐, 뿌리 깊은 마음의 상처를 새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패인 상처 자국은 메꾸고 메꿔도 남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려운 사람으로 성장해버렸다.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성인이 돼버리고 말았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 참 많은 가면을 써야 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더 많은 가면들을 만들어 내야 했다. 수많은 가면들을 갈아 끼우며 사람들 속에서 잘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나를 숨기며 지내다 보니 나를 따뜻하다, 친절하다, 좋은 사람 같다고 표현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달콤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더 많은 가면을 만들어냈다.
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누가 봐도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조금이라도 하찮은 모습들이 발견되면 단점을 메꾸기 위해 새로운 가면을 또 만들어냈다. 거짓된 나의 모습이 수없이 생겼지만 이 정도쯤 견뎌내는 것은 받았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감내하며 살았다. 그렇게 나는, 가벼운 수백 개의 가면을 가지고 무겁게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본래 그리 다부지고 단단한 사람이 아닌데 우직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이미지가 무너지면 안 된다며 스스로 억압하고 괴롭혔다. 가면을 적재적소에 만들지 못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들키면 상대로부터 달아나거나 도망쳤다. 이런 내 모습을 싫어할 거라고 앞서 판단하고 먼저 거리를 두어 상대를 차단했다.
그렇게 나의 추한 모습을 잊어 갈 때쯤이 되어서야 가면을 새롭게 만들고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가면을 앞에 두고 마주했을 때만큼은 그 어떤 사람이든 대하는 게 편했다. 설령 진심 속에는 불편함이 가득 메워지더라도 가면을 쓰면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상대에게 솔직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했다. 상처 받을 일도 상처 줄 일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상대에게 진심 어린 걱정이나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았는데 도리어 나에게 '선하다'며 마음을 건네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적잖게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니 '당신에게 진심을 다했을 뿐'이라는 거짓된 말을 건네는 여유도 생겼다.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 가면 속 선심을 건넸을 뿐인데 말이다.
내 마음이 진심이든 거짓이든 나에게 '선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에 대해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진정 선한 사람이었는가. 표면적으로는 선해보였겠지만 앞선 상황처럼 나는 거짓으로 놓인 상황을 대처했을 확률이 더 높다. 진정한 선함이란 무엇일까.
상대에게 말의 온도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건넨다고 해서 선한 것일까. 혹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면 선한 것일까. 둘 다 틀렸다. 선하다는 것은 '마음이 올바르고 착하다'는 것이다. 말과 마음에 진심이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진심 없는 온순함과 부드러움은 거짓된 선함이다.
어투나 워딩에서 차가움이 느껴져도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선함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따뜻함이 아님에도 깊이 느껴진다. 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그런 사람이지 못했는가.
어찌 보면 용기가 없었다. 나의 진심이 드러나면 이용당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과 함께, 무조건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이 우선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거짓되게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나에게 진실된 마음, 진정한 선한 마음을 베푸는 사람들마저 외면하고 지냈다. 그렇게 어리석게도 얼마나 많은 진심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게, 최근에 이제 가면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생겼다. 물론 처음 드는 생각은 아니다. 항상 시도는 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겹겹이 쌓은 가면을 버리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가면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은 꽤나 큰 공포였다.
팀장을 맡고 제법 많은 팀원들이 생겼다. 가면이 즐비한 내게 회사라는 공간은 지내기 꽤 편한 곳이다. 여러 개의 가면을 번갈아 끼우면 되니까. 덕분에 나름대로 좋은 팀을 만들며 지내고 있었다. 큰 트러블 없이 팀원들과 관계도 좋았고 팀의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온화하게 지내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사건이 터졌고 그 일을 맡았던 우리 팀 팀원은 매우 곤란하고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였다. 나는 팀원이 당황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격려를 했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너만 착한 사람이려고 하지 마.
그거 코스프레야.
그랬다. 나는 팀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때문에 앞서 갈아 끼웠던 수백 개의 가면 중 나쁜 역할을 하는 가면은 없었다. 그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이해는 없다고, 진실된 마음을 숨기면서까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짓은 그만두라고 했다. 처음에는 당신이 뭘 아냐며 화도 나고 기분도 나빴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창피했다. 사실이니까.
진심도 없으면서 격려하고 다독이고 괜찮다고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상황을 방치했다. 진실을 말하기보다 잠시 뒤로 미뤄두고 그저 표면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썼다. 상황이 엉망이어도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항상 괜찮다고만 했다.
엉망일 때는 사실대로 얘기했어야 했다. 진실된 마음을 알리고 상황을 인지시켰어야 했다. 왜 그걸 이제 얘기하냐며 그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상황을 직시한 순간 솔직해야 했다. 돌이켜보니 항상 그러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숨겨진 마음은 악함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돼버리든지 그저 난 착한 모습만 보이면 그걸로 됐었으니까.
좋은 사람만을 추구했던 '착한 사람 가면'을 내려놓기로 한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둬보려 한다. 누군가는 변했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게 적잖은 실망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수백 번 수만 번 다짐했던 지난날들처럼 사람이 무서워지면 이 가면을 냉큼 집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용기 내서 처분해본다. 딸, 친구, 아내, 엄마, 동료 등 나라는 존재 하나에도 이 가면을 빠르게 갈아 끼우다 보니 이제 가면에 녹도 제법 슬었다. 녹슬어버릴 만큼의 꽤 많은 시간을 함께한 이 가면을, 이제 큰 마음먹고 처분해보려고 한다.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나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면 중 하나다. 혹시 나와 같은 가면을 갖고 있다면 같이 버리자. 누군가에게는 조금 덜 착해도 괜찮다고, 내가 힘들고 불편하면 내 마음도 헤아려주기로 하자. 나의 불편한 마음을 숨기면서까지 착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없으니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인 척이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머리로도 마음으로 알겠지만 행동으로 안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시도해야 한다. 진정으로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가면을 버려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최근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 고된 시기를 보냈다. 어쩌면 가면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시행착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본모습도 되찾기를 기대해본다.